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 투기를 넘어 인프라가 되다

2025-08-01 00:00:00 게재

실리콘 밸리·월가·백악관이 이끄는 디지털 금융 대전환 시대

실리콘밸리와 월가, 그리고 백악관까지 나선 암호화폐 대변혁의 시대가 열렸다. ‘페이팔 마피아’ 피터 틸은 파운더스펀드로 암호화폐 채굴회사 비트마인 이머전 테크놀로지스 지분 9.1%를 취득했고, 월가의 투자귀재 톰 리는 “스테이블코인이 암호화폐의 챗GPT가 될 것”이라며 2억5000만달러 규모의 이더리움 매입을 선언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일가는 밈코인 ‘$TRUMP’ 발행으로 수수료 수입만 1억달러에 육박하는 성과를 거두며 디지털 자산 영역까지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7월 18일, 암호화폐를 포괄적으로 규율하는 사상 첫 연방법인 '지니어스(GENIUS)법안’에 서명했다. 스테이블코인이라는 특정 디지털 통화를 제도권 금융으로 편입하기 위한 이 법안은 발행주체·담보요건·감독체계 등 핵심요소를 명확히 규정하며 미국 디지털 자산 산업의 전환점을 마련했다.

여기에 더해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1월 서명한 행정명령에 따라 출범한 정부 태스크포스(TF)의 첫 공식 보고서가 발표될 예정이다. 이 보고서는 GENIUS법의 뒤를 잇는 친암호화폐 정책의 청사진으로 향후 암호자산 관련 입법·감독 체계를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할 전망이다.

트럼프부터 피터 틸까지 '크립토러시'

이제 암호화폐는 단순한 투기대상을 넘어 새로운 산업 인프라로 자리잡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과 디지털 자산이 전통 금융과 기업 재무의 핵심축으로 진화하는 가운데 글로벌 경제의 새로운 운영체제가 탄생하고 있으며 이는 금융서비스부터 국제결제, 기업 재무전략까지 모든 영역을 재편하고 있다.

작년 1월부터 비트코인 ETF라는 친숙한 투자 도구를 통해 개인들도 쉽게 암호화폐에 접근할 수 있게 됐다. 아이셰어즈 비트코인 트러스트(IBIT), 피델리티 와이즈 오리진 비트코인 펀드(FBTC), 아크 21셰어즈 비트코인 ETF(ARKB), 비트와이즈 비트코인 ETF(BITB), 반에크 비트코인 트러스트(HODL) 등이 있다. 이 중 IBIT(블랙록 운용), FBTC(피델리티 운용), BITB(비트와이즈)가 압도적인 거래량과 자금 유입을 기록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5년 7월 18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스테이블코인 규제 체계 마련과 산업 감독 강화를 위한 ‘GENIUS 법안’에 서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빌 해거티 상원의원(공화·테네시),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공화·루이지애나). 로이터=연합뉴스

코인 ETF 허용, 제도권 진입의 완성

2025년 상반기까지 현물 비트코인 ETF에 총 1600억달러 이상의 자금이 유입되었으며 기관 투자자들의 본격 참여로 안정적 유동성이 확보되고 있다는 평가다. 다만 국내 투자자들에게는 아직 거래가 제한되어 있다는 아쉬움이 있다.

비트코인 선물 ETF로는 프로셰어즈의 ETF(BITO), 발키리의 ETF(BTF), 반에크의 ETF(XBTF) 세 가지가 운용되고 있다. 이들은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비트코인 선물 계약을 추종하며 현물 보유는 하지 않는다.

이더리움 현물 ETF 8종에 대해서도 미 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7월부터 본격 거래를 허용했다. 그레이스케일의 이더리움 미니 트러스트(ETH), 프랭클린템플턴의 프랭클린 이더리움 ETF(EZET), 블랙록의 아이셰어즈 이더리움 트러스트(ETHA) 등이 대표적이다.

암호자산 거래소에서 리플(Ripple)이 개발한 XRP가 특히 주목받고 있다. 국제 송금 및 결제 거래에서 '중간통화' 역할을 하는 XRP는 자체 통화가 불안정한 남미와 동남아 금융권에서 높은 수요를 보이고 있으며 비트코인 이더리움 테더(USDT)에 이어 시장가치 기준 네 번째로 큰 암호화폐로 자리매김했다.

차세대 결제 인프라 XRP와 신흥 XRPT

미국 SEC가 리플(XRP) 기반 현물 ETF 심사에 착수하면서 승인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볼라틸리티 셰어즈가 2025년 5월 출시한 XRPT는 XRP 가격의 일간 변동률을 2배 추종하는 나스닥 상장 레버리지 ETF로 7월 29일 기준 순자산가치 21.62달러를 기록하며 지난 한달 동안 약 80% 급등했다. 운용자산 약 9000만달러 수준에서 꾸준한 자금 유입이 이어지고 있다.

