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소비자보호 강화’ 내세운 금감원 분리…업무중복·책임회피 부작용 우려
감독기구 2개로 만드는 쌍봉형, 소비자보호만 분리하는 소봉형 ‘논란’
쌍봉형, 업무분장 어려워 갈등 예고 … 소봉형, 실질적 피해구제 한계
“감독기구 중복 비효율, 불필요한 행정비용”…“새정부 실용과 거리 멀어”
‘금융소비자보호 강화’를 명분으로 내세운 금융감독원 분리 문제가 소비자보호에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될 것이라는 금감원 직원들의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재명정부가 국정기획위원회 정부조직개편TF를 통해 정부 부처 개편과 함께 금융감독체계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금감원 금융소비자보호처(금소처)를 분리해 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을 신설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조직분리를 통해 소비자보호기구의 독립성을 강화하자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실무적으로 금감원과 업무중복에 따른 비효율, 책임회피에 따른 소비자보호의 사각지대 발생 등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게 금감원 내부의 지적이다.
동일 사안에 대해 2개의 감독기구에서 검사를 진행할 경우 금융회사들이 안게 되는 부담과 조직 간 불협화음, 갈등도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16일 금감원에서 감독·검사·소비자보호업무를 모두 담당해본 팀장급 직원은 “홍콩ELS와 같은 대규모 불완전판매 사고가 발생했을 때 두 기관이 검사를 나갈 가능성이 높고 그럴 경우 업무중복과 같은 문제가 생긴다. 자료의 외부유출 금지 등 두 기관의 협조가 어려울 수 있고 (실체 파악이 힘든 상황에서) 소비자보호는 더 안 될 것”이라며 “업무분장으로 볼 때 애매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고 서로 책임을 안 지려고 미루는 사태도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 노동조합도 지난 11일 성명을 통해 “금소처를 분리하면 감독기구의 중복, 금융회사들의 부담 증가 등 비효율이 초래될 수 있고, 조직 신설에 따른 불필요한 행정 비용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또 “소비자보호 업무와 감독·검사 업무가 분산되면서 업무 중복과 책임 회피 현상도 불가피하며, 그 사이에 소비자보호의 사각지대가 발생할 우려도 있다”고 밝혔다. 금감원 노조는 이달 4일에도 금융소비자보호와 관련한 외부기구 신설에 반대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금감원의 한 간부는 “이재명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실용성, 효율성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감독기구 2개, 중복규제 비판 = 금감원에서 금융소비자보호기구를 분리하면서 검사·제재 권한을 부여할 경우 영국과 호주 등이 운영하고 있는 2개의 감독기구, 즉 ‘쌍봉형’ 모델로 가게 된다. 금감원 직원과 노조에서 그동안 문제를 삼은 것도 이 같은 쌍봉형 모델에 기반하고 있다.
쌍봉형 모델은 금융회사 건전성 감독은 금감원이 담당하고, 영업행위 규제 업무는 금소원이 맡는 구조다. 하지만 쌍봉형 모델을 현실에 적용한 영국에서는 건전성감독청(PRA)과 금융행위감독청(FCA)을 출범시킨 결과 감독기관이 중복규제 문제를 초래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영국 상원 금융서비스 규제위원회는 각각의 감독기관들이 요구하는 중복적이며 심지어는 모순되기까지 한 요건들이 금융사의 영업을 어렵게 하고 심지어는 핵심적 제도개선도 지연시켰다고 지적했다. 규제준수를 위해 영국 금융회사들이 부담해야할 비용도 상당한 수준으로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로 인해 국정기획위는 쌍봉형이 아닌 소봉형 도입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봉형은 금감원에서 현재 금소처를 떼어내서 소비자보호업무만 맡기는 방식이다. 검사권을 부여할지 여부는 미지수다.
◆전문성 저하, 전문인력 이탈 우려 = 소봉형을 모델로 검사권이 없는 금소원을 출범시킬 경우 금융소비자 피해를 실질적으로 구제하기 어렵다.
현재 금감원 금소처에는 검사권이 없지만 검사국과의 긴밀한 협조 체계를 통해 피해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금융회사의 잘못을 배상 책임에 반영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정기 인사를 통해 금소처 직원들이 각 금융업권 감독·검사국에도 배치되는 등 감독·검사·소비자보호 업무를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금소원으로 분리될 경우 금감원과의 원활한 업무 협조를 기대하기 어렵고 검사·제재권이 없다면 사실관계 파악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검사·제재권을 부여하면 쌍봉형 문제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금감원 노조는 “금감원은 순환근무 체계로 운영되고 있어 금융회사 및 시장에 대한 전문성을 보유한 직원들이 금소처 업무를 수행하고, 이러한 경험은 추후 권역별 감독·검사부서 복귀 후 소비자보호를 위한 제도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금소처가 분리될 경우 금소처 직원들의 시장 및 상품에 대한 이해 부족, 전문성 저하 등으로 소비자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금소처를 별도기구(소규모 기관, 소봉형)로 분리한다면 소비자 보호업무의 질적 저하는 물론이고 향후 우수한 인재 확보까지 어려워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금감원의 한 젊은 직원은 “금감원에 입사했는데 평생 금융민원과 분쟁업무만 담당하게 된다면 이직을 심각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다”며 “특히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자격이 있는 직원들의 이탈은 훨씬 클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 노조는 “현행 감독체계하에서 금소처의 기능적 독립성을 확립하고 실질적인 견제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금융소비자보호를 한층 향상시킬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라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서 금융소비자보호기구 신설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감독 범위 확대, 검사기능 부여 등 금융소비자보호기구의 기능·독립성 대폭 강화를 밝힌 바 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