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부진 ‘노태우 비자금 환수’ 급물살 타나

2025-07-17 13:00:09 게재

정성호 법무장관 후보자 “독립몰수제 도입 동의”

임광현 국세청장 후보자는 세무조사 필요성 밝혀

이재명정부 첫 인사청문회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이른바 ‘6공 비자금’이 화두로 떠올랐다. 새정부 인사 후보자들이 시효 논란으로 시민단체 고소·고발에도 지지부진하던 비자금 환수에 긍정적인 입장을 밝히면서 관련자 처벌과 환수에 청신호가 켜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1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정성호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노태우 비자금 관련자 처벌과 국고 환수 필요성을 묻는 질의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장경태 의원(더불어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의 딸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이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벌이고 있는 이혼소송(재산분할) 항소심 재판에서 증거로 제시했던 모친 김옥숙 여사의 메모와 관련해 김 여사의 거액 기부와 운용 등을 사례로 들며 은닉·역외탈세에 대한 의혹 규명을 촉구했다.

장 의원은 “대법원이 2600억원을 추징하자 김 여사는 돈이 없다고 호소했다”면서 “하지만 김 여사는 모 문화센터에 기부하고, 차명보험료를 납부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외에도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 설립, 차명부동산 증여, 바하마 계좌 등 수상한 자금 흐름이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노태우 비자금을 끝까지 처벌하고 국고로 환수하는 것이 5·18 정신”이라며 “비자금이 제대로 회수될 수 있도록 법무 행정에 신경 써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정 후보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밝혔다.

같은 당 박균택 의원은 “전두환 일가 비자금 의혹을 제기해도 본인이 사망해서 추징제도 활용이 불가능해 제도적 한계가 있다”며 독립몰수제 도입을 제안했다.

독립몰수제는 범죄자의 해외 도주, 사망, 재판 불가 등으로 최종 유죄판결이 나지 않은 경우에도 범죄수익을 몰수할 수 있는 제도다.

정 후보자는 “양형 체계에 변화를 주는 것이라 신중한 논의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지만 저는 꼭 도입해야 한다고 본다”며 “사망하거나 피의자 특정 못 한 상황에서 범죄수익 없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날 임광현 국세청장 후보자도 인사청문회에서 노태우 비자금에 대해 “과세문제는 죽음까지 쫓아가는 것”이라며 찬성 의견을 냈다.

특히 임 후보자는 의원 시절 노태우 비자금에 대한 세무조사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법원 재판 기록에서 탈루 혐의가 나왔기 때문에, 세무조사에 착수할 근거가 된다”며 “서울청 조사4국이 실력 발휘를 해야 한다”고 질의했다.

이날 인사청문회에서 김영환 의원(더불어민주당)은 “노태우 비자금이 증여됐는지 대여가 이뤄졌는지, 사망 후에 상속 문제로 전환됐는지 국세청의 역할이 무엇인가. 조세정의를 살리는 것”이라며 노 전 대통령 일가의 비자금 은닉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이에 임 후보자는 “그렇다”라고 밝혔다.

김 의원은 윤석열정부 당시 강민수 국세청장 인사청문회에서 ‘904억 메모’가 노 전 대통령의 은닉 비자금일 가능성이 있다며 상속세 등 과세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에 강 청장도 “불법 정치자금의 시효가 남아있고, 확인된다면 당연히 과세된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아직 구체적인 결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정 후보자와 임 후보자가 취임하면 노 전 대통령 일가 재산에 대한 조사가 탄력이 붙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노태우 비자금은 노 전 대통령이 1997년 내란,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대법원에서 추징 받은 2628억원을 2013년 완납하면서 마무리된 것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딸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이 최태원 SK그룹 회장과의 이혼소송 과정에서 모친 김옥숙 여사의 ‘904억 메모’를 제시하면서 논란이 재점화됐다. 노 관장은 “부친 비자금 300억원이 선경(SK)에 지원돼 SK가 성장했다”고 주장했고, 최 회장측은 “300억원이 유입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노 관장측이 스스로 공개한 구체적인 실명과 금액이 기재된 메모는 그간 수사, 재판에서 드러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정치권은 물론 시민단체 등에서도 진상규명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또한 김 여사가 2000년경 차명으로 농협중앙회에 보험료 210억원을 납입하고 2017년 전후로 아들 노재헌씨가 이사장으로 있는 동아시아문화센터에 총 147억원을 기부한 사실이 지난해 새로 밝혀지면서 비자금 논란이 거세졌다. 특별한 소득이 없었던 김 여사가 거액을 보유하고 기부한 경위에 대한 해명은 아직 없다.

노 전 대통령 일가 역외탈세 의혹도 제기됐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박성준·송석준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016년 국제 탐사보도로 드러난 노재헌 이사장 등의 역외탈세를 조사해야 한다고 했다. 김승원 민주당 의원은 노 전 대통령 일가가 비자금 은닉을 위해 차명회사와 측근들을 활용하고 있다는 내용을 공개하기도 했다.

한편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시절인 지난 5월 광주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광주민주화운동 45주년 기념식에서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관련 질문에 “민사상 소멸시효도 배제해 상속재산 범위 안에 있다면 그가 사망한 뒤 상속자들한테까지도 민사상 배상 책임을 끝까지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뜻을 밝혔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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