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기획위 “공직사회, 세상 바뀐 걸 모른다”
정부 부처 첫 업무보고 “국정철학 이해 부족”
검찰 등 재보고 … ‘인사 지연’ 장기화 부담
이재명 정부의 국정운영 계획을 세우는 국정기획위원회가 정부 부처를 향해 “세상이 바뀐 걸 모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새 정부의 국정철학이 담겨 있지 않다는 것이다. 검찰과 방송통신위원회는 재보고 일정을 잡았다. 야당은 “불편한 부처를 본보기로 갑질과 적폐몰이를 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이한주 국정기획위원장은 22일 기자회견에서 “국정철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감이 있었다”며 “전반적으로 노력에 비해 실망스러운 부분이 있었다”고 총평했다. 국정기획위 출범 후 1주간 정부 부처의 업무보고를 받은 뒤 나온 반응이다. 이 위원장은 “특별한 문제라기보다는 지난 정부 3년 동안의 국정 상태가 반영된 것이라 생각한다”며 “특히 검찰청, 방송통신위원회, 해수부는 노력한 흔적을 충실히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국정기획위는 검찰과 방통위의 업무보고가 준비 부족 등의 이유로 지난 20일 중단됐으며, 오는 25일과 26일 양 부처로부터 각각 재보고를 받을 예정이다. 검찰 업무보고를 받았던 이해식 정치행정분과장(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형식적 요건조차 갖춰지지 않은, 정말 불성실한 보고였다”며, 수사권·기소권 분리나 검사징계법 개정안과 같은 핵심 내용이 빠져 있었다고 지적했다.
경제2분과장인 이춘석 의원(민주당)은 “이재명정부가 출범하고 새로운 아이템으로 세상을 바꾸려 노력하고 있는데, 이를 실행해야 할 공직사회는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고 말했다.
여당 입장에서는 인수위 없이 출범한 정부의 국정운영 계획을 수립하는 만큼, 이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기조를 정부 업무계획에 반영하는 것이 절실하다. 전 정부와의 차별성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당장 내년 예산안에 새 정부의 주력 사업을 포함시켜야 하는 현실적 이유도 담겨있다.
문재인정부 인사업무에 관여한 한 민주당 인사는 “정권교체 후 임명직 고위공직자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관료사회가 어떤 자세로 일하느냐가 정부 변화의 근간”이라며 “관료들이 작정하고 대통령이 임명한 인사 주변을 장악하면 국정철학은 고사하고 새 정부의 기조 반영조차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국정기획위의 이번 행보를 장관 임명 전, 부처 내부의 긴장감을 높여 국정 장악력을 확보하기 위한 ‘기강잡기’ 수순으로 보는 이유다.
백승아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국정기획위원회의 정부 업무보고에 대한 평가를 두고 “전 정권의 무능과 무책임에 익숙해져 국정 비전과 책임보다 부처 이기주의와 무사안일, 책임 회피로 일관하는 정부 부처를 질타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부처 내부에서는 “정부의 정책방향이 명확하지 않고 장관 등도 임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공직자만 탓하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불만도 나온다. 야당 역시 ‘이재명 정부의 무리한 부처 길들이기’라고 비판했다. 최수진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21일 논평에서 “국정기획위원회가 검찰과 방송통신위원회 등의 업무보고를 중단시킨 것은 이재명 정부의 갑질과 적폐몰이의 시작”이라며 “현 정권이 불편하게 여기는 부처를 본보기 삼아 길들이기에 나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야의 엇갈린 반응은 인수위 없이 출범한 정부 초기 ‘인사 공백’에 따른 혼선과 맞닿아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대선으로 출범한 문재인정부 역시 인수위 없이 시작됐고, 1기 내각이 최종 완성되기까지 195일이 걸렸다.
이재명정부는 국민 추천제를 통해 인사 대상의 폭을 넓혔고, 이에 따라 검증 대상과 기간이 늘어나면서 내각 인선이 더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 차관 인사를 먼저 시행해 공직사회 내부를 안정시키고 정부 운영의 철학과 기조를 정립한다는 방침이지만, 인선 지연에 따라 전 정권 출신 인사들과의 원활한 협력이 이뤄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명환 기자 mha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