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석 칼럼

의대 진학 광풍, 잡아야 한다

2025-07-09 13:00:01 게재

부동산 투기는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나, 의대 진학 광풍에 마침표를 빨리 찍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듯하다. 자녀를 의사 만들려는 부모들의 욕망은 세인의 비판 대상이 아니다. ‘내 새끼가 의사가 되면 좋지, 누가 그걸 말려’ 라고 한다.

문제는 그것들의 총합이 만들어낸 현상인 의대 열풍이 한국 사회의 건강성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거다. 또 초엘리트를 의대가 독식하는 현행 구조는 사회의 국제 경쟁력을 심각하게 떨어뜨리고 있다. 그러니 이 미친 바람을 가라앉히는 데 한국 사회가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의대 정문 안으로 부모들이 자녀들을 들여보내려 난리 법석을 떨기 시작한 게 90년대 중후반이다. IMF 외환위기가 닥친 이후다. 환난 이후 직업의 안정성이 무너지는 걸 본 사람들은, ‘각자도생’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걸 알았고, 안정적인 직업이 뭐냐를 찾았다. 그 중 하나가 의사이며, 의사는 정년도 없이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부모들은 의과대학 간판만 달고 있으면 그곳이 어떤 곳이든 간에 자식들을 문안으로 들여보냈다. 필자가 만난 한 대학병원 교수는 국제 수학올림피아드에서 은메달을 딴 수학영재 출신이다. 그는 “왜 의대에 진학했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부모가 권했다”라고 답했다. 수학과에 진학해 수학자의 길을 갈 수 있었을 사람이 의사로 방향을 튼 것이다.

한국 사회 건강성 떨어뜨리는 의대 열풍

이런 현상이 아래쪽으로 어떤 연쇄작용을 일으키고 있는가는 지난 주말 서울 대치동 입시학원가에 갔을 때 확인할 수 있었다. 학원들이 입주해 있는 한 건물 내부에 들어가니 복도 창문쪽에, 축하 화환에 달려 있었던 띠들이 줄줄이 걸려 있었다. ‘서울대 의예 합격 중동 ○○○, 원장님 감사합니다’ ‘서울대 의예과 ○○○, ×××선생님 감사합니다’ ‘가천대 한의예과 ○○○ 휘문고’. ‘경희대 의대 ○○○...’ ‘중앙대 의대 ○○○’, ….

의대의 인재 싹쓸이를 염려하면서도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은 새로운 현상에 기대를 한때 하기도 했다. 의사가 된 초엘리트들이 의료 산업의 세계적인 경쟁력 확보와 같은 성과를 일궈내 한국사회에 기여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성적표를 보고 있다. 전 세대에 비해 초엘리트 의사들이 별다른 걸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거다. 그러는 한편 우리는 또 의사의 평균 소득이 다른 직군에 비해 월등하게 높은 걸 알게 되었다.

의사의 한 해 평균 사업소득은 4억원이었다(2014-2022년 귀속 전문직 종사자 업종별 사업소득 현황). 4억원은 다른 직군은 꿈도 못꿀 액수다. 의사 다음이 세무사이고, 세무사 평균 소득은 1.2억원이다. 한때 선호하는 직업이었던 변호사는 저 아래로 평균 소득은 7000만원이다. 의사들 소득이 껑충 뛰고 있다는 점은 또 괄목할 만하다.

복지부 자료를 보면 2022년 병의원에서 일하는 의사 9만2590명(전공의 제외)의 평균 연봉은 3억100만원인데, 2016년 이후 연 평균 6.4%가 늘어났다. 그러니 6년 전과 비교하면 수입이 44.7%가 증가했다.

의사들 소득과 다른 국민의 수입을 비교하는 통계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낸다. 2023년 OECD에 따르면 한국 의사 소득은 전체 노동자 평균 임금보다 6.8배 가까이 많았고, 놀라운 건 다른 OECD회원국보다 그 격차가 압도적이었다는 점이다. 2위(벨기에) 5.8배, 3위 5.6배, 4위(오스트리아) 4.5배, 5위(캐나다) 4.2배보다 유난히 격차가 컸다.

OECD 통계는 의사라는 특수한 집단이 그 사회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이 통계는 한 사회의 건강성을 드러내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OECD통계는 한국 상황이 극단적이라고 말하고 있는 거다. OECD 통계에 대해 일부 의사는 자료가 엉터리라고 비판하고, 의대 정원을 늘리기 위해 정부가 의도적으로 통계를 왜곡한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필자는 통계 조작설 운운하는 사람들에게 왜 자신들이 돈을 많이 번다는 것에 대해 떳떳하지 못하는가 하고 되묻고 싶다. 불러오는 호주머니를 감추고 싶은 것인가?

의사들과 한국사회 다른 직군간의 소득이 벌어지는 현상은 위험한 신호다. ‘의정갈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전공의들 파업의 명분은 의대 교육 부실화 우려였지만, '돈' 문제가 핵심이라는 걸 우리는 안다. 전공의들이 왜 단체 행동했는가를 모를 정도로 다른 국민이 바보는 아니다.

의대 광풍의 근원인 핵심 문제를 건드려야

이재명 대통령은 “전공의 복귀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달라”고 김민석 총리에게 당부하는 등 윤석열정부가 초래한 ‘의정갈등’을 해결할 의지를 보이고 있다. 전공의 파업 사태는 진정될 것이다. 그러고 나면 사태의 깊은 뿌리를 봐야 한다. 의대 광풍의 그 근원이 되는 핵심 문제를 건드려야 한다.

이익 집단의 저항을 물리치고 변화를 일궈내는 건 쉽지 않다. 그렇기에 일 솜씨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재명 대통령에게 기대한다.

최준석 과학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