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한-싱가포르 수교 50년, 거래관계 넘어 전략적 동반자로
올해는 한국과 싱가포르가 외교관계를 수립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다. 물론 우리와 싱가포르와의 관계는 이보다 훨씬 이전부터 시작되었다.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해외 거주 우리 독립투사들 중 일부가 싱가포르에서 활동했고 2차대전 직후에는 일본군 포로수용소에 징집되어 복무하던 우리 젊은이 중 일부가 싱가포르 현지의 연합군 전범재판을 통해 사형을 당하는 안타까운 사례도 있었다. 1965년 싱가포르가 독립하자 우리는 1970년 통상대표부를 설치하고 이를 총영사관으로 승격시킨 후 1975년 8월 8일 정식수교를 하게 되었다.
지난 50년 동안 한국과 싱가포르는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사회와 시장경제라는 공동의 가치를 바탕으로 긴밀히 협력하는 한편 ‘아시아의 네 호랑이’ 국가의 일원으로 서로 열띤 경쟁을 이어왔다. 수교 당시 7200만달러에 불과했던 양국 간 교역은 2023년에 300억달러로 늘어났다. 현재 싱가포르는 한국의 9대 교역국이고 싱가포르에게는 한국이 7대 교역국이다.
인적교류도 2023년에는 한국인의 싱가포르 방문객 수가 57만여명, 싱가포르인의 방한객 수가 35만여명에 달했고 1주일에 무려 110편 정도의 직항 항공편이 양국을 연결하고 있다. 지난 50년간 양국의 교류 성적표는 우리들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특별한 것이었다.
2005년 한국은 칠레에 이어 두번째로 싱가포르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했고 2022년에는 전자적 방식의 교역과 비즈니스의 원활화를 위한 한-싱 디지털 동반자 협정을 체결했다. 2024년에는 양국간 범죄인 인도조약까지 체결해 경제 및 인적교류 활성화를 위한 대부분의 주요 기반을 완성했다.
협력 부족했던 부분에 관심 높여 나가야
외국의 주요 지도자 중 리콴유 싱가포르 전 총리만큼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고 우리 국민들의 연구 대상이 된 정치인도 드물 것이다. 현재까지 수많은 우리 정치인과 학자들이 그가 남긴 선정(善政) 사례를 연구하고자 싱가포르를 방문하고 있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준다.
싱가포르 역시 한국의 제조업 분야를 열심히 연구해왔고 한국의 드라마 영화 음악 등 문화 콘텐츠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숨기지 않는다. 한류를 사랑하는 외국인들 중 싱가포르인들만큼 열정적이고 진심인 사람들도 드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싱 양국 관계를 이야기할 때 흔히 거래적 관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비록 상황에 따라 일시적인 손해가 있더라도 장기적인 이익을 함께 설계해 나가는 사이, 가치와 이상을 함께 공유할 수 있고 주요 사안에서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이로 성숙하기에는 아직 한 단계 더 발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무엇이 양국관계의 추가적 성장을 제한하는 요소일까? 우선 안보적 차원에서의 접점이 부족하다. 우리의 대외정책은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하는데 비해 오랜 비동맹 전통을 지닌 싱가포르는 가능한 중립적 입지를 견지하면서 강대국과 얽히는 것을 피하고자 한다.
경제산업면에서는 여러 분야에서 서로 경쟁할 수밖에 없는 구도가 형성된 측면도 있다. 바이오 로봇 인공지능 해운산업분야 등에서 상호경쟁하고 있으며 반도체 부문에서도 경쟁이 형성되고 있다.
이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협력이 부족했던 부분에 대한 관심을 높여나가야 한다. 두 나라는 경제적 번영의 활로인 역내 해양수송로의 안정적 확보와 국제법에 기초한 해양질서 확립을 위해 양자적 차원의 협력과 아세안을 매개로 한 지역적 차원의 협력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양국이 2019년 아세안 확대 국방장관회의의 해양안보분과 공동의장국으로 부산과 싱가포르 해상에서 연합 해상훈련을 공동 주관한 것은 좋은 시작이다. 아울러 최근 강화되고 있는 양국 간 사이버 안보 분야에서의 협력 역시 안보 분야 협력의 좋은 본보기가 된다.
미국 중국 관계에서 동일한 이해 갖고 있어
국가 간 경쟁이 날로 심화되고 있는 첨단 과학기술 분야에서의 상호협력도 필요하다. 싱가포르는 세계적 수준의 첨단기술을 개발하는 대학과 연구소를 보유하고 있어 최근 기술과 제조업 분야에서 경쟁력 상실을 우려하고 있는 우리와의 협력 잠재력이 매우 큰 나라다. 특히 대부분의 제조업 분야에서 우리와 싱가포르를 추월한 중국과의 경쟁을 헤쳐 나가고 미국의 보호주의와 관세장벽으로 인해 위협받고 있는 공급망의 안정화에도 양국은 동일한 이해를 갖고 협력할 수 있다.
지역협력과 관련해서는 새로 아세안 회원국이 되는 동티모르 공무원에 대해 양국이 합동으로 훈련시키는 방안 등 공동의 프로젝트를 적극 발굴할 필요가 있다. 수교 50주년의 성과를 기반으로 금년이 양국 간 전 방위적 협력의 장을 여는 또 다른 50년의 원년이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