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팩토리의 혈관, 광통신 기업들이 뜬다
2026년 GTC 관전 포인트, EML에서 실리콘 포토닉스까지 넓어지는 광통신 생태계
16일(현지시간)부터 미국에서 열리는 엔비디아 연례 개발자회의 GTC(그래픽처리장치 테크놀러지 콘퍼런스)의 관전 포인트는 더 이상 GPU만이 아니다. 2023년과 2024년 AI 투자 사이클의 첫번째 병목이 GPU였고, 그 다음이 HBM(고대역폭 메모리)이었다면 이제 시장의 시선은 한단계 더 깊은 곳으로 옮겨가고 있다.
“칩 사이를 어떻게 더 빨리, 더 멀리, 더 적은 전력으로 연결할 것인가.” 이번 GTC가 단순히 더 빠른 칩을 공개하는 자리를 넘어 차세대 AI 네트워크 구조와 광통신 생태계의 방향을 보여주는 무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GTC의 주인공이 GPU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행사를 앞두고 업계 곳곳에서 주목받는 또 하나의 키워드가 있다. 광트랜시버다. 엔비디아가 최근 광트랜시버를 분기당 20억달러 규모로 매입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작은 부품이 AI 인프라 투자의 새로운 핵심으로 떠올랐다. GPU가 아무리 강력해도 칩 간 데이터를 주고받는 통로가 막히면 성능 전체가 무너진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AI 데이터센터 기업들은 광 네트워크 인프라 확충에 GPU 못지않은 예산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슈퍼카와 비포장도로
AI 데이터센터는 이제 단순한 서버 집합이 아니라 ‘AI 팩토리’로 불린다. 수많은 GPU가 랙 단위로 묶이고, 그 랙들이 대규모로 연결되며 하나의 공장처럼 움직인다. 문제는 칩 성능이 아무리 좋아져도 칩과 칩, 랙과 랙 사이 데이터 이동이 막히면 전체 효율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점이다. 수천만원짜리 슈퍼카를 비포장도로에 올려놓은 것과 다를 바 없다.
엔비디아는 자사 2025 회계연도 지속가능성 보고서에서 “단일 AI 팩토리는 100~200MW를 끌어쓸 수 있다”고 밝혔다. 원자력·신재생에너지 신규 설비가 실제 가동에 이르기까지 최소 5~10년이 걸리는 현실에서 업계는 전기를 덜 쓰면서도 더 빠르게 데이터를 보내는 기술을 찾을 수밖에 없다. 해법은 실리콘 포토닉스, 즉 전기 대신 빛으로 데이터를 전송하는 광통신 기술이다.
EML이냐, 실리콘 포토닉스냐
광통신 생태계의 핵심 부품은 전기흡수변조레이저(EML, Electro-Absorption Modulated Laser)다. 고속 광트랜시버의 심장으로 200G EML을 제대로 양산할 수 있는 기업은 전세계에서 루멘텀, 코히런트, 미쓰비시 계열, 브로드컴 정도로 극히 제한적이다. 엔비디아가 루멘텀과 코히런트 두 회사에 대규모 자금을 집행해 2027년까지 생산능력을 사실상 선점하는 실행력을 보인 것도 이 맥락이다.
그러나 광통신의 미래가 EML 하나로만 굳어지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실리콘 포토닉스가 새로운 변수로 등장한다. EML이 레이저와 변조 기능을 하나의 소자에 통합하는 방식이라면 실리콘 포토닉스는 이를 분리한다. 연속파(CW: Continuous Wave) 레이저가 빛만 만들고 실리콘 포토닉스 칩이 따로 신호 변조를 맡는 구조다. 변조기 쪽은 일반 반도체 공정 기반의 대량생산이 가능하다. 800G 단거리 모듈 기준으로 EML 기반보다 CW와 실리콘 포토닉스를 결합한 방식이 훨씬 저렴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결국 두 기술의 영역은 구간으로 나뉜다. 500m 이상 장거리 연결에서는 EML의 우위가 유지된다. 하지만 데이터센터 내부의 단거리 연결에서는 실리콘 포토닉스의 비중이 빠르게 커질 수 있다. 데이터 처리량이 한층 커진 1.6테라(T) 시대가 본격화해 초고속 통신이 표준으로 자리잡을수록 이 흐름은 더 강해질 가능성이 크다.
이 구도에서 주목받는 이름이 미국 나스닥 상장사 어플라이드 옵토일렉트로닉스(AOI)다. 엔비디아가 EML 생산능력을 사실상 선점할 경우 아마존 구글 메타 같은 하이퍼스케일러는 자사 AI 가속기 클러스터에서 다른 길을 택할 유인이 커진다. 그 대안으로 주목받는 것이 CW 레이저와 실리콘 포토닉스를 결합한 방식이다.
나아가 업계는 이런 광기술을 ‘반도체 칩과 광학부품을 하나의 패키지 기판 위에 직적 집적’하는 CPO(Co-Packaged Optics)로까지 발전시키려 하고 있다.
