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금융질서 재편하는 스테이블코인
2470억달러 규모로 성장한 스테이블코인 시장 … M7 제치고 서학개미 투자 1순위
6월 서학개미들이 빅테크 7개 기업(M7) 대신 스테이블코인을 택했다. 써클과 코인베이스가 나란히 순매수 1, 2위에 올랐다. 암호자산의 가격 변동성을 낮춘 ‘디지털 달러’ 개념의 스테이블코인이 전통 금융과 디지털 자산시장의 경계를 허물며 새로운 투자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가치가 고정된 암호화폐’로 달러와 1:1로 연동되도록 설계된다. 비트코인 등 기존 암호자산의 극심한 가격 변동성을 보완하고 실물경제에서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등장했다. 법정화폐나 국채 등 실물자산을 담보로 발행되는 구조다.
기존 은행송금이 최대 일주일 걸리고 수수료도 5~100달러에 달하는 반면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하면 몇분 내 전송이 가능하고 송금 수수료도 1400원 수준으로 비용과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최근 비자(Visa)와 캐슬아일랜드 투자사가 공동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스테이블코인의 가장 일반적인 사용 목적은 환전이며 그 다음으로는 온라인 쇼핑과 국가 간 결제가 꼽혔다.
6월 11일(현지시간) 마켓워치에 따르면 올해 5월 말 기준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은 약 2470억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미국 광의통화(M2, 약 22조달러)의 1.1%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디지털 자산의 빠른 성장에도 불구하고 아직 전통 통화시스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다만 암호화폐거래소 코인베이스 보고서에 따르면 같은 시점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공급량은 미국 내 유통 중인 현금통화(약 2조4000억달러)의 10%에 근접해 ‘현금’ 기준으로는 점유율이 결코 적지 않다.
탈중앙화 외치는 테더, 시장 점유율 1위
2014년 초기 명칭 ‘리얼코인(Realcoin)’으로 창업한 테더(USDT)가 스테이블코인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초기에는 비트코인 블록체인 기반의 스테이블코인 프로젝트로 설계됐으며 법정화폐에 연동된 디지털 토큰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실현한 사례로 평가된다.
스테이블코인이 특정 국가를 위해 설계된 것은 아니지만 2017년 중국정부의 암호화폐거래소 폐쇄 이후 중국 투자자들이 달러 자산을 우회 확보하는 수단으로 USDT를 적극 활용하면서 시장이 급성장했다. 당시 위챗페이 알리페이를 통한 장외거래(OTC)로 ‘달러’를 확보하려는 수요가 집중되면서 USDT는 사실상 ‘비공식 기축통화’ 역할을 했다.
하지만 테더는 성장 과정에서 여러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테더와 거래소 비트파이넥스가 동일한 모회사 아래 운영되면서 자금 흐름의 투명성 부족으로 수차례 조사를 받았다. 2019년 뉴욕 법무장관은 준비금 없이 USDT를 발행한 사실을 밝혀내 1850만달러 벌금 합의가 이뤄졌고, 2021년에는 ‘100% 달러 담보’라는 허위 진술로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로부터 4250만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현재 테더는 2025년 1분기 보고서 기준 준비금이 부채보다 56억달러 초과하는 구조를 보인다. 1000억달러 이상의 비트코인을 자산으로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준비금 구성은 주로 미국 국채 985억달러, 환매조건부채권(RP) 151달러, 머니마켓펀드(MMF) 63억달러로 구성되며, 이들 미국 자산이 전체의 약 81.5%를 차지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USDT 총발행량은 약 1490억달러로 전체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65~70%를 점유하고 있다.
그동안 디지털 자산이 활성화되고 규모가 커짐에도 바이든정부는 시간끌기 전략을 취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2024년 1월 뒤늦게 비트코인 ETF를 승인하면서 정책 기조가 지연에서 제도화로 선회했다.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은 달러와 미국 단기국채로 100% 담보된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글로벌 달러 패권을 강화하고 단기국채 수요에 기여할 수 있다며 해당 구조를 적극 권장하고 나섰다.
지니어스법안 상원 통과로 제도화 가속도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지니어스 법안(GENIUS Act)’이다. 이 법안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를 위한 제도적 틀을 제공하며 △법정화폐 기반 준비금 보유 의무△감독관청 지정 △정기 회계보고 의무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2025년 6월 17일 미국 상원을 통과해 하원으로 넘어간 상태다.
