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신약이 모든 것을 바꾼다
신약 성공의 복잡한 방정식 … 일본 제약사들의 성장과 과제
일본의 제약시장 규모는 약 10조7777억 엔으로 추정되며, 향후 5년간 약 37.28% 성장해 14조7959억엔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일본정부도 신약 개발 역량 강화 및 안정적인 의약품 공급을 위한 정책을 잇달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전통적인 제약사들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최근 동향을 살펴보자.
타케다(Takeda Pharmaceutical Company)는 매출 1위를 자랑하는 일본의 대표적인 제약회사다. 소화기 및 암·종양 분야, 희귀질환의 사업 분야에서 혁신적인 의약품 창출을 통해 제품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고 있다. 올해 3월 기준 매출 4조5000억엔의 90%가 해외에서 발생했다. 2019년 아일랜드의 샤이어(Shire)사 인수를 통해 글로벌 제약기업으로서 위상을 확립했다.
매년 7000억엔 이상을 연구개발에 투자하며 미국·유럽·일본을 잇는 글로벌 R&D 체제를 갖추고 바이오 벤처 및 대학과의 오픈 이노베이션도 적극 추진 중이다. 특히 차세대 치료제인 세포·유전자 치료 분야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경영의 기본정신에는 ‘타케다이즘(Take-daism)’이 있다. 이는 성실・공정・정직・불굴이라는 4가지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다. 타케다 의료진(MR·Medical Representative)에게는 “베스트 인 클래스(Best-in-Class)”를 목표로 성실하게 업무에 임하도록 요구된다. 실제로 한 MR은 “병원에서 사용하는 약을 모두 타케다 제품으로 바꾸겠다는 의사의 제안에 대해 부작용 가능성도 고려하여 ‘이 약으로 증상이 안정된 환자에게만 사용해 주세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환자에게 진심으로 다가가고 의사와 깊이 상의하며 일하는 양보다는 질 중심의 기업 문화가 정착되어 있는 회사다.
최근 샤이어 인수로 인한 막대한 부채와 자본 코스트 증가, 연구개발 투자 증가, 특허 만료로 인한 수익 감소, 성장동력으로 기대할 만한 신약 부족 등으로 인해 기업의 미래 가치를 반영하는 주가는 그다지 상승하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RNA 치료 및 바이오 의약품 확대, 차세대 의약품 파이프라인 구축, AI를 활용한 신약 개발, 데이터 기반의 신약 개발 추진 등 획기적인 노력을 지속적으로 추진 중이다. 아시아 시장에서의 존재감 강화 및 점유율 확대, 가격 정책 및 의약품 공급 강화 등 신흥국 시장에서의 확장에 매우 적극적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타케다의 높은 인지도와 평판을 고려하면 신약 출시를 통한 잠재적인 성장은 매우 높다.
아스텔라스(Astellas Pharma)는 비뇨기와 종양, 면역 분야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글로벌 제약사다. 회사 이름의 유래는 ‘별’을 의미하는 라틴어 ‘stella’, 그리스어 ‘aster’, 영어 ‘stellar’ 등에서 만든 조어이며 ‘선진의 별’ ‘큰 뜻을 품은 별’을 표현함과 동시에 ‘내일을 비춘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대표 제품인 전립선암 치료제 엑스탄디(XTANDI)는 독점적 판매를 통해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매출은 전년 대비 20% 증가해 매년 1조엔 이상의 안정적인 수익이 예상된다.
주력제품과 신약 판매의 호조 그리고 엔저 영향 등으로 올해 3월 기준 매출은 과거 최고인 1조9000억엔을 달성하였다. 매출에 비해서 이익이 낮은 구조로 인해 주가가 하향 곡선을 그려왔지만 2026년에는 매출과 이익의 동시 증가가 예상된다. 아스텔라스는 미국(42%) 유럽·캐나다·호주(26%) 그리고 러시아 중남미 중동 아프리카 중화권 등으로 매출이 분산되어 균형 잡힌 글로벌 구조를 갖추고 있다. 향후에는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 확대가 더욱 기대되며 제품 포트폴리오 측면에서도 대표 제품 외에 3대 주요 의약품의 매출이 크게 증가하는 등 안정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다만 과제도 존재한다. 신약의 특허 보호 기간이 만료되면서 매출이 급감하는 ‘특허 절벽(Patent Cliff)’ 리스크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엑스탄디는 올해 들어 매출이 감소하기 시작했으며 이를 대체할 수 있는 핵심 전략 제품의 조속한 개발이 시급한 상황이다. 또 다른 문제는 신약 후보물질이 부족해 새로운 성장동력이 빈약하다는 점이다. 현재 개발 중인 파이프라인에는 출시가 임박한 제3상 단계의 신약이 없고 대부분은 기존 제품의 적응증 확대에 머물러 있다. 일정 부분 개발 성과는 나타나고 있으나 높은 판매 비용과 연구개발비 부담으로 매출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수익성은 점차 저하되는 추세다.
