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장 리포트

K-컬처, 미국 문화의 중심에 서다

2025-07-22 13:00:00 게재

최근 미국에서 넷플릭스 시작화면을 열면 놀라운 장면과 마주한다. ‘오징어 게임’과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각각 드라마와 영화 부문에서 미국 내 인기순위 1위에 오른 것이다. 한국어와 한국 문화들이 가득한 이야기가 미국 대중문화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 콘텐츠의 위상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실감하게 된다. 한때 아시아 마니아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한국 문화가 이제는 미국의 대중문화 중심무대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주류 콘텐츠로 부상하고 있는 K-드라마

K-드라마는 미국 내 다양한 세대와 문화적 배경을 아우르며 주류 콘텐츠로 부상하고 있다. 2023년 기준 한국 콘텐츠 산업의 시장 규모는 79억2000만달러(한화 약 1조1100억원)로 평가되었으며 2026년에는 86억4000만달러(한화 약 1조21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2022년 한해 동안 K-드라마 수출액만 무려 214억4000만달러(한화 약 3조1200억원)로 한국 드라마가 세계 무대에서 얼마나 강력한 콘텐츠로 자리잡았는지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어떤 집단이 K-드라마를 보고 있을까? 흥미롭게도 K-드라마는 특정 연령층 인종 성별에 국한되지 않은 광범위한 시청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2023년 미국의 유명 소셜 커뮤니티인 레딧(Reddit)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 응답자의 35%는 K-드라마가 ‘매우 인기 있다’고, 27%는 ‘인기 있다’고 응답했다. 60% 이상의 응답자가 K-드라마의 인기를 실감하고 있는 셈이다. 시청자층을 연령별로 살펴보면 25~34세가 36.7%, 18~24세가 24.4%, 그리고 35세 이상이 38.9%를 차지해 K-드라마가 전 세대를 아우르는 문화로 확산되었음을 보여준다.

성별 분포에서도 특징이 뚜렷하다. K-드라마를 즐겨 보는 시청자의 76.6%는 여성이지만 남성 시청자 역시 17%를 차지한다. 이는 K-드라마가 성별 구분을 넘어 다양한 삶의 경험과 감정을 포용하는 이야기로 미국의 다양한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K-드라마는 왜 이토록 매력적인가? 전문가들은 세 가지 주요 요인을 통해 그 원동력을 설명한다. 첫째, 스트리밍 플랫폼의 확산이다. 넷플릭스, 비키(Viki), 디즈니플러스 등 글로벌 OTT 서비스들은 다국어 자막과 사용자 친화적 인터페이스를 통해 K-드라마에 대한 접근성을 비약적으로 높였다. 실제로 넷플릭스는 2015년 이후 한국 콘텐츠에 총 25억달러 이상을 투자했으며 ‘오징어 게임’ ‘더 글로리’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은 미국에서도 최상위 시청률을 기록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둘째, 중독성 있는 스토리텔링이다. K-드라마는 장르의 다양성뿐 아니라 인물 간의 미묘한 감정변화를 섬세하게 묘사한다. 이는 자극이 넘치지만 공감하기 힘든 할리우드식 서사와 대조적이라는 평가로 이어진다.

셋째, 소셜미디어와 팬 커뮤니티의 힘이다. 트위터와 틱톡 등 플랫폼에서 실시간 반응과 팬 콘텐츠가 확산되며 이는 기존 서구 콘텐츠와는 다른 방식의 참여형 소비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틱톡의 드라마 편집 영상은 수백만뷰를 기록한다. 팬들은 자발적으로 자막을 제작하고 콘텐츠를 공유하면서 미국에서의 K-드라마 인기를 견인하고 있다.

K-푸드, 미국 사회 곳곳에서 빠르게 확산

K-푸드의 확장도 눈부시다. 이제 한국 음식은 단순히 아시아마켓이나 한인타운에서 접할 수 있는 낯선 요리가 아니다. 고급 다이닝 레스토랑부터 소셜미디어에서 트렌드로 떠오른 콘도그까지 K-푸드는 미국 사회 곳곳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아직은 미국 내 아시아 음식의 중심이 중국 일본 태국 요리이지만 최근 한국 음식에 관한 관심과 수요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수치로도 명확하게 나타난다. 2018년 이후 미국 전역에 새롭게 문을 연 한국 음식점 수는 총 450개에 달한다. 시장조사기관 서캐나(Circana)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2024년 기준으로 미국 내 한국 음식점의 수는 전년 대비 약 10% 증가했다. 특히 한국식 프라이드 치킨과 콘도그를 전문으로 하는 패스트푸드 체인들의 지점 수는 각각 15% 이상 증가했다.

