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성북마을아카이브, ‘풀뿌리 기록 민주주의’로
성북마을아카이브는 2022년 봄, 1970년 삼선교의 겨울 풍경을 담은 흑백사진 한 장을 기증받았다. 어린아이를 업은 어머니가 노점에서 해삼을 집어 아이에게 건네는 순간을 포착한 작품으로 제목은 ‘모정’이다. 당시 홍익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이○○씨가 서울 곳곳을 다니며 직접 촬영하여 현상해 둔 사진 중에, 50여 년이 지나서 10호짜리 액자에 넣어 기증한 작품이다. 사진 한 장의 기록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가지는 무형의 힘은 적지 않다. 기록을 중심으로 나와 우리의 이야기가 모이기도 한다. 기록물이 가진 힘이다.
성북문화원은 2018년 성북구청과 협력해 마을기록화 사업을 시작해 2년의 준비 끝에 2020년 1월 성북마을아카이브(archive.sb.go.kr)를 공개했다. 민·관협치를 표방하며 시작한 이 사업의 뿌리는 2016년 진행한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다. 당시 참여 연구진은 지역의 역사문화자원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시민과 공유하기 위한 방안으로 지역 아카이브 구축을 제안했다. 이후 실제 사업명은 ‘성북마을아카이브’로 결정됐는데 이는 공적 기록뿐 아니라 주민들의 삶과 정서가 담긴 민간 기록까지 포괄해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반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결과였다.
이야깃거리로 엮은 성북의 지식 그물망
성북마을아카이브 구축의 핵심은 ‘이야깃거리’ 메뉴다. 성북문화원 연구진은 성북학 연구도서, 국가기록원의 기록물, 지역 연구 논문 등 관련 자료들을 총 망라하여 검토해 지역과 관련된 1000여 개의 키워드를 추출하고 각 키워드와 기록물을 연결하여 데이터베이스화했다.
성북마을아카이브가 지역사회에 알려지면서 다양한 문화 주체들의 기록 활동이 자연스럽게 아카이브로 모이기 시작했다. 특히 성북구 관내 대학들이 지역 기록의 든든한 파트너로 나서고 있다. 동덕여자대학교 학생들은 사회봉사 활동을 통해 ‘성북의 오래된 가게’ 20여 곳을 조사하고, 월곡동과 삼선동의 골목 풍경을 직접 스케치해 그림 기록물을 제작했다. 한성대학교 디지털인문정보학트랙 학생들은 동선2구역 재개발 전·후의 모습을 수백 장의 사진으로 남겼고, 삼선시장 상인 인터뷰 영상을 제작해 아카이브에 등록했다. 한성대학교 회화과와의 협업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2025년에는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성북구 독립운동가 80인의 사진을 초상화로 그리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학생 화가들의 개성과 해석이 더해지며 독립운동가들의 얼굴은 새로운 예술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성북구와 성북문화원은 아카이브 구축과 더불어 성북학 연구 도서 발간, 성북학 학술회의 개최 등 지역학의 기반을 꾸준히 다져왔다. 지역학은 주민에게 자신의 뿌리에 대한 자긍심을 부여하고 이를 토대로 미래의 가치를 만들어가는 힘을 지닌다.
성북마을아카이브는 이러한 지역학의 사회적 가치를 실천하는 장으로서 지역의 다양한 기록 주체들과 협력하며 성북구의 문화적 자산을 시민과 함께 축적해가는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역학 연구 영역의 확장
모든 진솔한 기록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이자, 지역사회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창이 된다. 성북마을아카이브는 그 기록들이 모여 시간의 깊이를 더하는 공간이자 지역의 삶을 다시 읽어내는 또 하나의 공공 기억장치다. 성북문화원의 연구자들은 기록이 지닌 이러한 힘을 믿으며, 지역학의 지평을 더욱 넓혀가는 작업을 묵묵히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