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AI의 시대, 최대자산은 브랜드다

2026-05-18 13:00:02 게재

인류 산업사에서 기술혁신은 언제나 새로운 지식재산의 시대를 열어왔다. 산업혁명기에는 특허권이 패권의 핵심이었고, 디지털 경제에서는 저작권이 플랫폼 경제의 중심 자산이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또 다른 거대한 전환점 앞에 서 있다. 생성형 AI가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발명과 창작에 본격적으로 진입하면서 기존 지식재산 체계의 근간이 동시에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세계 각국은 AI 생성물의 권리 귀속, 학습 범위, 인간 개입 기준 등을 둘러싼 제도 정비에 나서고 있다. 기존 질서의 우위를 가진 국가와 기업은 장벽을 세우려 하고, AI 선도 기업들은 그 경계를 허물려 한다. 그러나 AI의 발전 속도와 인간의 활용 확장성을 고려하면, 기존 지식재산 체계만으로 미래 경쟁력을 설명하기 어려운 시대가 오고 있는 것도 분명하다.

AI는 이미 특허 명세서를 작성하고 음악·영상·디자인·논문을 대량으로 생산한다. 과거에는 인간의 창의성과 전문성이 희소성의 근거였다면, 이제는 오히려 무한복제 가능성이 새로운 현실이 되고 있다. 특허권은 기간이 만료되면 공유재가 되고, 저작권 역시 보호기간의 한계를 지닌다. 그러나 상표권은 10년마다 갱신을 통해 사실상 영구적 보호가 가능하다.

결국 AI 시대에 가장 희소한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누구의 것인가를 식별하는 힘’—바로 브랜드다.

기업 브랜드-기술이 범람할수록 브랜드가 강해진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구글은 기술기업이기 이전에 소비자의 신뢰를 축적한 플랫폼이다. 이들은 브랜드를 단순한 마케팅 수단이 아니라 라이선스·IP·프랜차이즈를 통해 직접 수익화하는 전략 자산으로 활용한다. 특허 포트폴리오보다 강력하고 안정적인 현금흐름 자산이 바로 브랜드다.

한국도 삼성이 인터브랜드 글로벌 브랜드 가치 5위를 유지하며 기술 경쟁력을 브랜드 자산으로 전환하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 역시 미래 모빌리티와 디자인 전략을 앞세워 글로벌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면 반도체·배터리·조선 등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100대 브랜드 안에서 한국 기업의 수는 여전히 적다. 기술과 제조 역량이 브랜드 자산으로 충분히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문제의 핵심은 AI 시대에 기술 우위의 지속 기간 자체가 급격히 짧아진다는 데 있다. 생성형 AI는 특허 아이디어의 탐색과 문서화 속도를 높이고, 콘텐츠 생산은 사실상 무한 복제가 가능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기술과 콘텐츠의 희소성이 약화될수록, 소비자의 기억과 경험 속에 축적된 브랜드의 힘은 오히려 더 커진다. 한국 기업이 지금 전환해야 할 무게중심은 특허 중심 IP 전략에서 상표 중심 브랜드 수익화 전략으로의 이동이다.

도시 브랜드- 기억되는 도시가 인재와 자본을 끌어당긴다

오늘날 사람들은 제품만 소비하지 않는다. 도시의 문화와 라이프스타일, 안전성과 감성, 경험과 이미지를 함께 소비한다. 글로벌 인재와 스타트업, 투자 자본 역시 단순한 경제 규모보다 '어떤 도시가 더 매력적인가'를 기준으로 이동하고 있다. 도시 브랜드는 선택이 아닌 생존 전략이다.

해외 주요 도시들은 이미 이 사실을 전략으로 실증해왔다. 뉴욕은 'I ❤ NY' 캠페인으로 도시 자체를 세계적인 문화상품으로 만들었고, 암스테르담은 'I amsterdam' 전략을 통해 도시의 정체성과 혁신 이미지를 하나로 통합했다. 싱가포르는 국가 전체를 금융·혁신 브랜드로 체계적으로 육성했다. 이 도시들의 공통점은 단순한 관광 홍보가 아니라 일관된 식별력을 장기적으로 구축했다는 점이다.

서울은 K-팝·K-푸드·디지털 문화·안전성이 결합되며 글로벌 라이프스타일 도시로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은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 부산은 해양·영화·관광, 전주는 음식과 전통문화, 강릉은 자연과 커피 문화, 경주는 역사문화라는 분명한 정체성 자산을 갖고 있다. 각 지방 도시들의 강점들이 장기적이고 통합된 도시 브랜드 전략으로 연결된다면, 각 도시는 글로벌 무대에서 독자적인 식별력을 가진 브랜드 자산으로 성장할 수 있다.

국가 브랜드 - K-브랜드는 대한민국의 가장 강력한 전략 자산

AI 시대에 국가 경쟁력은 GDP나 제조 역량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세계의 소비자와 투자자, 인재들이 그 국가를 어떤 이미지로 기억하는가가 점점 더 결정적인 변수가 되고 있다. 기술은 빠르게 평준화될 수 있지만 국가의 신뢰와 문화적 매력, 식별력은 쉽게 대체되지 않는다.

K-팝·K-드라마·K-뷰티·K-푸드·K-테크는 단순한 산업 현상이 아니다. 이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브랜드가 자발적으로 세계로 확장된 결과다. 한국은 이제 제조 수출국을 넘어 문화와 기술, 디지털 라이프스타일이 결합된 국가 브랜드로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K-브랜드의 영향력이 커졌지만 이를 장기적 국가 무형자산으로 체계적으로 관리·보호·수익화하는 전략은 아직 미흡하다. 미래의 국가 경쟁력은 ‘얼마나 많은 기술을 가졌는가’보다 ‘세계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름인가’로 결정된다.

AI가 기술과 창작을 범람시킬수록, 인간과 시장은 결국 신뢰할 수 있는 이름을 선택한다. 앞으로 가장 강한 기업은 가장 뛰어난 기술만 가진 기업이 아니라 가장 강력한 브랜드를 가진 기업이 될 것이다. 가장 경쟁력 있는 도시와 국가 역시 가장 기억되는 브랜드를 가진 곳이 될 것이다.

이제 한국은 특허 강국을 넘어 브랜드 전략 국가로 전환해야 한다. 기업은 상표권 중심의 IP 전략과 브랜드 수익화 모델을 강화하고, 각 도시는 고유한 정체성을 글로벌 식별력으로 연결해야 한다. 그리고 국가는 K-브랜드를 일시적 문화 현상이 아닌 대한민국의 핵심 무형자산으로 관리해야 한다. AI 시대의 진짜 경쟁은 기술 경쟁이 아니라 브랜드 경쟁이다. 그 중심에 브랜드 전략이 있어야 한다.

고영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AI첨단경영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