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학습자 상담부터 체험·맞춤교육 한곳에서
구로구 수궁동에 ‘천천히나래센터’
주민들 요구에 공공·지역사회 화답
“어안이 벙벙해요. 오랫동안 꿈꿔온 일이 현실이 되니….”
지난 2018년 엄마 3명이 모였다. 다른 지자체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서 만난 게 인연이 됐다. 동네에서 주민 모임을 해보자며 공익활동지원센터 도움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부모들이 프로그램을 만들고 4년 가량 배움터를 운영해 왔다. 그동안 지역에서 교육 노동 청소년 여성 복지 등 다양한 분야 활동가들이 함께 힘이 됐고 올해 드디어 거점을 마련하게 됐다. 주민들 요구에 구와 의회는 물론 지역사회 전체가 화답한 결과물이다.
14일 구로구에 따르면 느린학습자는 지적장애인은 아니지만 경계선 지능을 가진 이들이다. 전체 국민 가운데 13.59% 가량으로 추산된다. 학생으로 따지면 71만명, 학급당 2~3명 가량이다. 하지만 학교생활이 시작되면 적응을 못해 중도에 포기하기 십상이다.
지난달 30일 수궁동에 문을 연 ‘천천히나래센터’는 느린학습자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지원하는 거점 공간이다. ‘자기만의 속도로 세상을 만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날아오를 나비처럼 다름의 속도를 존중한다’는 의미다. 장인홍 구청장은 “느린학습자와 특수교육 대상자들은 부모부터 잘 인정하지 않을뿐더러 사회적응과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다”며 “조기에 확인해 상담 치료 돌봄 등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와 협업해 임대주택 내 상가 두곳을 10년간 무상 임대한다. 서로 다른 동에 위치한 상가라 상담실과 교실로 구분했다. 54.68㎡ 공간에는 상담실과 함께 이용자 휴식공간을 배치했고 규모가 큰 161.92㎡ 상가에는 교실과 사무실, 이용자 휴식공간을 마련했다. 이경영 센터장은 “학부모들 요구로 구의회에서 관련 조례를 제정했고 구에서 3년간 적극적으로 공모사업을 지원해왔는데 거점 공간까지 생겼다”며 “그간 도움을 주었던 복지·상담 기관과 권역별 연계망을 보다 활성화해 학생 맞춤형 통합지원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천천히나래센터는 느린학습자와 특수교육 대상자에게 다양한 체험 활동과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 아이들이 자기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자립기반을 쌓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당장 오는 10월까지는 아이가 느려서 걱정인 보호자들을 위해 개소 기념 특별 행사를 진행한다. 초등학교 1~3학년을 대상으로 선별검사와 전문가 상담을 무료로 제공한다.
선별검사만 5만~6만원, 종합검사까지 하려면 30만~50만원이 필요한데 기본검사와 상담까지 20만원 선에서 지원한다. 취약계층 한부모가정 다문화가정 북한이탈주민 등 검사에 경제적 부담을 느끼는 주민들을 우선한다. 구는 병원에 대한 거부감으로 인해 선별검사 진입 장벽이 높았던 만큼 문턱을 낮추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벌써부터 학교측 문의도 많다. 신옥순 느린학습자 부모회 회장은 “아이가 독특해 어려움을 안고 있는데 양육이나 태도의 문제로 보기 때문에 그간 음지에서 잘 드러나지 않았다”며 “친구를 잘 만들지 못하고 시각 언어 등 어려움을 겪던 아이들이 지능지수가 높아지고 사회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천천히나래센터는 장기적으로 초·중·고등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문해 영어 수학 진로체험 자율동아리 목공 취업 진학 등이다. 가족들을 위해서는 문화재를 탐방하며 쓰레기를 줍는 쓰담걷기를 준비하고 있다. 느린학습자 생활지도 활동가 양성, 느린학습자 인식개선 교육과 홍보 등 지역사회를 아우를 수 있는 내용도 계획 중이다.
장인홍 구로구청장은 “아이들이 자신의 속도에 맞춰 성장할 수 있는 따뜻한 배움의 공간이 될 것”이라며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교육환경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