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약세 속 아시아 통화시장 요동
보험사 자산 방어에 대만달러 급등…홍콩달러 하락세에 당국 페그제 수호 총력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대만달러는 2일(현지시간) 미국달러 대비 2.5% 상승해 1달러당 29.16대만달러에 마감했다. 이는 지난 5월 초 이후 하루 기준 최대 상승폭으로, 연초 이후 누적 상승률은 11%를 넘겼다. 대만 생명보험사들이 보유한 1조7000억달러 규모의 해외 자산 대부분이 미국 국채인데, 보험사들이 미국달러 약세에 따른 손실을 줄이기 위해 본격적인 환위험 헤지 거래(미국 달러 가치 하락시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파생상품으로 달러 매도)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BNP파리바의 외환 전략가 챈드레시 자인은 “대만 생보사들이 미국달러 약세에 대비해 대만달러 선물환을 매수하며 시장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메이뱅크의 삭티안디 수파트 연구책임자도 “이러한 헤지 수요와 전반적인 달러 약세가 서로 맞물려 자기강화적(self-reinforcing)인 흐름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대만 중앙은행은 환율 급등에 수출산업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며 최근 수입·수출업체에 투기성 환율 거래를 자제하라고 경고한 바 있다. 대만의 수출 규모는 지난해 기준 4750억달러로 GDP의 60%에 달하며, 이는 세계 평균(29%)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대만 보험사들은 그간 원화나 싱가포르달러를 이용해 미국달러에 대한 헤지를 수행하는 ‘대체 통화(proxy currency)’ 전략을 써왔다. 이는 자국 통화 대신 유사한 통화를 활용해 환위험을 줄이는 방식으로, ‘프록시 헤지(proxy hedge)’로 불린다. 그러나 최근에는 대만달러 자체로 다시 헤지를 수행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자인은 “달러-대만달러 환율이 대체 통화보다 빠르게 움직이자 보험사들이 다시 자국 통화를 중심으로 헤지를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러한 흐름은 원화 강세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실제 원화는 올해 들어 8% 넘게 상승했으며, 최근 총선 이후 재정확대 기대감과 외국인 자금 유입이 더해지며 강세 압력이 커지고 있다.
반면 홍콩은 정반대 상황이다. 홍콩달러는 미국달러에 연동된 페그제(고정환율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최근 환율이 약세 구간인 7.85에 지속적으로 근접하면서 방어에 나서고 있다. 블룸버그에 의하면 홍콩금융관리국(HKMA)은 2일(현지시간) 새벽 20억2000만홍콩달러(약 2조8000억원)를 매입해 시장에서 홍콩달러를 흡수했다. 이는 지난주 개입 규모(9억4200만홍콩달러)의 두 배 이상이다.
홍콩은 미국 금리에 비해 현지 조달금리가 낮아진 상황에서 캐리 트레이드(저금리 통화 차입 후 고금리 통화 투자) 수요가 급증하며 홍콩달러 약세 압력이 가중된 바 있다. 이에 따라 홍콩 금융관리국(HKMA)은 시장 유동성을 줄이고 금리를 끌어올려 투기적 자금 유입을 차단하는 정책을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홍콩달러 페그제’는 1983년부터 이어져온 제도로, 당국은 미국달러 대비 7.75~7.85 범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시 시장에 개입하고 있다. HKMA가 홍콩달러를 매입하면 시중 유동성이 줄고 금리가 상승해 통화 약세를 방어하는 구조다. 반대로 홍콩달러가 과도하게 강세일 경우에는 미 달러를 매입해 유동성을 늘린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잦은 개입과 미국의 불확실한 통화정책으로 인해 페그제 지속 가능성에 대한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지만, 홍콩 정부는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이달 9일 존 리 홍콩 행정장관은 “홍콩의 통화제도는 성공을 위한 핵심요소이며, 페그제를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대만과 홍콩은 같은 달러 약세 국면 속에서도 자산구조와 통화제도 차이에 따라 전혀 다른 외환 대응을 보이고 있다. 아시아 외환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는 가운데, 각국 중앙은행의 대응 방식과 그 파급효과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