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상법개정 이후에 해야 할 일들
더불어민주당 중심으로 추진돼오던 상법 개정안이 마침내 지난 3일 국회를 통과했다. 재계는 물론이고 윤석열정권이 집요하게 반대하고 막아오던 법안이 정권 몰락과 함께 빛을 보게 된 것이다. 국회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에는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하고, 전자 주주총회 도입이 의무화됐다.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3%룰’ 확대도 진통 끝에 담겼다. 상장사 사외이사도 독립이사로 바뀐다. 이에 따라 소액주주의 권리가 크게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고질적인 코리아디스카운트가 해소될 전기가 마련됐다는 데 큰 이론이 없는 것 같다. 특히 총수 입맛대로 계열사를 이리저리 붙이고 떼면서 불필요한 자산만 늘리는 악습이 제약될 가능성이 엿보인다. 특히 재벌들이 무분별한 사업확장을 통해 무수익 자산만 늘리고 기업을 좀먹는 일이 멈춰질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고질적인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할 전기 마련
그래서인지 요즘 주식시장은 전례없이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분위기도 밝아진 듯하다. 불법계엄으로 인한 내란사태 종식에 따라 나라 전체의 일기가 화창해지더니, 그 분위기가 상법 개정을 계기로 주식시장으로 번져간 듯하다. 이렇게 좋아진 분위기가 이어진다면 앞으로 기업이 필요한 자금을 증시에서 조달하기도 쉬워진다. 같은 주식을 상장하더라도 더 많은 자금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곧 재무구조 개선과 함께 투자여력이 증대되는 효과로 이어진다.
다만 재계의 반대와 불만은 여전한 것 같다. 그렇지만 재계의 반대논리가 타당성 없다는 것은 굳이 말로 반박할 필요도 없다. 지난해 투자가들의 ‘국장탈출’ 움직임과 최악의 주가부진이 이미 입증했다. 일부 재벌이 투자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짓을 자행했기에 소액투자자들의 반발과 함께 금융당국의 수정요구를 불러들이기도 했다. 사실 재계는 과거에도 중요한 개혁과제에는 흔히 발목을 잡아왔다. 이를테면 정부가 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하려고 할 때에도 재계는 기업비밀이 유출된다며 반대했다. 그러는 동안 재벌의 방만한 경영은 멈출 줄 몰랐고 결국 외환위기라는 엄청난 재난을 초래하고 말았다.
이번 상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미흡한 대목이 아직 남아 있다.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확대는 추후 논의 과제로 남게 된 것이다. 앞으로 국회에서 공청회 등을 통해 의견을 더 수렴한다고 한다. 아무리 좋은 법안이나 정책이라 하더라도 한꺼번에 다 들여올 수 없다. 의견차가 작지 않을 경우 좀더 충분한 토론과 검토를 거치는 것이 필요하고 바람직하다. 로마의 법률가이자 철학자 키케로가 지적했듯이 좋은 제도를 새로 시행하는 것보다 나쁜 법제를 없애는 것이 더 급하다.
실제로 상법 개정과 관계없이 개선이 시급한 과제가 적지 않다. 예컨대 사외이사가 독립기구로 전환된다고 하는데 그것으로 충분한지는 의문이다. 국내 상장된 기업들의 대부분이 여전히 CEO가 의장을 겸임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외이사가 실질적으로 독립성을 확보하려면 이사회 의장이 CEO로부터 분리될 필요가 있다. 특히 재벌 오너의 과도한 보수와 전횡을 막기 위해서 시급한 과제라고 여겨진다. 실제로 물의를 빚거나 과도한 보수로 눈총을 산 기업과 증권사는 대체로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겸임하고 있다. 견제기능이 작동할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사외이사 실질적 독립성 확보 위해 법보다는 합리적 관행 만들어내야
무조건 법으로 해결하자는 것은 아니다. 이번 기회에 기업 스스로 분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다. 상법개정의 취지와 정신을 수용하고 실천하는 방식의 하나다. 그렇게 하면 ESG평가가 높아지고 기업가치도 상승하는 열매로 돌아올 것이다. 기업가치가 높아진다면 감히 그 누가 경영권 탈취를 시도하기도 어려워진다.
만약 스스로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어쩌면 언젠가 분리를 의무화하자는 법이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또 하나의 원치 않는 규제가 발동됨을 의미한다. 그 과정에서 또다시 소모적인 논란이 빚어질 가능성도 작지 않다. 그런 타율적인 모습을 이제는 청산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모든 것을 성문법에 맡기는 것보다는 합리적 관행을 정착시켜 나가는 것도 민주공화국의 순리요 미덕이다. 정부도 구체적 방안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현재 국책은행이나 공기업의 경우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이 거의 분리되지 않은 상태이다. 이를 우선 개선하면 된다. 민간 대기업과 금융사에게 모범을 보이라는 것이다.
차기태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