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정부 1기 경제팀 과제 첩첩산중 ① 대외불확실성

한치 앞 보이지 않는 ‘트럼프 리스크’…첫 시험대 오른 경제팀

2025-07-08 13:00:02 게재

트럼프 “8월부터 상호관세 25% 부과” 일방 통보 압박

정부 “경쟁 상대국보다 불리하지 않은 수준으로” 목표

향후 3주 관건, 깜짝카드 나올까 … 한미정상회담 주목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리 정부에 “내달 1일부터 25%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8일 통보했다. 두 나라는 앞으로 3주 가량 ‘끝판 협상’을 벌이게 됐다. 겨우 출범 한 달을 맞은 이재명대통령과 1기 경제팀은 출발 선상에 서자마자 강력한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1기 경제팀이 직면한 경제사정은 엄혹, 그 자체다. 코로나19 이후 내수는 장기부진에 빠져 있다. 반도체와 수출·내수산업 부진, 고령화 탓에 올해 경제성장률은 0%대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는 상황이다. 여기에 ‘트럼프 리스크’란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 선 셈이다.

◆SNS에 통보서한 게시한 트럼프 = 글자 그대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대외불확실성’에 직면했다. 더구나 상대는 국제법과 통상관례쯤은 벗어던진 세계최강국 미국이고, 예측 자체가 불가능한 트럼프다. 이 대통령과 경제팀이 어떤 카드를 내놓을지, 협상력을 제대로 보여줄지에 온 국민이 주목하는 이유다.

트럼프는 전날 정오(현지시각)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일본과 한국 등에 보낸 서한을 공개하고 이어 다른 나라들에 보낸 서한도 게재했다. 우리나라가 그랬다면 ‘외교결례’ 비난에 직면할 법한 방식이다. ‘트럼프 관세’에 상대적으로 강력 저항하고 있는 EU나 중국은 뺀 채 만만한 상대를 고른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미국의 전통적 우방국인 한국과 일본을 첫 통보대상으로 삼았다. 세계에 ‘우방국이라도 만족할 협상안을 제시않으면 관세부과국이 될 것’이란 점을 과시하는 효과도 노린 것으로 풀이된다. 두 나라는 미국의 동맹국이면서 대미 무역흑자 규모 10위권에 포함돼 있다.

한국 정부로선 아쉬운 대목이 많다. 특히 5일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6일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이 잇달아 미국 워싱턴DC를 찾아 관세 협의에 나선 상황이었다. 그나마 4월 발표된 상호관세율에서 1%p 올라간 일본(24%→25%)과 달리 4월 발표치 그대로 통보받아 ‘최악은 피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추가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드높은 대미무역장벽이 현실이 된다. 8월부터 기존 자동차, 철강·알루미늄 등 품목별 관세에 전체 품목에 적용되는 상호관세가 부과된다.

관세 부과엔 관세로 맞대응하는 게 관례지만 미국엔 쉽지 않다. 트럼프는 서한에서 이미 “보복관세를 시행한다면 미국도 추가 관세로 대응하겠다”고 오름장을 놨다. 수출과 방위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 입장에선 ‘제3의 길’을 찾을 수밖에 없다.

◆남은 카드, 한미정상회담 = 정부는 상호관세율을 최저치(기본관세율인 10%)로 낮추는 한편, 자동차(25%), 철강 및 알루미늄(각 50%) 관세를 면제받자는 입장이다. 이게 어렵다면 적어도 경쟁상대국보다 불리하지 않은 수준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정부가 검토하거나 미국측이 제안 중인 협상카드는 3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우선 조선과 알래스카 개발사업 등 미국이 관심을 갖는 산업분야 협력 카드가 있다. 한국 입장에선 윈윈할 수 있는 최상의 카드다. 방미 중인 여한구 통상산업본부장도 지난 5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이 대미투자에 관심을 보이고 있고 상호 협력 가능성이 높은 AI(인공지능),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에너지, 바이오 등 분야들이 사실 미국이 제조업을 재건하는 데 있어서 큰 협력을 필요로 하는 분야”라며 “한국이 그런 분야에서 독보적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런 관세 협상과 4~5년 중장기적인 한미 산업과 기술 협력 등을 다 묶어서 포지티브섬(positive sumㆍ제로섬의 반대말)으로 협상을 하려고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방위비 부담증액 논의될까 = 나머지 카드는 ‘미국측 요구’ 성격이 훨씬 강하다. 방위비와 농산물 개방 폭 확대다. 정부도 관세 협상에서 방위비 문제가 다뤄지는 상황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특히 미국은 방위비 문제와 무역협상을 연계해 ‘일괄 타결’을 압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에게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5%까지 올리라고 요구한 바 있다. 문제는 한국은 이미 GDP(국내총생산) 대비 국방비가 2.3~2.6%인 데다 주한미군 주둔 비용 분담 역시 상대적으로 적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도 양보할 여지가 많지 않은 셈이다.

미국측은 또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소고기 수입 규제 완화와 쌀 시장 개방도 거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것 역시 ‘국민정서’나 ‘농업주권’과 관련된 것이어서 양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결국은 이같은 카드는 이 대통령과 트럼프의 한미정상회담에서 일괄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정부는 이재명 대통령의 재임 첫 한미정상회담을 모색 중이다. 방미 중인 위 실장의 핵심 현안도 정상회담 일정을 논의하는 것이다. 두 나라는 7~8월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문제를 조율하고 있다.

한편 이번 관세 협상은 한·미 양국 사이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닌 만큼 결국 경쟁국에 비해 얼마나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내느냐가 최종 성적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본의 경우 자동차·반도체·디지털 무역 분야에서 한국과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 EU 역시 디지털세와 플랫폼세 등 미국과 마찰을 빚어왔다. EU가 먼저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의결하는 등 ‘암묵적 담합’을 깨면서, 한국과 일본은 시범 케이스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진 상황이다.

◆기재부 긴급점검회의 = 정부는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긴급점검회의를 갖고 대응책 마련에 비상이 걸렸다.

이형일 기획재정부 장관 직무대행 1차관은 이날 오전 긴급 시장점검회의를 열어 미국 관세 관련 동향과 시장영향을 점검하고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회의에는 국제금융센터와 관련 실·국이 참석했다.

이 대행은 “미국 관세부과의 진행 양상에 따라 국내외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는 만큼 각별한 경각심을 갖고 대응할 계획”이라며 “관계기관 긴밀한 공조 하에 미 관세 관련 동향과 금융·실물경제 영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시장이 경제펀더멘털과 괴리돼 과도한 변동성을 보일 경우 상황별 대응계획(컨틴전시 플랜)에 따라 즉각적이고 과감하게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문신학 1차관 주재로 민관 합동 긴급 점검 회의를 개최한다. 회의에는 산업부를 중심으로 한 정부 유관 부처 관계자들과 자동차, 철강, 이차전지, 바이오 분야 협회와 현대자동차, 포스코, LG에너지솔루션 등 기업 관계자들이 참석한다. 대한상의와 한국경제인협회, 한국무역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중소기업중앙회 등 주요 경제단체 관계자들과 국책 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과 산업연구원 관계자들도 회의에 들어온다.

참석자들은 미국의 대한국 관세 부과 시나리오별 국내 산업 영향과 대미 투자 등 공동 대응 방향을 논의할 계획이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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