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푸드 넘어 식품강국으로, 지금이 골든타임
오늘날 전 세계 어디서든 한식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한때 김치와 불고기로 대표되던 한식은 이제 떡볶이 김스낵 전통주까지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어 글로벌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이는 단순한 음식의 수출이 아니라 한국 문화와 감성을 담은 콘텐츠로서 세계인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대한민국 식품산업은 1950년대 전후 식량 부족의 절박한 현실에서 시작되었다. 외국 원조물자에 의존하며 원조 밀가루로 빵과 라면을 만들던 시절을 거쳐 1970~1980년대 산업화와 함께 대량생산-대중소비 모델을 구축했다. 1990년대 이후에는 식품안전과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해썹(HACCP) 기능성 식품 친환경이라는 키워드가 등장했다. 2000년대 한류 열풍과 디지털 플랫폼의 확산으로 ‘K-푸드’라는 브랜드가 탄생했다.
급성장하는 K-푸드, 하지만 과제도 산적
현재 국내 식품산업은 약 360조원 규모이고 수출도 꾸준히 증가해 2025년에는 140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K-콘텐츠와 연계한 제품 마케팅 맞춤형 건강기능식품 푸드테크 등의 부상은 산업의 확장성을 더욱 키우고 있다.
최근 세계 식품시장은 급변하고 있다. 팬데믹 이후 식량안보와 공급망 안정성이 핵심 이슈로 부상했다. 기후변화 고령화 건강 맞춤형 식품 수요 증가 등 구조적 변화가 본격화되고 있다. 여기에 인공지능(AI) 대체 단백질 스마트 농업 등 기술혁신이 글로벌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K-푸드 열풍은 분명한 성과이지만 이제는 개별 제품의 인기를 넘어 산업 전반의 체질 개선과 전략적 도약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산업 구조 기술 기반 규제 체계 소비문화 전반에 걸친 고도화가 필수적이다.
가장 먼저, K-푸드 브랜드의 고도화와 다양화가 요구된다. 단순히 한식을 해외에 알리는 것을 넘어 각국의 식문화와 조화를 이루는 맞춤형 제품 개발이 중요하다. 김치 불고기 고추장을 넘어 ‘K-디저트’ ‘K-음료’ ‘K-비건푸드’ 등으로 영역을 확장해야 한다. 세계 셰프 및 콘텐츠 플랫폼과의 협업을 통해 K-푸드를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승화시킬 필요가 있다.
둘째, 디지털 전환을 통한 스마트 식품산업 구축이 필요하다. 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활용해 맞춤형 영양식 스마트 제조·유통 식품 이력추적 시스템 등을 구축해야 한다. AI가 식습관을 분석해 개인화된 식단을 제안하거나 블록체인을 통해 원재료의 유통 경로를 소비자에게 투명하게 제공하는 방식을 통해 식품의 안전성과 신뢰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셋째, 글로벌 식품안전 기준 대응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해외 시장 진출 시 가장 큰 장벽 중 하나는 각국의 복잡한 식품 규제이다. 국제 식품 기준(Codex) 할랄 코셔 FDA(미국 식품의약국) 등 다양한 규격에 부합하는 품질관리 시스템을 사전에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국내에서도 글로벌 규제에 대응할 수 있는 식품안전센터나 인증지원기관의 육성이 시급하다.
넷째, 지속가능성과 국산 원료 기반의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기후위기와 자원 고갈 시대를 맞아 식품산업 역시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스마트 농업 지역 농산물 연계 대체 단백질 개발 등을 통해 농업과 식품산업 간의 연계 구조를 강화하고 자급률을 높여야 한다. 이는 식품주권 확보와도 직결된다.
5대 핵심 과제로 식품강국 도약해야
다섯째, 중소기업을 지원하고 전문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중소 식품기업은 기술력과 아이디어는 뛰어나지만 해외 마케팅이나 수출 유통망에는 취약하다. 정부와 공공기관 협단체 차원에서 수출 플랫폼 현지 인증 마케팅 자료 제공 등 실질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식품공학 국제규제 소비자 분석 등 융합형 전문 인재 양성도 병행돼야 한다.
식품산업의 도약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모든 주체의 협력이 필요하다. 산업계는 기술 혁신과 품질 경쟁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과 윤리적 소비 흐름에 부응해야 한다. 정부는 안전을 확보하면서도 산업의 경쟁력을 해치지 않는 ‘균형 잡힌 규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소비자는 건강과 환경을 고려한 소비를 통해 지속 가능한 산업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주체들의 역할을 연결하는 단체의 역할도 중요하다. 협회나 단체는 기업과 정부 소비자 사이를 잇는 창구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회원사 간 정보 공유 수출입 데이터베이스 구축 국제 박람회 공동 참가 식품 안전 및 영양 정책 자문 등 정책-산업 간 연결고리를 강화해야 한다. 특히 중소기업의 해외 진출을 위한 공동 플랫폼으로 기능해야 한다. 규제당국에 로비하던 예전의 모습을 벗어나 세계 시장을 향해 나가는 기업들의 든든한 조력자이자 지원자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식품산업은 이제 단순한 생계 산업이 아니다. 건강 환경 기술 문화가 융합된 고부가가치 산업이며 미래 국가경쟁력의 핵심이다. 지금이야말로 대한민국 식품산업이 한 단계 더 도약해 세계 식탁의 트렌드를 이끄는 리더로 자리매김할 골든타임이다. ‘K-푸드’는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낸 미래다. 지금 우리가 무엇을 준비하느냐에 따라 내일의 대한민국 식탁은 달라질 것이다. 정부 기업 소비자 유관 단체 모두의 협력을 통해 K-푸드의 명성을 넘어 진정한 식품강국으로 도약해야 할 때다.
정용익(대전 YMCA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