7개의 한국식 치킨체인 브랜드는 현재 미국에서 총 405개 지점을 운영 중이며 이는 2019년에 비해 두 배 가까운 수치다. 5개의 한국식 콘도그 체인 브랜드도 현재 242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는 불과 1년 전보다 52% 증가한 것이다. 6년 전만 해도 이들 브랜드는 미국에 존재하지 않았다.

집에서 간편하게 즐기는 K-푸드도 인기를 끌고 있다. 틱톡 등 소셜미디어에서 라면이 유행하며 한국 라면의 소매 판매량이 급증했다. 한 브랜드의 경우 2022년 미국 내 소매점에서 1% 미만이던 판매 점유율이 2024년에는 4% 이상으로 증가했다.

김치도 마찬가지다. 발효 채소라는 건강 이미지와 더불어 한국 대중문화의 영향으로 소비가 확대되었다. 2023년 기준 미국에서의 김치 판매는 전년 대비 약 80% 증가했으며 수출량도 사상 최고인 4만4041톤을 기록했다. 미국은 한국산 김치의 주요 수입국 중 하나로 2023년 한 해 동안 1만톤 이상을 수입했다. 수출액도 2019년 1480만달러(한화 약 207억원)에서 2022년 2900만달러(한화 약 406억원)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 성장배경에는 한국 대중문화의 영향력이 있다. 많은 K-드라마에서는 한국의 음식문화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자연스럽게 한국 음식에 대한 인지도를 높였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대중문화 콘텐츠가 음식에 관한 관심을 자극하며 미국 내 K-푸드의 인기를 이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대형마트와 프랜차이즈 시장에서도 한국 음식의 존재감은 뚜렷하다. 월마트와 코스트코 등 미국 내 주요 유통업체에서 한국식 콘도그, 김치, 불고기 양념, 바비큐 소스를 쉽게 살 수 있게 되었다. 한국 소스류도 빠르게 미국 외식 시장에 스며들고 있다. 최근 1년간 한국 바비큐 소스는 80%, 매운 한국 소스는 29%, 한국식 핫소스는 23% 성장률을 기록했다.

K-컬처, 한 단계 도약 위한 중요한 길목

이러한 문화적 확산은 콘텐츠 소비와 음식에 그치지 않고 한국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2023년 시카고협의회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한국을 과거보다 더 영향력 있는 국가로 인식하고 있다. 한미 동맹이 미국의 국가 안보에 기여한다고 평가하는 비율도 응답자의 71%에 달했다.

한국이 세계정세에 미치는 영향력을 0~10점으로 평가한 평균 점수는 5.1점으로, 2021년의 4.5점에서 상승하며 조사 이래 처음으로 5점을 초과했다. 이는 최근 K-팝, K-드라마, K-음식 등 한국 문화 영향력이 급격히 증가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즉 K-컬처의 확산은 미국에서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인식 자체까지도 변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는 K-컬처가 보다 성숙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 역시 커지고 있다.

수많은 K-팝 히트곡이 흑인 작곡가와 프로듀서에 의해 만들어지고 미국 내 팬덤에서도 흑인 팬들이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정작 K-팝 산업은 블랙페이스, 인종차별적 표현, 흑인 문화의 단순한 차용 등 문제가 있는 행위를 반복해왔다. 팬들 사이에서는 ‘존중 없이 소비되는 문화’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으며 일부 아이돌 그룹은 사과나 기부로 대응했으나 산업 전체의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은 계속되고 있다.

미국에서 문화 콘텐츠를 넘어 강력한 경제·외교적 자산으로 자리잡은 K-컬처에게 남은 질문은 하나다. 상호 이해와 진정한 문화 교류의 콘텐츠로 한층 더 성장할 수 있는가. K-컬처는 지금 한단계 도약을 위한 중요한 길목에 서 있다.

김찬송

위스콘신대

정치학, 미국 선거·여론 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