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농촌형 국제학교, 전남의 미래를 바꾸는 교육이다
“전남형 국제학교는 교실을 바꾸는 교육이 아니라, 지역을 바꾸는 교육이다.”
‘전남형 국제 바칼로레아(IB)’ 교육은 농어촌 교육의 구조적 한계를 뛰어넘어 지방소멸이라는 거대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장기적 전략이다. 단순한 교육과정 도입이 아니라 공교육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지역사회 전체를 재편하는 구조적 접근이다.
기존의 교육정책은 대부분 수도권을 기준으로 기획되고 실행되어 왔다. 지방은 그 정책을 ‘수용’하는 수동적 위치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전남형 IB는 이 구도를 근본부터 바꾸는 실험이다. 지역이 먼저 문제를 정의하고 해법을 설계하며 정책을 실행하는 구조로 전환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교육을 통한 지역 재생, 이것이 바로 전남형 IB가 지향하는 핵심 가치다.
농어촌 교육의 판을 다시 짜는 ‘전남형 IB’
전남이 선택한 IB는 단순히 외국의 교육과정을 수입하는 것이 아니다. IB의 핵심 철학은 학생 중심, 탐구 중심, 역량 중심 교육이다. 기존의 수능 중심 평가 체계는 점수와 등수를 기준으로 학생을 선별해 왔지만 IB는 문제 해결력 비판적 사고 창의력 협업 능력 자기 성찰 등 미래사회에서 요구되는 복합적 역량을 길러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러한 철학은 도시보다 농촌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지금까지 농어촌 교육은 입시 위주 교육환경에서 소외되어 왔고, 이로 인해 교육 격차와 인구 유출이라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IB는 정답을 외우는 방식이 아닌,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교육을 지향하기 때문에 지역적 자원과 공동체 기반을 가진 농촌 교육과 잘 어울린다. 즉 전남형 IB는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일 뿐 아니라, 지역의 자산을 교육적 자산으로 전환하는 전략이기도 하다.
이러한 접근은 전국 어디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IB를 시범적으로 도입한 지역은 여럿 있지만, 전남처럼 이를 지역 정책의 핵심에 두고 초중고 연계, 대학 협력, 지역 정주와의 연계까지 종합적으로 설계한 사례는 전무하다. ‘전남형 IB 생태계’라는 말이 단순한 수사가 아닌 이유다.
IB는 공교육 체계 안에서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도 전남이 입증하고 있는 중요한 사실이다. 일부 대도시의 국제학교나 대안학교 중심 IB와 달리, 전남은 농촌 공립학교를 IB 거점학교로 삼고 있으며, 교원 연수와 행정 지원, 지역사회 협력까지 포함한 종합적 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는 교육의 공공성과 형평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모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교육은 곧 인구정책이다. 이는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질과 미래에 대한 신뢰의 문제다. 한 가정이 한 지역에 정주할지를 결정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요소는 자녀 교육이다. 지역에 ‘믿고 맡길 수 있는 학교’가 있는지, 아이가 그 안에서 성장을 경험할 수 있는지 여부가 정착의 기준이 된다.
전남은 이러한 교육적 신뢰를 회복함으로써 지역의 인구 구조까지 변화시키고 있다. 예컨대 나주는 IB 교육 도입 이후 가족 단위 이주가 늘고 있다. 한국전력과 자회사 직원들 가운데 실제로 나주에 가족과 함께 정주한 가구는 400가구를 넘어섰다. 이는 주거와 일자리, 교육이 함께 맞물려야 가능한 변화이며, 그 중심에 IB가 있다.
전남이 증명하는 공교육 혁신과 지역 생존
또한 전남형 IB는 지역 대학과의 연계를 통해 교육의 수직 통합을 꾀하고 있다.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KENTECH)는 IB 철학과 유사한 교육 비전을 바탕으로 IB 이수자를 위한 별도 전형을 운영하고 있으며, 실제로 제주와 대구의 IB 고교 출신 학생들을 선발하고 있다. 향후 전남 지역 내 IB 고교 출신 인재들이 지역 대학에 진학하고, 다시 지역에 정착하는 구조가 자리 잡게 되면, 이는 교육-정주-산업이 맞물린 지속 가능한 지역 발전 모델로 이어질 수 있다.
전남은 이러한 가능성을 목포 순천 해남 장성 등 다른 시군으로도 확산시키고 있다. 단일 모델을 그대로 복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각 지역의 사회·문화·산업적 특성에 맞춘 ‘맞춤형 IB 생태계’를 설계해 확장해 나가는 방식이다. 이는 지역 주도형 교육혁신의 좋은 사례이자, 지방자치 시대에 걸맞은 교육정책의 방향을 제시한다.
무엇보다 전남형 IB는 교육을 통해 세계와 연결되려는 시도다. 지방이 ‘중앙을 따라가는 교육’에서 벗어나, 세계 교육 기준을 스스로 받아들이고 그에 걸맞은 구조를 만들어 간다는 점에서 교육 주권 회복의 시작이기도 하다. 글로벌 교육의 문턱을 낮추고, 농촌에서도 세계 수준의 교육이 가능하다는 것을 실증함으로써 전남은 스스로의 가치를 다시 쓰고 있다.
지방의 위기는 곧 교육의 위기다. 반대로 교육의 변화는 지역의 변화를 이끈다. 전남형 IB는 단지 하나의 교육과정 도입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 지역 공동체를 지켜내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설계하려는 실천 전략이다. 전남은 증명하고자 한다. 세계 수준의 교육은 농촌에서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전남형 국제학교는 교실이 아니라, 지역을 바꾸는 교육이다.
문승태(국립순천대 대외협력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