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연체채권 소각 차질 빚나…채권 매각에 소극적인 대부업계

2025-08-01 13:00:03 게재

정부, 매입가율 5% 제시에 “손실 불가피” … ‘대부업 시장 정상화 방안’ 요구 나설 듯

“보유한 장기 연체채권 중 일부라도 상환을 받으면 이득이 큰데, 뭐 하러 연체채권을 헐값에 배드뱅크에 넘기겠습니까.”

정부가 장기 연체채권 일괄 매입해 소각을 하겠다고 밝혔지만 대부업체들은 연체채권 매각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아직 본격적인 매입 논의가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정부의 ‘장기 연체채권 채무조정 프로그램’ 이행이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1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채무조정기구(배드뱅크)를 이달 설립하고 내달 업권별 연체채권 매입 협약 체결을 시작할 예정이다.

10월부터는 연체채권 매입 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올해 안에 7년 이상 연체된 5000만원 이하 개인무담보채권에 대한 소각을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금융업권 중 장기 연체채권 보유 비중이 가장 큰 대부업체들이 채권 매각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일정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정부는 금융기관이 보유한 연체채권을 평균 매입가율(채권 장부가액 대비 실제 매입 가격 비율) 5%로 일괄 매입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반면 대부업체들은 매입가율이 25% 안팎이어서 정부가 제시한 매입가율에는 채권을 넘기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매입가율 격차가 큰 만큼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기는 힘든 상황이다.

지난 11일 금융위원회가 개최한 ‘장기 연체채권 채무조정 프로그램 점검을 위한 전문가 간담회’에는 각 금융협회들이 참석했다. 당시 은행연합회는 “이번 장기 연체채권 채무조정 프로그램은 새 정부가 추진하는 중요한 민생 회복 정책이고 그 시급성을 감안해 2차 추경까지 편성된 만큼, 앞으로 은행권도 신속히 협조하고 정부 및 회원기관과 적극적으로 소통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생·손보협회 등 2금융권 협회도 은행연합회 의견에 적극 동의하면서 채무조정 프로그램에 대한 협력을 약속했다.

하지만 대부업체들의 협력을 이끌어내야 하는 대부금융협회의 상황은 다르다. 회원사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동시에 금융당국의 정책에 협조해야하는 처지에 놓였다.

대부금융협회는 금융당국이 대부업체들의 부실채권(NPL) 시장 진입을 막아 놓은 규제부터 풀어주기를 바라고 있다.

대부업체들은 지난 2020년부터 개인 무담보 연체 채권을 사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코로나19 영향으로 발생한 개인 연체채권의 과잉추심을 방지하고 개인채무자의 재기지원을 위한 목적으로 ‘개인연체채권 매입펀드’를 운영해왔기 때문이다. 금융회사들이 개인 연체채권 매각을 캠코가 운영하는 해당 펀드에만 할 수 있도록 창구를 단일화하면서 대부업체들이 부실채권 시장에서 밀려났다. 해당 펀드는 지난 6월말로 운영기간이 끝날 예정이었지만 금융당국은 올해 연말까지 기간을 연장했다.

올해 6월말로 끝날 줄 알았던 펀드 운영이 또 연장되면서 부실채권 인수가 막힌 대부업체들의 불만은 더욱 커졌다.

대부금융협회는 대부업체들이 금융회사들로부터 개인 연체채권을 사들일 수 있도록 부실채권 시장 진입을 허용해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또 대부업체들이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우수대부업자 제도를 활성화해달라는 요구도 꾸준히 하고 있다.

우수대부업자로 선정된 대부업체에 대해 금융당국이 은행 차입을 허용했지만, 실제로 은행 차입 비중은 7%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은행들이 ‘평판 리스크’ 등을 우려해 대부업체에 자금공급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업체들은 주로 저축은행과 캐피탈사 등에서 5~6%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고 있기 때문에 모집비용과 관리비용, 연체율 등을 고려하면 법정 최고금리인 연 20%를 받아도 적자가 발생하는 상황이다. 저신용자에 대한 신규 신용대출을 사실상 중단한 것도 이 때문이다. 대부업체들이 신용대출을 다시 시작하려면 은행권에서 2~3%의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 밖에 없다.

대부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강하게 장기 연체채권 매각을 요구하면 울며 겨자 먹기로 채권을 넘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겠지만, 금융당국도 대부업체들의 목소리를 듣고 대부시장을 정상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불법사금융으로 가는 저신용자들을 근본적으로 차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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