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의 캐나다와 미국, 협상 결말은

2025-07-29 13:00:36 게재

가장 가까웠던 동맹의 균열…‘관세전쟁’ 중 캐나다 주지사들 “중국과 친하게 지내자”

“우리는 오랫동안 친구와 적 모두에게 이용당해 왔다. 솔직히 말해서 많은 경우 친구가 적보다 더 나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7월 초 텍사스의 홍수 피해 현장을 둘러보러 가기 전 “여러 국가들과 무역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로 캐나다에 대해 친구를 이용해 이익이나 취하는 성가신 존재, ‘적 보다 나쁜 친구’로 인식한다면 수입관세를 둘러싼 무역협상은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다른 대표적 사례는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 사건이다. 그는 2018년 12월 미국의 요청으로 캐나다 밴쿠버 공항에서 체포됐다. 미국은 화웨이가 이란 제재 결의안을 위반했다는 혐의 등으로 기소했는데 캐나다는 미국과의 범죄인 인도조약에 따라 멍완저우 부회장을 체포해 가택연금 조치를 내렸다. 중국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캐나다 전 외교관 등 2명을 간첩 혐의로 구금했다.

뒷걸음질이냐 현실적 대응이냐

이처럼 국제관계에서 캐나다는 늘 미국의 핵심 파트너였다. 하지만 최근의 양국 관계를 보면 국제사회에서 영원한 동지는 없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케 한다. 미국은 캐나다를 끊임없이 압박하고, 캐나다 안에서는 중국과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의 캐나다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발언은 또 있다. 그는 7월 11일 “모든 캐나다산 제품에 3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하면서 “캐나다가 맞대응에 나설 경우 부과금을 인상할 것”이라고 미리 경고했다. 동맹이었던 캐나다를 중국처럼 취급하고 있는 부분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캐나다로부터 펜타닐이 미국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는 언급도 몇차례 반복했다. 2024년 10월부터 지난 5월까지 미국-캐나다 국경에서 펜타닐 26kg이 압수됐는데, 같은 기간 멕시코와 접한 미국 남서부 국경에서는 150배쯤 되는 약 3700kg이 압수됐다. “쏟아져 들어온다”는 언급은 멕시코 국경과 비교할 때 근거가 희박하다고 반박할 수 있다.

캐나다의 자동차와 철강 분야 노동자 약 32만 명을 대표하는 유니포어(Unifor) 관계자는 이런 상황을 ‘갈취(Extortion)’라고 표현했다. 노조측은 “양보를 계속하면 폭력배를 멈추게 하지 못하지만 단결된 힘은 가능하다”며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격한 비난을 쏟아냈다.

23일 미국은 일본에 대한 상호 관세율을 25%에서 15%로 낮추고, 특히 자동차 관세는 12.5%로 조정했다. 앞서 영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등과도 잇따라 관세협상을 타결했다. 캐나다와의 협상시한은 8월1일로 정해졌지만 일각에서는 마감시한이 뒤로 밀릴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캐나다의 속내는 복잡하고, 미묘하다. 마크 카니 연방총리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여론이 높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실망과 비난의 목소리도 크게 들린다.

카니 총리는 미국과 무역협상에서 겉으로는 ‘캐나다의 국익’을 최우선으로 내세우며 실속 없는 양보는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4월 총선 당시상대가 부당하게 나오면 공격적으로 나갈 수 있다는 의미의 ‘엘보우 업(Elbows Up)’을 부르짖던 기세는 한풀 꺾인 모습이다.

먼저 그는 무역협상 가운데 자유당 정권에서 추진하던 디지털세를 철회했다. 디지털세는 캐나다 내 디지털 서비스 매출이 연간 2000만캐나다달러(약 200억원) 이상인 기업을 대상으로 수익의 3%를 세금으로 매기려던 계획이다. 구글이나 아마존 등이 과세 대상이었다.

카니 총리가 디지털세 부과를 포기하자 피에르 포이리에브 보수당 대표 등 야당 일각에서는 “카니가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며 비꼬았다. 그럼에도 카니 총리는 관세가 포함된 무역합의도 수용할 수 있다는 뜻을 시사했다. 관세협상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북미자유무역협정과 같은 완전한 무관세는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됐다.

