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태양광·풍력 수백건 멈췄다

2026-02-06 13:00:04 게재

트럼프정부 인허가 지연으로 발목 … 불확실성 지속되면 자금조달 붕괴

미국 전역에서 추진 중인 태양광·풍력발전 프로젝트 수백건이 연방정부 인허가 지연으로 멈춰서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재생에너지에 대한 환경·행정심사를 대폭 강화하면서 전력수급 불안과 전기요금 상승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6일 미국 에너지업계와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연방 토지 또는 연방 협의가 필요한 태양광·육상풍력 발전사업 60여건 이상이 승인 절차에 발목 잡혀있다.

민간부지 사업까지 포함하면 지연대상은 수백 건에 달한다.

미국 에너지업계는 이번 조치가 단순한 행정 적체가 아니라 ‘의도적 속도 조절’이라고 보고 있다.

◆35년 계약 맺었던 대형 풍력단지도 취소 = 뉴욕타임즈는 대표사례로 와이오밍주의 ‘잭얼로프 풍력’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이 사업은 시카고 면적과 맞먹는 부지에 터빈 수백 기를 설치해 2027년 전력을 공급할 계획이었다.

아이다호 최대 전력회사가 35년 장기 구매계약까지 체결했지만 미국 내무부의 환경 검토가 수개월간 지연되면서 사실상 사업이 중단됐다.

개발사인 넥스트에라 에너지는 풍력단지 건설을 전면 취소했고, 전력회사는 천연가스발전 설비 도입으로 방향을 틀었다.

미 태양광에너지산업협회에 따르면 현재 정치적 간섭 위험에 놓인 육상 태양광 프로젝트 규모는 7만3000메가와트(MW)에 이른다. 수백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규모다.

반면 트럼프 행정부는 석유 가스 석탄 원전 개발규제를 완화하고 있어 정책방향이 대조를 보이고 있다.

재생에너지는 ‘추가 검토’, 화석연료는 ‘신속 승인’이라는 이중 구조가 형성됐다는 지적이다.

뉴욕타임즈는 또 에너지 프로젝트에 대한 연방 승인절차가 광범위하게 얽혀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습지를 훼손할 경우 미 국방부 산하 육군소속 기관의 수자원 허가가 필요하고, 미국 어류·야생동물국과 야생동물 보호 협의도 해야 한다. 풍력 터빈 높이는 미 연방항공청 승인이 필요한데, 이 중 하나라도 멈추면 전체 사업이 중단된다.

태양광 개발사인 아레본의 케빈 스미스 CEO는 “과거에는 형식적 검토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모든 서류가 장관 책상으로 올라가 사실상 ‘인허가 정지’ 상태”라고 말했다.

◆재생에너지 봉쇄…기업들 생존전략 바꿔 = 미국 에너지업계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이러한 조치가 미국 전력시장에 구조적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미국은 최근 데이터센터 확대와 전기차 보급 증가 등으로 전력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신규 원전이나 가스터빈은 건설기간이 길어 단기 대안으로는 부적합하다. 상대적으로 건설이 빠른 태양광·풍력이 막히면 공급부족과 요금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정책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일부 개발사들은 생존 전략을 바꾸고 있다.

풍력·태양광 대신 천연가스 발전소 건설을 확대하거나, 연방 승인이 필요 없는 소형사업 위주로 전환하는 형태다.

이는 탄소감축 목표와도 상충된다. 화석연료 발전 확대는 온실가스 배출 증가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미국 에너지업계는 이번 조치를 사실상의 ‘재생에너지 봉쇄’(blockade)로 규정하고 있다.

정치적 판단이 인허가 절차를 좌우하면서 투자와 금융 조달까지 위축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클린에너지협회의 제이슨 그루멧 CEO는 “불확실성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프로젝트 자금 조달이 붕괴되고 결국 실패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규제 강화가 장기화될 경우 미국 에너지 전환 속도는 크게 둔화되고 전력비용 상승 부담은 소비자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전력정책은 ‘속도경쟁’ 아닌 ‘설계경쟁’ = 미국의 사례는 정책 불확실성이 에너지 산업 투자에 미치는 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행정 지연은 투자 중단으로 직결되는 만큼 정책의 일관성이 중요하다”며 “최근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이전 정부가 수립했던 대형 신규 원전 2기 건설을 이어가겠다고 밝힌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에서 재생에너지 병목현상이 발생하는 주이유는 ‘허가’보다 ‘계통 포화’”라며 “송전망 보급 등 전력계통 확충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결국 전력정책은 ‘속도 경쟁’이 아니라 ‘설계 경쟁’인 셈이다. 어떤 전원을 얼마나, 어떤 순서로, 어떤 규제로 조합하느냐가 국가 전력비용과 산업 경쟁력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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