써클은 미국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 USDC 발행사이며 결제와 송금 등 디지털 금융 인프라를 제공하는 플랫폼 사업자이기도 하다. USDC는 2018년 써클과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가 공동으로 설계해 출시했다. 현재 발행량은 3월 말 기준 약 600억달러 수준이며 준비금은 국채와 환매조건부채권이 약 90%를 차지한다. USDT와 달리 자산 보유 구조와 회계 감사 기준을 명확히 해 법적 신뢰도를 높인 것이 특징이다.
월가가 주도하는 스테이블코인 ‘써클’
6월 5일 써클의 뉴욕거래소 상장은 월가 주도로 스테이블코인 생태계가 제도권에 진입한 신호탄으로 평가된다. 주가는 상장 공모가 31달러에서 종가 263달러까지 약 8배 고점을 찍고 조정을 받고 있다. 주요 투자자로 블랙록 피델리티 골드만삭스 아크인베스트먼트 코인베이스가 이름을 올렸다. 써클은 매주 준비금 상태를 회계법인을 통해 감사받으며 회계투명성을 높이고 있다.
반면 USDC 발행사 써클은 높은 분배 비용 구조로 인한 수익성 악화 우려가 제기된다. 2024년 한해 동안 써클은 전체 매출 17억달러 중 약 9억800만달러(56%)를 코인베이스에 수수료로 지급했으며, 전체 운용비용 중 분배 비중은 60%를 넘어섰다. 컴패스포인트와 바이낸스 등 시장 데이터에 따르면 USDC의 스테이블코인 시장점유율은 2022년 34%에 달했지만 2025년 현재 27%로 감소했다. 최근에는 일주일 만에 순발행량이 약 2억달러 감소하는 사례도 포착됐다. 이는 USDC 수요가 둔화됐거나 경쟁이 심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리플(Ripple)은 2012년 설립됐으며 기존 국제 송금 시스템(SWIFT)의 높은 수수료, 느린 처리속도, 은행 간 신뢰 인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발했다. XRP는 처음부터 글로벌 금융기관 간 국경 간 송금을 빠르고 저렴하게 처리하기 위한 ‘브릿지 통화’로 설계됐다.
리플의 결제 네트워크인 ODL(On-Demand Liquidity)에서는 XRP가 중간 자산으로 사용돼 각국 화폐 간 실시간 환전과 정산을 가능하게 한다.
총 발행량은 1000억XRP이며 이 중 591억XRP가 유통되고 있다. 일부 시장에서는 ‘스테이블코인과 유사한 안정성’을 갖췄다고 평가되며, 특히 자체 통화가 불안정한 남미와 동남아 금융권에서 수요가 높다. XRP는 비트코인 이더리움 테더에 이어 시장 가치 기준으로 네번째로 큰 암호화폐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XRP가 합법성을 놓고 법적 공방을 벌였지만 6월 28일 교차 항소를 취소했다. 리스크 요인이 다소 해소되자 바로 은행업 인가를 신청하며 스테이블코인 진출 의지를 드러냈다.
스테이블코인 이용 흐름은 중국정부의 통제 밖에서 진행됐다. 이에 중국 인민은행(PBoC)은 2019년부터 스테이블코인 장외거래를 통한 불법 외환 유출 차단에 나섰다. 대신 중국은 디지털위안(CBDC, 중앙은행디지털화폐) 개발에 속도를 내며 내수 결제 질서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러시아는 서방 금융제재를 우회하기 위해 암호자산 기반 결제를 확대 중이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남미 국가는 자국 통화 불안정성 때문에 스테이블코인을 실질 결제수단으로 채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스테이블코인 관련 법제 작업을 추진 중이다.
“코인보다 거래소에 투자하라”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시장의 관심은 코인 발행사보다 관련 거래소 기업으로 옮겨가고 있다. 특히 미국 상원을 통과한 ‘지니어스법’을 계기로 코인베이스 써클 찰스슈왑 로빈후드 등 관련 플랫폼 종목들이 강한 상승세를 보이며 제도화 수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코인베이스는 6월 한달 간 주가가 44% 급등하며 스테이블코인 유동성 공급, 예치금 운용, 결제 서비스 확대 등의 효과가 반영되어 주가는 올라있다. 써클 역시 USDC 발행사로서 제도권 입성후 주가는 조정을 거치고 있다.
전통 금융과 디지털 자산의 경계를 허무는 스테이블코인은 달러 패권을 디지털로 확장하는 동시에 새로운 탈중앙 통화 질서를 여는 양면적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 이 변화는 국제 금융의 판도를 다시 쓰는 서막일지도 모른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