하워드 루트닉은 미국 상무장관은 지난 21일 “미국과 캐나다의 자유무역 시대가 끝났는지”를 묻는 질문에 “캐나다에 대한 관세가 적어도 당분간은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루트닉 장관은 “그러한 생각(무관세 협정) 자체가 어리석다”면서 “상당량(75%가량)의 캐나다산 제품이 지금도 북미자유무역협정에 따라 무관세로 미국에 들어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문을 열어준 우리와 달리 캐나다는 미국에 개방적이지 않으며 그들도 시장을 열어야 한다”면서 ”캐나다가 시장을 개방할 의향이 없다면 관세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택건축에 많이 쓰는 목재와 농산품 수출입 관련 협상은 양국의 오랜 현안이었다. 미국 내 목재산업계에서는 캐나다정부가 불공정한 보조금을 목재 관련 업체들에게 지원해 가격경쟁에서 피해를 입는다며 불만이 많았다. 낙농가에 대한 캐나다정부의 지원정책도 비슷한 상황인데 미국은 이를 시정하기 위해 그동안 캐나다산 목재와 농산품 수입에 제한을 두는 쿼터제 도입을 검토했다. 그러나 캐나다정부는 미국의 쿼터제 도입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국제무역기구에 제소하는 등 반대했다.

캐나다 주지사들이 온타리오주 헌츠빌에 모여 미국과의 관세 협상 등 현안을 논의하고 있다. 출처 The Canadian Press

현실화하는 경제적 타격

머코스키 상원의원 등 미국 대표단이 캐나다정부 고위 관계자를 면담했을 때 CBC 등 캐나다 언론들은 “캐나다를 51번째주로 편입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양국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머코스키 의원의 발언에 더 무게를 실었다. 하지만 실제 면담에서는 미국 대표단이 캐나다 시장 개방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의견을 카니 총리에게 강하게 전달한 것으로 추정된다.마침 카니 총리도 그동안의 입장을 바꿔 미국의 캐나다산 목재 수입 쿼터제 도입에 대해 눈감을 수 있다는 취지로 언급했다.

지난 5월 캐나다의 미국 수출은 0.9% 감소하며, 4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이는 관세 부과가 실질적인 수출 타격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드러낸다. 캐나다 상공회의소는 “미국으로의 원유 수출 비중이 높은 앨버타주와 자동차부품 등 제조업체가 많은 온타리오주 등이 가장 큰 수출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캐나다통계청에 따르면 캐나다는 2023년에 93억달러 상당의 구리와 구리를 기반으로 한 제품을 수출했다. 이 가운데 52%가 미국으로 향했다. 트럼프 대통령 방침대로 구리에 50% 관세를 부과하면 캐나다 업체의 피해가 불가피하다. 관세로 인한 경제적 불확실성과 경기침체 우려는 부동산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토론토와 밴쿠버 같은 대도시의 부동산 시장은 수요 감소로 거래가 크게 줄었다.

관세전쟁이 본격화한 지난 3월 한달 동안 캐나다는 3만3000개의 일자리를 잃었는데 이는 2022년 이후 최악의 기록이다. 미국으로의 수출이 감소함에 따라 캐나다 경제성장 전망치는 계속 하향 조정되고 있다. 연방정부는 미국과의 무역갈등 때문에 2026~2027 회계연도에 100억~150억달러의 재정적자가 추가될 것으로 예상했다.

7월 초 실시된 앵거스리드연구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다수의 캐나다인들은 미국과의 무역협상에서 연방정부가 강경한 접근 방식을 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1697명의 응답자 가운데 63%가 강한 맞대응을 주장했으며 부드러운 접근 방식에 대한 지지는 37%에 불과했다.

여론은 “미국에 더 강하게 맞서라"

7월 21일부터 사흘간 캐나다 13개 주지사들은 온타리오주 헌츠빌에서 회동했다. 미국과의 무역분쟁 등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회의 직후 주지사들은 연방정부를 향해 “대중국 관계개선에 적극 나서라”고 촉구했다. 회동을 주최한 덕 포드 온타리오 주지사는 윈스턴 처칠의 말을 인용하며 “적의 적은 친구다. 나는 미국을 적으로 생각하지 않지만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적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직격했다. 그는 “중국이 공정하게 경쟁하고 캐나다 시장을 훼손하지 않는 한 그들과 거래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스캇 모 사스캔처원 주지사는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어떤 식으로든 줄이려면 중국과 거래해야 할 것이며, 따라서 우리는 중국과 더 폭넓은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총리들은 공동성명에서 “캐나다산 카놀라유 완두콩 돼지고기 해산물에 대한 중국 측 관세를 폐지하는데 연방정부가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 달라”고 요청했다.

김용호 언론인 캐나다 토론토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