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차를 중고차로 둔갑시켜 수출

2025-06-26 13:00:21 게재

중국 자동차기업들 판매실적 부풀리기 … 지방정부가 조장, 인민일보 경고

브라질 산타카타리나주의 이타자이 항에 정박한 중국 전기차 업체 BYD 소속 화물선에서 BYD 차량들이 하역되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자동차 산업이 ‘제로마일리지 중고차’ 수출을 통해 판매 실적을 부풀리고 있다는 논란이 커지고 있다. 지방정부가 GDP 상승을 위해 해당 관행을 적극 조장하는 가운데,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까지 직접 나서 “시장 질서를 해치는 행위”라며 단속을 촉구하고 나섰다.

로이터는 24일(현지시각), 중국 지방정부 문서와 자동차 업계 관계자 인터뷰를 종합한 단독 보도를 통해 이 같은 실태를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른바 ‘제로마일리지 중고차’는 출고 후 단 한 번도 운행되지 않아 주행거리(Mileage)가 0km인 차량이다. 그러나 서류상 중고차로 등록돼 러시아, 중앙아시아, 중동 등으로 수출된다. 출고 즉시 ‘판매’로 잡히기 때문에 제조사 입장에서는 매출 증대 효과가 있다.

이 같은 편법은 코로나19 이후 격화된 가격 경쟁으로 인한 구조적 재고 부담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자리잡았다는 분석이다. 미시간주 소재 자동차 컨설팅 업체 ‘시노오토 인사이트’의 투 리 대표는 “4년 가까이 이어진 가격 전쟁으로, 기업들은 판매 실적을 만들기 위해 어떤 방법이든 동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보도에 따르면 현재까지 광둥성, 쓰촨성 등 최소 20개 지방정부가 이 관행을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등록 쿼터를 추가 배정하거나, 세금 환급을 신속 처리하는 방식으로 제로마일리지 중고차 수출을 장려하고 있다. 선전시는 2024년 2월 “연간 40만 대 차량 수출 목표 달성”을 위해 해당 수출 확대를 공식 정책에 포함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지난 6월 10일자 인민일보는 “재고를 처리하기 위해 신차를 대폭 할인해 중고차로 파는 행위는 중단돼야 한다”며 공개 비판에 나섰다. 신문은 중국 공산당 최고 지도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매체로, “가짜 중고차는 시장 가격 질서를 왜곡하고 소비자 신뢰를 훼손한다”며 “강력한 규제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앞서 그레이트월모터(창청자동차)의 웨이젠쥔 회장도 공개적으로 이 문제를 지적했으며, 상무부는 국내 완성차 업체들과 관련 회의를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중국승용차연합회(CPCA) 추이둥수 비서장은 “무역 장벽을 피해 특정 국가에 진입하기 위한 전략적 수단”이라며 해당 관행을 옹호하고 나섰다. 그는 “아직 중국차가 진출하지 못한 국가들에서 수요를 충족시키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업계에서는 제로마일리지 차량 중 상당수가 내연기관차로, 중국 내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떨어지는 차량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전기차의 경우 보조금이 지급된 상태에서 해외로 팔려나가는 셈이어서 국가 재정 누수 논란도 제기된다. 충칭의 수출업체 ‘환위오토’는 2022년부터 해당 시장에 진출해 전기차 1대당 최대 1만위안(약 140만원)의 수익을 올렸다고 밝혔다.

이러한 과잉 수출이 중국 자동차 산업의 ‘덤핑’ 우려로 이어지며, 러시아 등 일부 국가는 규제에 나섰다. 러시아는 2023년부터 공식 수입상이 있는 브랜드의 제로마일리지 중고차 수입을 금지했고, 요르단 등은 ‘중고차’의 정의를 강화해 중국산 수입을 제한하고 있다.

최근에는 틱톡 셀러, 자영업자 등도 이 시장에 뛰어들며 시장의 혼탁이 심해지고 있다. “예전엔 꽃병이나 와인을 팔던 이들이 지금은 차를 팔고 있다”는 업계 관계자의 말처럼, 진입 장벽이 낮아지며 가격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환위오토 관계자는 “수익성이 계속 낮아지고 있어, 업계 내에서도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해당 구조가 중국의 중앙계획 경제 특성과 맞물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자동차산업 전문가는 “지역정부는 이 수출을 통해 고용지표나 세수 증가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이는 곧 중앙정부의 평가와 연동돼 지역관리자 승진에도 영향을 준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가짜 실적 만들기’가 관행처럼 굳어졌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지 않고 있으나, 인민일보의 발언과 지방정부 정책의 괴리 속에서 향후 중앙의 통제 강화 여부가 주목된다. ‘제로마일리지 중고차’는 단순한 수출 전략을 넘어, 중국식 성장 모델의 그늘을 비추는 거울이 되고 있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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