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진의 미국 톺아보기

178일의 경제실험, 트럼프는 ‘위대한 미국’ 되찾고 있나

2025-07-17 13:00:01 게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두번째 임기가 178일을 넘긴 가운데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와 여론조사기관 유고브(YouGov)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트럼프행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유권자 신뢰도가 현저히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유권자들의 정치 경제 인식을 주간 단위로 추적하는 이 조사에 따르면 인플레이션과 고용, 전반적인 경기전망 등 경제 관련 항목에 대한 부정적 응답이 재집권 초기보다 눈에 띄게 늘어 긍정적 응답을 압도한 것이다.

경제정책에 대한 부정적 응답 높아

취임 초 트럼프 대통령은 “소득은 치솟고 인플레이션은 사라지며 일자리는 넘쳐날 것”이라는 대담한 약속으로 ‘위대한 미국’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러한 기대감은 빠르게 식고 있으며 그 자리는 실망과 불안이 채워가고 있다.

유권자들의 정서변화는 단순한 인식의 차원을 넘어 실제 지표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트럼프의 재집권을 그 누구보다 반겼던 금융시장은 지난 4월 2일 이른바 ‘해방의 날’에 발표된 일방적인 상호관세 인상 방침 이후 급격히 위축됐다. 주가는 큰 폭으로 하락했고 정부의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국채 수익률 역시 급등했다. 반면 달러가치는 약세를 보이며 국가신용등급 강등이라는 수모까지 겪으면서 대외 신인도에 먹구름을 드리웠다.

물가상승률은 겉보기엔 다소 진정되는 듯 보인다. 올해 1월 3%를 기록했던 인플레이션이 5월 들어 2.4%로 안정세로 접어들며 연준의 목표치인 2%에 근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려할 점이 적지 않다. 특히 가전제품 전자제품 등 실생활과 밀접한 품목들이 향후 관세인상의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언제든 다시 고개를 들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경제의 위기신호는 실물경제 지표를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 미 경제조사단체 콘퍼런스보드가 밝힌 소비자 신뢰지수는 6월 기준 93.0으로 전문가 예상치인 99.5를 크게 밑돌았다. 이는 미국 가계가 향후 경제전망에 대해 점차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는 방증이다.

성장률에 대한 통계는 더욱 충격적이다.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전 분기 대비 연율 기준으로 0.5% 역성장했다. 이는 코로나 펜데믹 이후 처음 있는 일로 경기 회복세가 한계에 부딪혔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일자리 문제 역시 암울하긴 매한가지다. 미국 노동부는 지난 6월 국내 공장에서 7000개의 일자리가 줄어들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제조업 고용은 이미 3년 연속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공급관리연구소(ISM)의 발표에 따르면 트럼프 2기 들어 미국 제조업 활동은 4개월 연속 감소세를 기록했다. 2022년 10월 이후 올해 6월까지 총 32개월 중 30개월 동안 제조업 생산이 줄어든 셈이다. 이는 미국 제조업의 위기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임을 암시한다.

트럼프 관세전쟁, 제조업 부활에 방점

트럼프행정부가 관세전쟁을 시작한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오지만 이를 통해 최종적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가 ‘미국 제조업 부활’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빅테크와 금융산업이 글로벌 경쟁에서 미국의 우위를 공고히 하고 국가 전체 부의 증가에 기여하고 있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들 산업은 상대적으로 고숙련 인력 중심의 고소득 구조를 형성하고 있어 일자리 창출의 폭이 매우 제한적이고 중산층 형성에 기여하는 정도도 미미하다.