AOI는 역시 실리콘 포토닉스와 CPO를 겨냥한 레이저 제품을 내놓으며 잠재 후보군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특히 아마존과의 장기 협력 기대가 더해지면서 AOI는 “엔비디아 반대편 생태계의 대표 수혜주” 후보 가운데 하나로 시장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주가는 1년 새 330% 올랐다.
루멘텀-EML 진영의 선두주자
루멘텀(LITE)은 원래 애플 아이폰의 얼굴 인식용 레이저를 납품하던 회사였다. 2023년 광학 모듈 전문업체 클라우드라이트 인수를 계기로 AI 데이터센터 시장으로 체질을 빠르게 바꿨고 엔비디아 구글 같은 하이퍼스케일러에 광트랜시버 완제품을 직접 납품하는 능력을 강화하고 있다.
실적도 강하다. 가장 최근 분기인 2026 회계연도 2분기 조정 주당순이익은 1.67달러로 예상치를 웃돌았고 다음 분기 가이던스로 제시한 조정 주당순이익 2.15~2.35달러는 분석가 예상치(1.41달러)를 18% 이상 상회한다. 최근 세 분기 연속 시장 예상치를 웃돌았다. 주가는 지난 1년 새 800% 상승율을 보였다.
코히런트-광학계의 백화점
코히런트(COHR)는 루멘텀과 결이 다르다. 소재와 광반도체, 부품, 모듈까지 아우르는 수직 계열형 광학 기업으로 InP 기반 EML과 CW 레이저, GaAs VCSEL, 실리콘 포토닉스까지 폭넓은 기술 포트폴리오를 갖췄다. 자체 생산시설과 웨이퍼 생산 역량을 바탕으로 공급 안정성과 원가 관리 측면의 강점도 지닌다. 2024년 6월 짐 앤더슨 CEO 취임 이후에는 비핵심 사업 매각과 부채 감축을 병행하며 재무구조 개선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실적도 견조하다.
2026 회계연도 2분기 조정 주당순이익은 1.29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35% 늘었고 회사가 제시한 다음 분기 예상 실적도 1.28~1.48달러로 강했다. 다만 주가는 1년 새 270% 넘게 올랐다. 주가 부담이 커진 만큼 앞으로는 데이터센터·통신 부문의 성장세가 실제 이익으로 얼마나 이어지느냐가 관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후루카와전기 등 넓어지는 생태계
광통신 투자의 지형은 두 종목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브로드컴(AVGO)은 자체 실리콘 포토닉스와 CPO 기술, AI 네트워킹 스위치 칩 역량을 함께 갖춘 핵심 플레이어로 차세대 광통신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다만 브로드컴의 광기술은 외부 시장에 범용으로 대규모 공급된다기보다 자사 스위치와 네트워킹 플랫폼 중심의 내부 생태계에 우선 적용되는 성격이 강하다. 이 때문에 자사 시스템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방향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후루카와전기는 광섬유·광케이블 분야의 정통 강자로 꼽힌다. 자회사 OFS를 통해 북미 하이퍼스케일러 공급망에 깊숙이 들어가 있어 데이터센터 증설의 직접 수혜가 기대되지만 환율효과를 걷어내면 사업 부문별 실적 개선 폭에는 차이가 있다는 점은 함께 봐야 한다. 광통신 시장이 커질수록 완제품 뒤에 숨은 핵심 부품 수요는 고스란히 미쓰비시전기로 흘러든다. 완제품 브랜드는 달라도 그 안을 뜯어보면 미쓰비시전기 부품이 들어 있는 구조다.
코닝(GLW)은 성격이 더 다르다. 개별 부품보다 데이터센터 안팎을 잇는 광섬유, 커넥터, 랙 솔루션을 아우르는 종합 인프라 공급사다.
크레도(CRDO)의 핵심은 AEC, 즉 액티브 전기 케이블이다. 단순 구리 케이블과 달리 양 끝단에 DSP 등 능동 칩을 넣어 신호 손실을 줄인 제품으로 AI 데이터센터 내부의 서버·스위치·GPU를 저전력으로 고속 연결하는 데 쓰인다. 광통신의 대체재라기보다 짧은 거리 구간에서 전력 효율과 비용 경쟁력을 앞세운 보완재에 가깝다.
AI 투자 사이클은 이제 칩 성능 경쟁에서 연결 효율 경쟁으로 옮겨가고 있다. 기존 구리 기반 통신은 경제성을 앞세워 여전히 폭넓게 쓰이고 있지만 AI 데이터센터 통신의 큰 흐름은 이미 광통신 쪽으로 기울고 있다.
지금 병목은 EML이다. 그러나 데이터 처리량이 더 커지고 1.6T 시대로 넘어갈수록 실리콘 포토닉스는 대량 생산과 집적화에 유리해 중장기적으로 원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기술로 평가된다. 결국 현재의 승부처가 EML이라면 다음 세대의 무게중심은 실리콘 포토닉스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