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희토류 확보에 분주한 세계 각국
희토류를 비롯한 전략광물을 확보하기 위한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들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관세폭탄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이 들고나온 희토류(稀土類) 수출통제가 유용한 대응카드임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은 향후 다른 나라와의 분쟁 발발 시에도 희토류 무기화를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울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전략 자원품목 2000여개의 수출 통제 여부를 전면 재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과 중국은 5월 제네바와 6월 런던에서 잇달아 열린 고위급 무역협상에서 중국이 희토류 대미수출을 늘리면 미국도 대중 첨단 반도체 수출통제를 완화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 기술굴기 저지 차원에서 지난 4월부터 금지해 온 미국 엔비디아의 인공지능(AI) 반도체 ‘H20’의 대중 수출재개를 최근 전격 허용했다. H20은 최신형 칩은 아니다. 하지만 4번째로 좋은 칩으로 AI 개발에 충분한 성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이번 조치는 단순한 수출허용을 넘어 자원과 기술을 맞교환한 양국 간 ‘전략적 빅딜’로 간주된다.
전략 광물 확보하기 위한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 경쟁 치열
‘매우 희귀한 흙’이라는 희토류의 무기화는 일본과 중국 간 영유권 분쟁지역인 센카구 열도(釣魚島, 댜오위다오)에서 양국 어선이 충돌한 2010년 9월 처음으로 선 보였다. 당시 중국은 일본을 압박하기 위해 대일 희토류 수출중단 카드를 빼 들었고 일본은 곧바로 백기투항했다. 희토류가 국제분쟁에서 이처럼 대단한 효과를 발휘하자 중국은 이에 맛 들이기라도 한 듯 지난 4월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 발표를 했을 때도 희토류 17개 원소 가운데 첨단산업에 꼭 필요한 7종의 수출을 통제하고 나왔다.
이로 인해 일부 미국기업들이 희토류 자석 부족으로 비상이 걸리자 미국은 중국이 요구한 무역협상에 응했다. 중국을 그토록 적대시하며 기세를 올리던 트럼프의 콧대가 희토류 통제 한방에 꺾이고 말았다. 치킨게임으로 치닫던 미중 관세전쟁도 이젠 냉각기에 접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중국이 사실상 전세계 핵심광물 공급량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년간 전세계 광산을 거의 싹쓸이한 결과다. 더구나 중국은 전략 광물공급망 관리 강화를 위해 이달부터 핵심광물의 안보에 중점을 둔 ‘신(新)광물자원법’ 시행에 들어갔다. 게다가 15일부터는 수출금지 및 제한 기술 목록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물론 미국에도 막대한 전략광물이 매장돼 있다. 그러나 환경문제 등 각종 규제가 난마처럼 얽혀 있어 단시일 내 활용이 어려운 실정이다. 이를 의식한 트럼프는 희토류 자급력 강화를 위해 미국기업에 공해 광물채굴을 허용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한편 희토류 생산업체에 시장가격의 거의 2배에 달하는 최소 가격을 보장하기로 했다.
또한 전쟁 원조금 대가로 우크라이나와 광물협정을 체결한 데 이어 자원부국인 서아프리카 5개국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고 캐나다와 그린란드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심지어 북한에도 희토류가 대거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북한과도 광물협정 체결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대두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신산업 강국 부상 위해 핵심광물 확보에 적극 나서야
한국은 핵심광물의 공급망이 취약하기 짝이 없다. 전략광물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고 그중 대부분이 중국산이다. 이는 ‘잃어버린 자원개발 10년’의 결과다. 한국은 이명박정부(2008~2013년) 시절 해외자원 개발에 적극 나서 일부 유망 광산을 발굴하기도 했으나 경험 부족에다 때마침 불어닥친 글로벌 금융위기와 맞물리면서 대규모 손실을 냈다. 이후 박근혜정부는 소극적인 정책을 폈고 문재인정부는 해외 자원개발에 권력자들이 대거 개입한 것을 빌미로 이를 ‘적폐’로 몰아 부실규모가 커진 한국광물자원공사를 사실상 해체하는 등 해외자원 개발에서 손을 뗐다. 광물공사는 2021년 9월 광해관리공단과 통합해 한국광해광업공단이 됐다.
그 결과 한국은 4차산업혁명 시대에 신산업 강국으로 부상하기가 사실상 어렵게 됐다. 정부는 지금과 같은 구조로는 한국의 미래가 없다고 판단하고 비록 뒤늦었지만 우리 기술로 해저 희토류를 직접 탐사해 나가기로 했다. 이를 위해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기초조사를 통해 고농도 희토류 해저 부존 지역으로 부상한 적도 인근 서태평양 공해에서 탐사를 본격화하기로 하고 최첨단 물리탐사 연구선 ‘탐해 3호’를 14일 진해항에서 출항시켰다.
박현채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