'내항선원 비과세 확대' 국정과제 포함될까
화물운송 17% 담당 … 60세 이상 59%
연안해운사 “ ‘비과세 확대’ 공약 이행 기대”
연안해운 선사들이 내항선원들의 실질 소득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으로 추진해 온 내항선원 비과세 소득 확대가 이재명정부 국정과제에 포함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6.3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해양전문인력을 육성하고 지원하겠다’며 ‘내·외항 선원소득 비과세범위 확대 추진’을 이재명 대통령 후보 정책공약에 담았다.
이와 관련 이정로 해양수산부 선원정책과장은 19일 “내항선원들의 비과세 소득 범위를 확대하기 위한 조세특례법 개정 등 제도개선 방안을 관련 기관들과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세금차별로 젊은 선원 계속 이탈” =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연안 수역에서 전체 해양사고의 92%가 발생했다. 연안여객과 화물을 운송하는 내항상선은 많은 여객과 화물이 복잡한 내항 수로를 운항하고 있어 선원들에게는 고도의 기술과 함께 사고가 났을 때 인명을 구하고 화물손실과 환경오염을 최소화하는 책임의식 등이 요구된다.
하지만 연안해운 선사들은 매출액과 이윤율이 낮고 적자항로가 많아 선원 구직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내 102개 항로를 152척의 여객선이 운항하는 연안여객선의 경우 2023년 기준 총 매출액이 4000억원 수준에 불과해 항로당 40억원, 선박당 26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한국선원통계연보에 따르면 선원, 특히 간부 선원인 해기사들의 고령화는 심화되고 있다. 60대 이상 항해사는 2014년 41.5%에서 2023년 55.6%로 늘었고, 기관사는 49.4%에서 59.2%로 증가했다.
내항상선 경영상황이 단기간에 호전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한국해운조합이 추진하고 있는 선원들의 ‘비과세 소득 범위 확대’가 선원들의 실질 소득을 올릴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을까.
국내 화물 수송량의 16.9%를 담당하는 내항상선(연안해운)은 열악한 수익구조와 선원 부족이라는 악순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금 차별은 젊은 선원들의 이탈을 더 부추기고 있다. 완도에서 제주 뱃길을 오가는 한일골드스텔라호(한일고속) 채창희 선장은 19일 “여객도 싣고 화물도 싣고 연안수로를 항해하는 내항선은 원양선보다 업무강도가 더 강하다”며 “외항선과 비교해 급여 차이가 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소득 비과세 문제는 차별 안 하면 정말 좋겠다”고 말했다.
1993년부터 항해사로 근무한 채 선장은 외항선을 4~5년 타고 결혼 후 내항선으로 옮기며 급여차이를 크게 느꼈다.
그는 “우리 회사는 다른 내항선사에 비해 규모도 있고 처우도 더 좋은 편이지만 외항선과 급여차이가 많고 특히 소득 비과세도 없어 젊은 항해사와 기관사들이 어렵게 훈련한 후 외항선으로 옮겨가 버린다”며 “또 신규 채용해서 훈련시키고, 좀 숙달되면 또 원양선으로 빠져 나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2023년 소득세법을 개정하면서 외항상선 선원의 경우 월 500만원까지 근로소득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식으로 비과세 소득 구간을 확대했지만 내항상선 선원은 월 20만원 승선수당에 대해서만 비과세 대상에 포함했다.
해운조합도 내항선원들은 세제 혜택에서 큰 차별을 받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파악했다. 해양대나 해사고에서 매년 1200명 규모의 신규 해기사가 배출되지만 이들은 외항상선에 자리가 없으면 차라리 군 복무를 택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선원의 날’ 더 서러운 내항선원 = 20일은 제2회 선원의 날이다. 해양수산부는 부산항국제컨벤션센터에서 ‘바다 위의 헌신, 대한민국의 자부심’이라는 주제로 기념식을 갖지만 내항선원들은 선원의 날이 더 서럽다.
석유제품을 싣고 여수에서 출항해 울산에 기항한 미라클알파호(알파해운) 김동성 1등 항해사는 19일 “선원의 날이 있는지 모르고 있다”며 “이번에는 10개월 승선 후 휴가를 낼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과 한국해운협회의 노사합의에 따라 외항선원들은 유급휴가 발생 기준이 6개월 승무에서 4개월 승무로 단축됐지만 김 항해사에게는 먼 일이다.
선원 부족과 고령화, 그리고 외항상선과의 임금·비과세 격차로 인한 청년 기피 현상까지 겹치며 내항상선은 존립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
배두한 HNCC 해무팀장은 “배는 있는데 선원이 없다”며 “회사 선박의 절반이 기관사 결원으로 운항을 멈출 뻔 했던 때도 있다”고 말했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한 내항상선 관계자는 “올해는 선박 침수 사고가 발생했는데 원인은 선원의 자질이 부족한 것이었다”며 “70세 선장과 70세 1등 항해사, 24세 초임 2등 항해사가 팀을 이뤘지만 평형수 조작 미숙으로 침수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왜 그런 선원을 배치했냐고 묻는다면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해운조합과 전문가들은 선사들이 당장 급여를 높일 수 없다면 비과세 소득 범위라도 확대해야 한다며 정부에 제도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달 7일엔 해운조합과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이 서울 여의도 국회소통관에서 노·사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내항상선 선원 부족 문제와 소득에 대한 비과세 필요성에 대해 관심을 갖고 협조해 줄 것을 요청했다.
2월에는 해운조합 주관으로 여·야 의원들이 공동 주최한 ‘내항선원 부족 타개를 위한 연안해운 생존전략 대토론회’가 국회도서관에서 열렸고 국회로 모여든 500여명의 연안 해운인들은 생존위기에 내몰린 연안해운을 살릴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도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개선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민주당이 대통령 공약에 내항선원 비과세소득 확대를 포함해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김 항해사는 “세금내고 나면 연봉이 4500만원 수준”이라며 “이재명 대통령이 내항선원 비과세 소득 범위를 넓히겠다고 공약했다고 하니 약속을 지킬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