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노조법 2·3조 즉각 개정해야”
시민단체·민변, 현대차 손해배상 소송 전면 취하·노조법 개정 요구
현대차 “소송 계속 위해 소송수계 불가피 … 70대 노모 손배소 철회”
현대자동차가 불법파견 피해자의 70대 노모까지 ‘소송수계’를 통해 파업 손해배상 피고로 만들면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 2·3조 개정 이슈가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현대차는 소송 당사자 사망에 따라 소송을 계속하기 위해 소송수계가 불가피했다고 주장하며, 소송수계가 이뤄진 만큼 고인의 노모에 대한 소송은 취하하기로 했다.
하지만, 시민단체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등은 불법파견에 대한 저항으로 발생한 손해배상 소송 전체를 취하해야 하며, 이런 상황을 만든 노조법 2조와 3조를 국회가 즉각 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24일 법조계와 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는 최근 부산고법과 울산지법에 올해 1월 사망한 직원 A씨와 관련해 ‘소송수계신청서’를 제출했다.
2003년부터 현대차 울산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로 일한 A씨는 2010년과 2023년 불법파견 철폐를 주장하며 비정규직 노조가 벌인 파업에 참여해 총 2시간가량 생산라인을 멈췄다.
현대차는 A씨 등이 불법 파업했다고 판단해 A씨 등에게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울산지법은 A씨 등 5명에게 2300여만원, 부산고법은 A씨 등 2명에게 3700여만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2023년 6월, 불법 쟁의행위로 생산 차질을 빚었더라도 매출 감소로 이어지지 않았다면 손해액 산정에서 제외해야 한다며 사건을 부산고법 등으로 돌려보냈다.
이에 따라 부산고법과 울산지법은 A씨 등이 부담해야 할 손해액을 재산정하기 위해 심리를 진행 중이다.
그사이 지연이자 등이 붙어 A씨 등이 지급해야 총액은 1억7700여만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A씨 등은 불법파견과 관련해 현대차 정규직으로 인정해달라는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이 2022년 10월 A씨 승소 판결을 내리면서 A씨는 현대차 직원으로 일하다가 올해 1월 사망했다. 그러자 현대차는 손해배상 판결이 마무리되면 A씨가 부담해야 할 손해배상금을 상속인이 승계해서 책임져야 한다는 취지로 소송수계신청서를 낸 것이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진보당·사회민주당·기본소득당 의원들과 시민단체 ‘손잡고’, 민변 등은 23일 국회 소통관에서 현대차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불법파견 피해자 유가족에 파업손배 소송수계는 ‘민사판 연좌제’다”라며 “현대차는 속죄하고 노동자에게 제기한 손배소를 전면 취하하라”고 주장했다.
이에 현대차 관계자는 “소송 당사자가 사망하면서 손해배상 소송이 유지되기 위해 소송수계 신청이 불가피하게 이뤄져야 했다”며 “고인의 노모에 대한 소송수계가 이루어졌으니 향후 그분에 대해서는 소송을 취하하겠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시민단체 손잡고의 윤지선 활동가는 “1명에 대해 소송승계를 하지 않겠다는 것은 면피 밖에 되지 않는다”며 “현대차가 2023년 유죄판결을 받은 불법파견에 대해 저항하다 발생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전체를 취하하는 것이 불법에 대한 속죄”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부진정연대책임제도 때문에 1명이 소송에서 빠진다고 해서 소송금액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며 “사건 자체를 소취하 해야 진정하게 사건이 없어지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민변은 노조법 2·3조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노조법 2·3조 개정은 노사 관계에서 사용자와 쟁의행위 범위를 확대하고, 노동조합을 대상으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것이 골자다.
민변은 “이번 사건은 노동자들에게 노조법 2·3조가 왜 개정돼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며 “기업의 불법행위에도 불구하고 하청노동자라는 이유로 노동권을 행사할 수 없고 쟁의행위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개인은 물론 가족까지, 심지어 죽어서도 소송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미 유엔엔과 국제노동기구(ILO) 등 국제사회는 쟁의행위에 참가한 노동자에 대한 민형사상 처벌을 ‘보복 조치’로 명시하고 한국 정부에 개선을 수차례 권고한 바 있다”면서 “ILO는 정부가 노사 관계에서 사회적 대화를 저해하는 행위를 중단하고 조합원들에 대해 어떠한 종류의 폭력, 압력 또는 위협이 없는 환경을 보장해야 한다고도 권고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회는 노동자의 정당한 쟁의행위에 대한 기업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고 하청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는 노조법 2·3조 개정안을 즉각 입법하라”고 강조했다.
김선일·박광철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