XRP 열풍 속에 리미틱스(Remittix, RTX)도 조용히 부상하고 있다. 글로벌 결제 전용으로 구축된 리미틱스는 중개 교환 없이 30여 국가의 은행 계좌로 암호화폐를 직접 송금할 수 있는 혁신적 서비스를 제공한다.

채굴업계의 새로운 패러다임

미국 주요 암호화폐 채굴회사들이 단순 채굴을 넘어 전략적 비트코인 보유로 사업 모델을 진화시키고 있다. 마라톤 디지털 홀딩스(MARA)는 약 1.5GW 설비와 업계 상위 BTC 보유량을 자랑하며, 코어 사이언티픽(CORZ)은 연산 속도(해시레이트) 기준 미국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라이엇 플렛폼(RIOT)은 텍사스 중심의 대규모 운영으로 헛8마이닝(HUT)은 트럼프 가족회사와 합병해 아메리칸 비트코인으로 재편되었다. 그 외 비트팜즈(BITF), 싸이퍼 마이닝(CIFR), 클린스파크(CLSK), 하이브 디지털(HIVE), 비트 디지털(BTBT), DMG 블록체인(DMGGF)등이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채굴 회사에서 암호화폐 투자회사로 변신하는 기업들이다. 스트레티지(구 마이크로스트레티지, MSTR)는 7월 기준 약 24만 BTC 이상을 보유한 대표적 사례이며, 마라톤 디지털 홀딩스(MARA)도 약 4만9951개 BTC를 자산으로 보유 중이다.

클린스파크(CLSK)와 아메리칸 비트코인도 적극적인 BTC 매입에 나서고 있다. 비트마인 이머전(BMNR)은 팔란티어 회장 피터 틸이 이끄는 파운더스펀드가 지분 9.1%를 확보하고 있다.

전통 금융의 디지털 전환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BLK)은 프랙스 파이낸스와 전략적 제휴를 통해 자사의 미 국채 기반 채권펀드 BUIDL을 담보로 스테이블코인 발행 사업에 진출했다. 스테이블코인 유통 증가가 곧 펀드 유입 자산 확대와 수수료 수익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한 것이다.

사모펀드 운용사 블랙스톤(BX)은 10억 달러 규모의 비트코인 이더리움 솔라나를 포함한 암호화폐 펀드를 출시하며 기관투자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JP모건 시티 BofA 웰스파고 등 미국 주요 은행들도 공동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위한 컨소시엄 설립을 논의 중이며 각자 자체 토큰 기반 생태계와 탈중앙화 금융(DeFi) 연계 인프라 구축에 나서고 있다.

신용카드회사 비자(VISA)는 스테이블코인 기반 결제서비스사 브릿지(Bridge)와 협력해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신흥국용 스테이블코인 연동 비자카드를 출시했다. 이를 통해 블록체인과 현지 화폐 간 즉시 전환·결제가 가능해졌으며 은행과 핀테크가 자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소각·전송할 수 있는 플랫폼도 지원하고 있다.

써클(USDC) 상장을 계기로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투자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가상자산 합법화로 코인 발행이 늘고 취급액이 증가하면서 수수료 수입도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미국 대표 거래소인 코인베이스(COIN)를 필두로 크라켄(비상장) 제미니(비상장) 등이 활발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전 세계 최대 규모의 바이낸스(비상장)는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거래소와 플랫폼의 황금기

확장형 가상자산 플랫폼으로는 써클(CRCL)이 USDC 발행사로서 다수 플랫폼에 거래 인프라를 제공하고 있으며 로빈후드(HOOD)는 주식과 암호화폐 거래를 통합한 앱으로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가고 있다. 전통 증권사인 찰스슈왑(SCHW)도 2024년부터 비트코인 이더리움 솔라나 등 주요 가상자산과 관련 ETF 거래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업종을 달리해서 암호화폐 생태계에 진입하는 기업들도 늘어났다. 소형 위성 발사 기업 로켓랩(RKLB)은 미국 토큰화 플랫폼 디나리(Dinari)를 통해 자사 주식 기반 블록체인 토큰 'RKLB.d'를 발행하며 혁신적인 연계를 시도하고 있다. 이 토큰은 로켓랩 주식을 1:1로 담보해 실물 기반 가상자산 형태로 유통되며 투자자들에게 24시간 거래와 실시간 결제, 높은 유동성 혜택을 제공한다.

실리콘밸리의 거물들과 월가의 투자자들, 그리고 미국 대통령까지 나서며 암호화폐 산업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변화의 궤도에 올랐다. 블록체인 기술과 디지털 자산이 전통 금융과 기업 재무의 중심축으로 자리잡는 이 역사적 순간을 우리는 지금 목격하고 있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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