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장관 임명’ 오히려 정권에 부담
문재인 33명 … 윤석열 2년 반 만에 29명
'국정동력 손상' 우려하지만 민심이반 역풍
이재명정부 1기 내각 일부 장관 후보자들을 겨냥한 사퇴 요구가 잇따르지만 대통령실은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섣불리 사퇴 요구를 수용했다가 임기 초 국정동력이 손상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작동하는 눈치다. 이 때문에 이 대통령이 논란의 장관 후보자들을 임명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역대정권을 돌이켜보면 야당이 반대하는 장관을 밀어붙이는 소위 ‘묻지마 임명’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묻지마 임명’을 강행했다가 민심이 등 돌리는 역풍을 맞으면서도 ‘실책’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16일 일부 장관 후보자들을 겨냥한 국민의힘과 시민단체 심지어 여권 일각의 ‘부적격’ 판정이 잇따르고 있다. 송언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이날 “강선우 여가부장관 후보자는 검증대상이 아니라 수사대상”이라며 자진사퇴를 촉구했다. 그는 이진숙 교육부장관 후보자를 겨냥해 “(남의 논문을) 오타까지 베껴 쓴 사람은 지금까지 없었다. 부끄러움을 안다면 자진사퇴하는 게 답”이라고 지적했다. 여권은 일단 버티는 모양새다. 역대정권처럼 임명을 강행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지난 2000년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이후 역대정권은 야당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장관을 임명해왔다. 국회는 청문회를 개최한 뒤 찬반의견을 담은 청문보고서를 채택해 대통령에게 보낸다. 총리는 국회 인준 표결을 하지만 장관은 대통령이 국회 의견을 따를 필요가 없다. 야당 반대로 인해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거나, 여당 단독으로 보고서를 채택한다고 해도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할 수 있다.
야당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임명을 단행한 장관(장관급 인사 포함)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노무현정부 3명, 이명박정부 17명, 박근혜정부 9명, 문재인정부 33명, 윤석열정부 29명이다. 윤 전 대통령은 탄핵되는 바람에 임기가 3년도 안됐지만 ‘묻지마 임명’이 29명에 달해 역대급으로 꼽힌다. 만약 윤 전 대통령이 임기 5년을 채웠다면 ‘묻지마 임명’은 문재인정부 기록을 훌쩍 넘어섰을 것이란 추산이다.
대통령의 ‘묻지마 임명’은 당장의 국정동력을 지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궁극적으로 민심이반이라는 역풍을 초래한다는 지적이다.
윤 전 대통령이 1기 내각을 구성하다가 위기를 맞은 게 대표적이다. 윤 전 대통령은 김인철 교육부장관 후보자와 정호영 보건복지부장관 후보자가 숱한 논란 끝에 사퇴하자, 야당이 반대하는 나머지 6명의 장관 후보자(박 진 외교부, 박보균 문체부, 원희룡 국토부, 이상민 행안부, 한동훈 법무부, 김현숙 여가부장관 후보자)를 무더기로 임명해버렸다. 민심은 ‘대통령의 독주’에 실망했다. 취임 초 50%대를 달리던 국정지지도가 불과 100일도 안 돼 28%(한국갤럽 조사, 2022년 7월 26~28일, 전화면접, 95% 신뢰수준에 오차범위 ±3.1%p, 이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까지 추락했다. 대통령에 대한 부정평가 이유로 ‘인사’(21%)가 가장 많이 꼽혔다.
이 대통령이 논란이 된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임명을 강행할 가능성이 점쳐지자 국민의힘은 ‘정권몰락’까지 언급하며 경고하고 나섰다. 한지아 국민의힘 의원은 15일 SNS에서 강선우 후보자의 ‘갑질의혹’을 겨냥해 “민주당은 민주당정부 탄생을 위해 뛰었던 동료 보좌진들의 노고를 허무하게 버렸다”며 “강 후보의 임명은 이재명정부 몰락의 시초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