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재정’ 아닌 ‘혁신 주도’ 성장이 살길

2025-07-11 13:00:01 게재

21일부터 전 국민 대상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을 시작으로 이재명정부의 ‘경기회복 특별작전’이 본격 막을 올린다. 정부와 여당이 최근 확정지은 31조8000억원 규모의 올해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은 ‘경제성장 동력 회복’에 초점이 맞춰졌다. 빈사상태에 빠진 내수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전 국민에게 최소 15만원, 최대 55만원씩 소비쿠폰을 지급하기로 한 게 대표적이다. 11월 말까지 쿠폰을 사용하지 않으면 자동 소멸되도록 해 지원금 전액을 내수 소비지출로 연결시키는 장치도 마련했다.

이 대통령은 “신속한 추경 집행으로 경기 회복과 경제 성장의 새 길을 여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한국은행을 비롯해 국내외 전문기관 대부분은 올해 한국이 0%대의 ‘제로 성장’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새 정부가 일각의 ‘재정 과다집행’ 논란을 일축하고 대규모 경기부양용 추가예산을 긴급 편성하고 즉각 집행에 나선 배경이다. 이 대통령은 “지금은 경기침체가 너무 심해서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 국가재정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이라며 ‘적극 재정’의 중요성을 연일 강조하고 있다.

국내 경기 ‘응급처방’ 필요한 비상상황이지만 근본 치료도 서둘러야

그의 말대로 지금 국내 경기가 ‘응급처방’이 필요한 비상상황이라는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응급처치가 치료의 전부일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하다. 요즘 한국의 경제상황은 중병에 걸린 데다 체력마저 고갈돼 당장은 기력 회복이 급선무인 복합중증 환자에 비유할 수 있다. 응급처치에 이어 근본 치료를 서둘러야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온전한 회생으로 이끌 수 있다.

이는 추경 투입의 경제효과에 대한 전문기관들의 예측으로도 뒷받침된다. 한국은행은 이번 추경 집행이 올해 성장률을 0.2%p 끌어올릴 것으로 예상했고,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0.1%p 기여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전망한 0.14~0.32%p가 가장 낙관적 수치다. 한은의 올 성장률 전망치가 0.8%였던 것을 감안하면 32조원 가까이를 퍼부어도 올해 성장률이 1%를 넘기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잠재성장률)이 아무리 약해졌다고 해도 올해 1%대 후반(한국개발연구원)~2%(한국은행)는 된다는 게 전문기관들의 추정이다. 잠재성장률은 ‘인력, 기술력, 토지, 자본 등 생산자원을 동원해서 경기과열을 일으키지 않고 최대한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을 가리킨다. 추경을 동원해 성장률을 끌어올려봤자 잠재능력치의 절반 수준만 실현하는 셈이다.

‘경기회복과 경제성장의 새 길’을 열기 위해서는 한국 경제의 성장엔진을 되살리고 업그레이드 할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그 첫걸음으로 실물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각종 규제제도부터 서둘러 정비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해 7월 38개 회원국의 규제환경 순위를 매기면서 한국은 정부 개입에 의한 기업 활동 왜곡부문에서 36위, 무역과 투자 등에 대한 진입장벽 36위, 자격 및 허가 절차 등 행정규제 부문에서 28위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그만큼 한국이 다른 선진국들보다 각종 규제를 높이 쌓아올리고 있다는 얘기다.

세계은행이 “한국의 규제가 다른 선진국 수준으로만 완화돼도 경제성장률이 1.4%포인트 높아질 것”이라는 보고서를 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32조원을 쏟아 부어서 달성할 수 있는 추가 성장률이 0.1~0.2%p임을 감안하면, 규제개혁의 경제효과가 최소한 400조원 이상에 달하는 셈이다. “규제혁파야말로 최고의 재정절감 대책”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재정 주도’가 아닌 ‘혁신 주도’만이 지속가능한 성장 해법

미국과 중국 두 나라가 인공지능(AI)과 자율주행자동차, 드론, 바이오 등 차세대 산업에서 기술개발을 선도하며 세계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요인으로 한 가지 공통점이 꼽힌다. 신산업·신기술에 관한 한 ‘불법이 아니면 막지 않는’ 네거티브(negative) 규제 원칙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공산당 1당이 지배하는 사회주의 독재체제를 고집하면서도 경제 분야에 관한 한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민간 자율을 최대한 허용하고 있다. AI의 딥시크 등 미국 실리콘밸리를 뺨치는 혁신기업들이 잇달아 탄생하고 있는 배경이다. ‘기존 사업자 보호’를 이유로 승차공유 등 초보적인 혁신서비스사업조차 족쇄를 채우고 있는 한국과 정반대다. ‘재정 주도’가 아닌 ‘혁신 주도’만이 지속가능한 성장해법임을 지금이라도 온전히 새겨야 할 것이다.

이학영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