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 칼럼
정치와 오해로 오염된 ESG를 버릴 때
미국의 정치와 언론계에서 확대 재생산되는 선동적인 주장과 입법 및 산업계 실무 동향으로 ESG 투자가 위축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보편적인 기업들에 나타나는 본질적 변화가 아니다. 예를 들면 최근 펩시콜라가 2040년 넷제로 목표와 지속가능한 농업정책 추진을 재확인하거나, 휴렛팩커드(HP)가 공급망에서 순환경제와 생물다양성을 강화하거나, 유나이티드 항공이 지속가능한 항공 연료 투자를 확대하는 등 대부분 글로벌 선도기업이 핵심 사업 전략으로 지속가능성을 강조하고 있다.
ESG 투자라는 용어가 탄생 20년 만에 트럼프로 상징되는 보수 정치세력의 도전과 역풍에 직면했다. 특히 한국의 진보 정권 등장은 미국과의 탈동조화로 지속가능성 정책과 전략의 불확실성을 높인다.
청정에너지 관련 산업의 쇠퇴와 방위산업 및 원자력 관련 산업은 ESG 투자 또는 사회책임투자 측면에서 진전이 아니라 후퇴일 수도 있다. 최근 이재명정부가 강조하는 AI 산업마저도 막대한 전력 수요와 윤리적 이슈로 지속가능성 논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트럼프가 통상정책으로 흩트려 놓은 글로벌 혼란의 시기에 절체 절명의 위기와 전례 없는 기회를 앞둔 한국 사회에게 파도보다는 바람을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첫째, 미국의 보수 세력이 정치적 목적으로 ESG가 사회주의적 이념을 내포한 반자본주의적 용어라고 호도한 점이나 한국 사회가 지속가능성을 포괄하는 보편적 가치경영 체계로 ESG 경영을 잘못 이해한 오류에서 벗어나야 한다. ESG 투자는 지속가능한 사회로의 전환을 촉진하고 지원하는 중요한 기능을 하며 진화해 나아갈 것이다.
글로벌 선도기업 여전히 지속가능성 강조
최근 ESG 대신 지속가능투자 또는 기후 회복탄력성 등으로 이름을 바꾸는 기업들도 있지만 투자를 위한 지속가능성 평가 및 관리시스템으로 ESG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기업의 포괄적 경영전략이나 미래 성장 전략은 지속가능경영전략이지 ESG 경영이 아니다. 하지만 트럼프의 정책이 ESG 투자의 본질적 가치를 훼손할 정도로 영향력을 미치거나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다. 정치적 변수는 장기적 우상향 트렌드에 하방의 대못현상에 불과한 것으로 우리는 파도에 매몰되어 바람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둘째, ESG 용어를 버린다고 해서 그 본질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ESG 성과는 투자자의 위험을 좌우한다. 예를 들면 기후위험이나 생물다양성 위험을 고려하지 않은 투자의사결정은 반드시 실패한다. 경영 환경의 변동성이 심할수록 ESG 투자는 더욱 중요해질 것이며 2024년 이후 ESG 투자와 녹색금융 시장의 꾸준한 성장이 이를 뒷받침한다.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사회적, 환경적 가치에 관한 요구를 경영자가 균형 있게 수용하고 이를 위한 최적의 거버넌스를 갖추어 나감으로써 기업의 장기적 가치를 극대화하는 지속가능 경영전략이 ESG라는 용어로 대체될 수 없다.
셋째, 사회안전망이 약화되고 글로벌 경제질서와 공급망 붕괴가 가속화될수록 인류의 지속가능성 위기가 고조되고 그만큼 기업의 위험관리 또는 '회복탄력성관리시스템'이 중요해진다. 예를 들면, 인류의 실존적 위협인 기후변화나 생물다양성 위기에 대해 경영자가 이해관계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기업은 '지속가능성 파산'과 재무적 파산을 맞게 된다.
넷째, 국익을 위해서라면 철학과 가치를 포기할 수 있다는 생각은 위험한 발상이며 이익이 지속가능성을 대신하면 우리는 지속가능성 선사시대(pre-sustainability era)로 돌아가게 된다. 전략적 지속가능경영을 통해 지속가능성과 경제성장을 동시에 달성하는 것과, 지속가능성을 고려하지만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다른 개념이다.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어떤 가치체계도 수용한다는 사고는 도덕적 위험을 내포한 가치방임에 가깝다.
이재명정부도 지속가능성에 철저히 기반을 둔 성장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반지속가능 정권을 몰아내고 국민이 선택한 정권이므로 더욱 미션과 비전을 명확히 하고 이를 위한 적절한 전략을 설계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국가 비전에 본질적으로 지속불가능한 전략 수단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이제 곧 발표될 국가 지속가능 성장 청사진과 로드맵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국가 지속가능 성장 청사진과 로드맵 기대
트럼프라는 돌발변수가 있지만 전세계는 여전히 명확한 규제, 기술혁신, 고객의 기대 등으로 투자 포트폴리오에 지속가능성 고려를 강화하고 있다. 동시에 지속가능경영전략을 통한 장기적 가치 향상의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2025~26년 ESG 경영실무 예상 트렌드는 지역적 격차 심화 (유럽과 신흥국 vs 미국), 지속가능성 전문인력 확충, AI와 블록체인 등 IT 기술 적용 확대, 그린허싱(greenhushing) 규제 강화, 행동주의 투자자 세력 강화 등이다. 한국의 기업과 투자자는 이러한 추세에 전향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