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상법 개정과 이사회 역할

2025-07-30 13:00:02 게재

상법 개정안이 오랜 논쟁 끝에 지난 3일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했다. 추가 개정을 놓고 여야가 다시 첨예하게 부딪히고 있지만 ‘주주 충실 의무’를 규정한 개정 상법도 큰 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 상법 제382조 3의 1항에서는 이사는 법령과 정관에 따라 회사를 위해그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규정됐으나 개정 상법에서는 ‘회사’를 ‘회사와 주주’로 확대함으로써 이사들이 회사뿐만 아니라 주주에 대해서도 충실의무가 있다는 점을 명확히했다. 또한 2항에서는 이사는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고 명시해 이사들이 일반주주와 지배주주의 이익을 동일하게 고려하도록 의무화했다.

아울러 개정 상법에서는 이사회의 독립성을 강화했다. 주주총회에서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 선임 시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합산해 의결권을 3%로 제한했다. 이로 인해 2대 또는 3대 주주가 원하는 감사위원이 선임될 가능성이 커졌다. 또한 이사회 내 사외이사 비율을 기존 1/4에서 1/3로 확대하고 명칭도 독립이사로 변경했다. 이와 별도로 주주총회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강화하고, 일반주주들이 쉽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전자주주총회 제도도 도입했다.

일반주주 보호와 경영판단의 원칙 모두 필요

이번 상법 개정은 지배주주의 전횡을 방지하고 일반주주를 보호할 수 있도록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초점을 맞추었다. 특히 이사회가 경영의사 결정을 할 때 회사와 주주 간 또는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간 이해관계가 충돌해도 회사에만 손해가 없으면 문제가 없던 관행에 제동이 걸렸다.

주식시장에서는 상법 개정이 일반주주 보호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짐에 따라 대기업 지주회사 주가가 상승하는 등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반면 상장회사협의회 등 재계는 상법 개정으로 이사회의 의사결정 관련 소송이 증가하고, 헤지펀드 등 투기자본이 경영에 과도하게 개입할 가능성 커 기업들의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법원은 이사들의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보호하기 위해 판례를 통해 ‘경영 판단의 원칙’을 인정하고 있다. 경영 판단의 원칙이란 이사가 의사결정 과정에서 합리적으로 이용가능한 정보를 충분히 수집해서 검토하고, 선의로 회사의 이익을 위해 일한 경우 현저히 불리하지 않다면 사후적 결과에 대해 이사에게 법적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계는 이사들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경영 판단의 원칙을 법제화하고 구체적인 적용요건을 명시해 달라고 요구한다. 경영 판단의 원칙은 이사들이 합리적인 경영의사결정을 수행하면 의도하지 않은 불리한 결과가 발생하더라도 법적으로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경영 판단의 원칙을 명문화한 미국과 독일의 사례를 참고해 향후 법제화 논의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

이사회 의사결정의 질이 높아지면 기업가치도 제고돼

일반적으로 이사회가 회사를 위해 수행하는 의사결정은 주주에게도 유익하다. 다만 물적분할 후 중복상장이나 계열사 간 합병, 대규모 유상증자 등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의 이해관계가 충돌되는 경우나 위험이 큰 연구개발 투자나 신규사업 진출과 같은 의사결정은 상황에 따라 회사와 주주에게 손해를 끼칠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사가 경영 판단의 원칙에 따라 보호받기 위해서는 정보에 근거한 의사결정을 수행해야 한다.

이는 충분한 정보와 데이터 및 분석을 바탕으로 깊이 있는 질문과 토론, 찬반 논의를 거쳐 결론을 도출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회사와 주주 그리고 주주 간 이해관계 충돌될 때 최선의 의사결정을 위해 꼭 필요하다. 이사회 의사결정의 질이 높아지면 일반주주를 보호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업가치도 제고된다.

김범준 가톨릭대 교수 회계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