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기획예산처에 거는 기대
코스피가 단기간에 6000선을 돌파할 정도로 올해 경제에 대한 기대가 높았던 것이 불과 얼마 전 일이다. 그러나 이란전쟁이 갑작스럽게 발발하고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나들면서 활기차게 출발했던 올해 경제 역시 저성장과 고물가라는 이중의 악재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국가 경제를 운영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국가 예산 편성을 총괄하는 주무 부처인 기획예산처의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다.
기획예산처는 현 정부가 단행한 정부조직 개편에 따라 지난 1월 2일 국무총리 산하 장관급 기관으로 공식 출범했다. 이는 1998년 김대중정부가 설치했던 기획예산처의 부활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에는 예산·세제·금융 등 경제정책 기능이 재정경제원에 과도하게 집중돼 정책에 대한 견제와 비판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고, 이것이 외환위기를 초래한 한 원인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이런 문제인식 하에서 김대중정부는 재정경제원을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로 분리했다. 그러다 10년 뒤 이명박정부 시기에 기획재정부로 재통합됐다가 18년이 지난 후 올해 다시 분리됐다.
경제위기 시대, 예산 편성 지침과 재정 전략부터 바로 세우자
현 정부가 기획예산처를 독립시킨 것은 강력한 권한을 가진 기획재정부가 긴축재정 기조에 집착하고 효율성 논리를 과도하게 앞세우면서 국가 운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판단 때문이다. 실제로 이 문제는 문재인정부 시기에 뚜렷하게 드러났다. 문재인정부는 노동권 강화와 복지 확대를 주요 국정과제로 추진하려 했지만 기획재정부는 관련 정책 추진 과정에서 소극적이거나 방해하는 태도를 보였다. 또한 세입을 과소 추정하고 세출을 과다 추정하는 방식으로 긴축적 재정 운영을 유도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기획예산처가 당면한 첫번째 과제는 내년도 예산안을 제대로 편성하는 일이다. 올해 예산은 현 정부가 수립한 첫 번째 예산이지만 이재명정부의 재정 철학과 전략이 본격 반영된 예산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올해 예산은 지난해 3월 전임 정부의 국무회의에서 확정된 예산 편성 지침에 따라 작성됐기 때문이다. 물론 정권교체 이후 연구개발(R&D) 예산이 복원되고 예산 증가율이 높아지는 등 일정 부분 정책 기조가 반영됐다. 그러나 세부 내용을 보면 전 정부가 추진했던 문제 있는 사업들이 상당수 남아 있다. 내년 예산은 큰 틀뿐 아니라 세부 내용도 정리될 필요가 있다.
기획예산처가 제대로 일을 하려면 3~4월에 수립되는 예산편성 지침부터 제대로 마련해야 한다. 이 지침에 담긴 부처별 지출 한도, 중점 투자 분야, 지출 구조조정 방향에 맞추어 각 부처가 사업 예산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산 편성 지침을 제대로 수립하기 위해서는 현재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재정전략회의’가 실질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노무현정부가 도입한 재정전략회의는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고 경제부처 장관과 주요 부처 장관이 함께 참여해 국가 재정의 전략적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중기적 시계에서 전략이 세워져야 단기적 재정운용도 제대로 방향을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어느새 재정전략회의는 경제부처가 마련한 방향을 공유하는 형식적 회의로 전락했다.
국정운영에서 기획예산처가 짊어질 책임 가볍지 않아
최근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가 지명돼 청문회를 앞두고 있다. 후보자는 기획예산처를 단순한 예산 편성 기관이 아니라 국가전략을 설계하고 적극적 재정을 운용하는 기관으로 운영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정부 역시 기획예산처의 기획 기능 강화를 위해 미래전략 기능을 추가했다. 인공지능 전환, 기후위기 대응, 인구구조 변화 같은 장기과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재정 전략의 역할이 중요하다. 향후 국정운영에서 기획예산처가 짊어질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