반면 제조업은 비교적 넓은 고용 기반을 갖고 있으며 지역사회에 뿌리내린 중산층의 생계를 떠받치는 토대 역할을 해왔다. 이 때문에 제조업 부흥은 그동안 단순한 산업전략이 아니라 정치·사회적 안정을 유지함에 있어 핵심적인 과제로 여겨져 왔다. 사실 제조업의 중요성은 미국 경제사의 긴 흐름 속에서 반복적으로 부각되어 왔다.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시장주의와 규제완화를 내세우며 금융산업을 미국경제의 중심축으로 끌어 올린 이후 제조업은 점차 후순위로 밀려났다. 이러한 산업구조의 전환은 자본 효율성과 글로벌 금융 리더십이라는 성과를 낳았지만 동시에 ‘러스트 벨트(Rust Belt)’라 불리는 중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산업 공동화와 중산층 붕괴라는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후 미국 대통령들은 하나같이 제조업 기반 회복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미국 경제의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균형을 꾀했다. 이는 전임자였던 바이든 대통령도 다르지 않아 반도체 보조금 정책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 막대한 재정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해외 제조업체들을 미국 내에 유치하고자 부단히 애썼다.

그에 반해 트럼프 대통령은 재임 중 이 과제를 보다 강하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풀어가고 있다. 관세인상은 그 전략의 핵심요소로 이는 자국 기업들을 다시 미국으로 불러모으는 ‘리쇼어링(Reshoring)’을 유도할 뿐만 아니라 해외 기업들 역시 관세 장벽을 피해 ‘울며 겨자 먹기’로 미국에 투자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한다. 바이든정부와 달리 다른 나라 기업에 돈을 퍼 주지 않고도 관세나 안보를 지렛대 삼아 미국에 공장을 짓게 할 수만 있다면 트럼프정부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효율적인 전략이 될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정부의 이 같은 시도는 첫번째 임기 당시 이미 실패한 전략으로 판명 난 바 있다. 제조업 고용과 투자 모두 완만한 상승세를 보인 2017~2018년 트럼프 집권 초기와 달리 본격적인 관세전쟁이 시작된 2018년 중반 이후 기대와는 다른 신호들이 포착되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인 경기 선행지표인 ISM 제조업 지수는 관세로 인한 원가상승 및 공급망 혼란에 따른 기업활동 부담으로 2019년부터 줄곧 50을 맴돌며 위축 국면으로 돌아섰다. 고용도 예외는 아니었다. 트럼프 취임 당시 1235만명이던 제조업 일자리는 2019년 1279만명까지 증가했지만 2020년 초 이미 증가세가 크게 둔화된 상태로 코로나19 팬데믹을 맞이한 바 있다.

이에 더해 최근에는 트럼프발 관세전쟁이 지속될 경우 그나마 미국이 비교 우위에 선 인공지능(AI) 분야의 주도권마저 빼앗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트럼프정부 관세정책으로 인한 공급망 비용 상승과 경기둔화로 한때 투자자들 사이에는 데이터센터 구축을 보류해야 한다는 의견이 비등했다. 이같은 불확실성은 언제든 재현될 수 있다.

미국 경제의 고질인 제조업의 위기를 관세정책이라는 값싼 해결책으로 단숨에 해결할 수 있다는 망령이 미국 제조업의 위기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단순히 공장을 미국 땅에 다시 짓는다고 해서 제조업이 살아날까? 오랜 기간을 통해 망가진 미국 제조업의 현실이 그렇게 단순한 방법으로 극복될 리 없지 않은가.

제조업 부활, 관세정책만으로 해결 안돼

글로벌 공급망은 이미 복잡하게 얽혀 있고 기술은 빠르게 진화하고 있으며 제조업의 정의 자체도 달라졌다. 제조업의 개념은 ‘하드웨어 생산’이 아니라 ‘고부가가치 기술집약산업’으로 이동해 가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저임금 국가들과 단순 가격경쟁을 할 수 없는 미국은 대신 반도체와 항공, 의료기기, AI 하드웨어 같은 고부가가치 분야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정부 차원의 연구개발(R&D) 투자 확대가 이루어져야 하고 미국과 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우방 국가들과는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을 통해 시너지를 극대화해야 한다. 미국이 제조업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한다면 지금은 ‘공장을 다시 짓는’ 상징적 조치에 앞서 ‘무엇이 진정 미국 경제를 위대하게 만드는가’에 대한 보다 본질적인 고민과 접근이 필요한 때다.

조태진

법무법인 서로변호사·M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