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관세압력 후폭풍…정부, 플랫폼법 제정 ‘속도 조절’?

2025-07-10 13:00:22 게재

NTE보고서·업계·싱크탱크 잇단 문제 제기

미 공화당 의원 43명 USTR에 서한 압력

시민단체·여권일각 “노골적 내정간섭” 비판

민병덕 의원 등 “국민 위한 입법 추진해야”

미국이 우리나라에 대한 상호관세 25% 부과를 유지했지만 발효 시기는 다음달 1일로 연기됐다. 이런 와중에 미국측이 디지털 규제를 비관세 장벽으로 지목, 공정거래위원회가 추진하던 플랫폼법 제정이 늦춰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10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8월 1일부터 한국산 모든 제품에 대해 상호관세 25%를 부과하겠다고 통보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디지털과 농산물 등 다양한 분야의 비관세 장벽을 거론하며 문제를 삼고 있다. 하지만 시민단체와 여권 일각에서는 미국의 압박이 ‘협상 수준을 뛰어넘은 노골적 내정간섭’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민병덕 의원은 “공정한 시장을 만들기 위한 법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우리의 주권이고 국민을 위한 입법”이라며 “미국 산업계 이해를 존중하되 대한민국 소비자와 자영업자의 고통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미국 트럼프행정부의 관세압력이 노골화되면서 정부가 추진하는 플랫폼법 제정이 늦춰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플랫폼법이 비관세장벽? = 미국이 문제삼는 디지털분야 비관세장벽의 대표 사례가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플랫폼법이다.

실제 USTR이 매년 발표하는 무역장벽 보고서(NTE)에도 플랫폼 규제를 디지털 무역 장벽 중 하나로 언급한다. 미국 IT업계는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컴퓨터통신산업협회(CCIA) 등을 통해 플랫폼법 추진 중단을 상호관세 협상 카드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정책 싱크탱크인 정보기술혁신재단(ITIF)도 한국 플랫폼법과 같은 과도한 규제가 시장 위축을 초래할 수 있다며 입법 중단을 촉구했다.

미국 정치권은 한발 더 나갔다. 미국 하원 공화당 의원 43명은 지난 3일 미국 무역대표부(USTR) 등에 서한을 보내 “한국의 플랫폼법이 유럽연합(EU)의 디지털시장법(DMA)을 모방해 미국 기업에만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들은 “이 법안은 미국 디지털 기업들을 과도한 규제 요건으로 표적 삼고 있다”며 “미국 기업만을 과도하게 겨냥해 바이트댄스, 알리바바, 테무와 같은 주요 중국 디지털 대기업은 사실상 규제를 면제함으로써 중국 공산당 이익을 대변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플랫폼법 추진 현황은 = 공정위의 플랫폼법은 시장 영향력이 압도적인 지배적 플랫폼의 ‘4대 반칙 행위’를 규율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일정 기준을 만족하는 지배적 사업자의 △자사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최혜대우 요구 등 4대 반경쟁 행위를 규율하겠다는 것이다. 플랫폼법 제정은 지난 대통령선거 당시 이재명 후보가 내건 대선공약이기도 하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문재인정부 때부터 플랫폼법 제정을 당론으로 내걸고 법제화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재명정부 출범 뒤 공정위는 통상 문제가 불거지지 않도록 관계 부처와 소통해 적절히 대응하며 법제화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미국 각계의 반발이 계속되고 있어 공정위가 플랫폼법 입법 속도와 수위를 조절하는 기류다.

실제 공정위는 미국의 관세압박이 현실화하면서 유독 미국 기업과 관련한 조사에 미온적으로 대응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최근 조사를 중단한 마이크로소프트(MS) 사건이 대표적이다. 공정위는 지난해부터 MS의 업무 보조용 인공지능(AI) 서비스인 ‘코파일럿’(Copilot)을 윈도 운영체제(OS)와 사무용 소프트웨어 제품(M365)에 끼워파는 행위에 대해 조사 중이었다. 하지만 최근 조사를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MS는 2023년 12월에 선보인 코파일럿을 끼워팔면서 일부 제품가격을 올려받고 있다. ‘코파일럿 끼워팔기’는 미국에서도 시장경쟁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반독점법에 따라 조사가 진행 중인데 한국 공정위가 위법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조사를 중단한 것이다.

◆여당 “2개 법안 분리입법 추진” = 미국의 통상압력에 따른 속도조절은 여당 내에서도 읽히고 있다. 우선 여당은 플랫폼법을 거래공정화법과 독점규제법으로 분리해 거래공정화법을 우선 추진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전날 기자회견을 열고 거래공정화법을 조속히 입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만 독점규제법 추진 논의는 속도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국회에서 논의 중인 플랫폼법은 2종류다. 거래공정화법(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은 대형 플랫폼업체와 입점업체간의 갑을 관계를 규율하는 법안이다. 독점규제법은 플랫폼업체 사이의 독과점 문제를 규제한다. 우리나라의 네이버 등을 포함해 구글과 메타 등 미국 기업도 규제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통상마찰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거래공정화법부터 우선 제정하겠다는 취지다.

◆“내정간섭에 굴복?” 비판도 = 하지만 시민단체와 소상공인연합회, 여당 일각에서는 “예정대로 2개 법안 모두 법제화를 신속히 추진해야 한다”며 지적하고 있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장은 전날 ‘플랫폼법 제정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정치권 합의가 되지 않는다면, 패스트트랙을 통해서라도 반드시 이번 임시국회에서 처리돼야 한다”고 했다. 회견에는 민 의원을 포함해 온라인 플랫폼법을 발의한 13명의 국회의원과 중소상인·소상공인·자영업자·시민사회단체가 참석했다.

민 의원은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은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민주당의 민생경제 핵심 당론으로, 사회적 공감대도 확고하다”면서 “지난 3일 상법 개정안이 통과된 만큼 이제 국회는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을 다음 민생 법안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했다.

김남근 의원은 ”디지털 독과점을 규제하는 법은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입법되고 있으며,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내용도 유럽의 디지털시장법과 거의 같은 내용”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일본도 소프트웨어 독점 규제를 기획하고 있고, 독일, 호주, 영국 등도 비슷한 방식을 하고 있으므로, 만약 문제가 된다면 세계 보편적으로 문제가 될 것이지, 한국만 문제가 될 것이 아니고 절대 차별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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