다이이치산쿄(Daiichi Sankyo)는 항체약물 복합체(ADC) 기반 항암제인 ‘엔허투(Enhertu)’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제약회사다. 대표 제품 엔허투의 개발 스토리는 제약 업계에서 전설에 가깝다. 2010년대 초 단 4명의 연구자가 개발을 시작했지만 전례도 적고 실패 확률이 높아 사내에서 주목받지 못했다.
이들은 독성 약물을 암세포에만 전달할 수 있는 링커 설계에 매달렸고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사람에게 투여 가능한 구조를 완성했다. 회사는 이 기술에 과감히 투자하고 2019년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다국적 제약회사 아스트라제네카와 65억달러 규모의 제휴를 맺으며 글로벌 시장에 진출했다. 2020년 엔허투 개발에 성공하면서 기존 치료제로 듣지 않던 허투(HER2) 저발현 환자들에게도 탁월한 효과를 보였다. 세계 최초로 의료 현장에서 사용되면서 전 세계에서 생명을 살리는 블록버스터 항암제로 자리잡았다.
엔허투의 개발 과정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연구자를 믿고 키우는 문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 남았다. 다이이치산쿄는 훨씬 규모가 큰 세계적 제약회사 아스트라제네카 등의 요청으로 매우 유리한 조건에 엔허투를 공동 개발하는 등 업무제휴를 통해 리스크를 분산하고 새로운 판로를 확대하는 한편 수익 증대 등의 효과를 누렸다. 엔허투의 성공으로 매출액은 2조엔이 될 전망이며 이렇게 되면 앞에서 소개한 아스텔라스 제약을 제치고 일본 2위 제약사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영업이익도 매년 높아져 올해 최고이익을 갱신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허가 2030년 중반쯤 종료 예정이지만 특허가 끝나도 기술적 난이도가 매우 높고 경쟁사가 모방하기 쉽지 않아 특허 종료의 효과가 매우 작다.
신약 개발에 대한 불확실성은 항상 있다. 하지만 다이이치산쿄는 ‘일본의 장인정신으로 밀어붙이면 좋은 약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성공 확률을 높이고 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리고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신약 개발에 대한 도전을 계속 하고 있다.
다이이치산쿄는 ‘혁신적인 의약품을 지속적으로 창출하고 다양한 의료 수요에 부응하는 치료제를 제공함으로써 전 세계 사람들의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에 기여한다’는 기업 이념을 갖고 있다. 그같은 기치 아래 폭넓은 제품 라인업을 통해 사회적 기여를 실현해 온 다이이치산쿄는 암 치료 분야에서의 강점을 바탕으로 선도적인 글로벌 신약 개발 기업으로 도약하는 것을 비전으로 삼고 있다. 향후 글로벌 항암제 사업을 더욱 가속화할 계획이다.
승자독식의 제약 산업
제약산업은 블록버스터 중심의 수익 구조를 지닌다는 점에서 영화산업과 유사하다. 막대한 개발 비용과 높은 실패 확률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신약 하나가 전체 매출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승자독식’ 구조를 가지고 있다. 신약 출시까지는 평균 9~16년이 소요되며 개발 비용도 수백억엔에서 천억엔을 넘어설 만큼 막대하다. 하지만 최종 성공 확률은 약 1/30000에 불과할 정도로 리스크가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에 성공하면 특허를 통해 장기간 수익을 창출할 수 있으며 글로벌 시장을 무대로 국경 없이 사업을 전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산업이다.
사람들의 건강한 삶을 지키는 것은 인류 공동의 과제다. 블록버스터급 신약 개발을 위해서는 경영자의 의지와 기업 문화뿐만 아니라 벤처와의 협업, 디지털 전환(DX) 추진, 데이터 활용 등 기술적 통합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신약 성공을 위한 방정식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나고야 상과대학(NUCB) 마케팅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