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반도체특별법 필요하다
1980년대 중반 미국과 일본이 세계 반도체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러자 당시 선두 주자였던 일본의 미쓰비시는 ‘삼성이 반도체사업에서 성공할 수 없는 5가지 이유’라는 보고서를 발표하며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2024년 세계 반도체시장에서 한국의 점유율은 23.7%로 미국(48.5%)에 이어 2위이며,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는 61.7%로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 중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20.8%, 부가가치 유발 비중은 20.5%로 수출 중심의 한국경제를 견인하는 주요 품목으로 성장했다. 국내외 부정적인 시각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반도체산업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난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기업의 노력과 화려한 조명 밖에서 우리 정부의 조용한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국가대항전으로 승격한 세계 반도체산업
반도체가 한국에서만 중요한 제품은 아니다. 반도체가 첨단산업 발전과 경제안보 관리에 핵심부품으로 사용됨에 따라 미국과 중국의 기술패권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글로벌 반도체 부족 현상으로 인해 자동차 등의 기존 주력산업이 피해를 보게 되자 공급망 관리의 우선 품목으로 반도체가 부상했다.
따라서 반도체산업 경험이 있는 선진국들은 자국 내 반도체산업 부활과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발표하고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여기에 인도와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아세안 지역에서도 반도체산업 육성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 지역에서는 산업구조 변화에 따라 전기·전자제품 생산을 늘려감에 따라 100% 수준인 반도체 수입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수익률 증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유로 인해 선진국뿐만 아니라 개도국에서도 반도체에 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으며, 반도체산업은 더 이상 기업 간의 경쟁 수준이 아니라 국가 대항전으로 승격했다.
반도체산업이 국가대항전으로 승격한 사실은 주요국에서 ‘반도체법’을 제정해서 시행하고 있다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그 나라 정부가 반도체산업을 특정해서 지원하겠다는 것을 선언한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반도체법을 제정한 국가들은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하고 법에 근거하여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다. 반도체법이 없는 상황에서는 여러 법 속에서 반도체산업과 관련된 지원을 하기 위해 각각의 법 절차에 따라야 하므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지 법이 있으면 절차와 시간이 줄어들어 신속하고 일관되게 지원할 수 있다.
정부가 나서 과감한 결단과 적극적 지원을
한국에서 반도체법 관련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 반도체법을 발표한 2020년 이전 이미 반도체법 제정을 위한 논의가 시작되었으나 다른 산업과의 형평성 등을 고려해 바이오 이차전지 등을 포함한 ‘국가 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으로 2022년 2월에 제정되었다.
하지만 반도체특별법 제정에 대한 필요성이 줄어들지 않자 지난해 국회에서는 여야 구분 없이 우리나라 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위한 법안을 여러 건 발의했고 가을에는 합의가 상당히 진척됐다. 따라서 반도체법이 곧 국회에서 통과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주 52시간 논의가 시작되었고 곧 이은 정치적 혼란으로 반도체법은 아직도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패권 경쟁, 글로벌 공급망 안정화, 신흥국의 도약 등 우리 반도체산업은 계속 위협받고 있다. 우리 반도체산업의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 이제는 우리 정부도 무대 밖에서 조용한 지원을 할 것이 아니라 전면에 나서 과감한 결단과 적극적인 지원을 시작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