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한미 관세불평등 조속히 해소돼야
한국과 미국의 관세협상이 타결됐다. 지난달 30일 도출된 이번 합의에 따라 미국은 오는 7일부터 자동차 등 한국 상품에 15%의 관세율을 적용한다. 아울러 한국은 3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미국에 투자하고 1000억달러어치의 액화천연가스 등 미국산에너지 제품을 구매하게 된다. 다만 철강과 알루미늄 관세 50%는 그대로 유지된다.
그럼에도 한국은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후 한국에 적용되던 관세율 25%가 15%로 낮아졌기 때문이다. 쌀과 쇠고기 시장을 추가로 열지 않게 된 것도 다행이다.
대미투자펀드, 다소 버겁지만 새로운 기회 창출 가능성도
한국이 새로 조성해야 할 대미투자펀드는 다소 버겁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국내총생산(GDP)의 20%가 넘기에 14%인 일본보다 높다. 그렇지만 투자펀드가 조선이나 반도체 2차전지 원자력발전 등 한국이 나름대로 경쟁력 있는 분야에 투입될 예정이어서 걱정만 할 일은 아닌 듯하다. 한국이 하기에 따라서는 실질적 혜택이 한국 기업에 돌아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1500억달러 규모의 조선업 투자펀드는 작지 않은 기대를 낳는다. 한국 조선업체들이 미국이라는 초대형 시장으로 진출할 무대가 마련될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이미 미국의 필리조선소를 인수해 운영중인 한화그룹의 사례에서 그러한 가능성이 엿보인다. 그렇기에 지난달 31일 주식시장이 폭락하는 와중에도 한화오션 주가는 굳건한 상승세를 보였다.
최근 맹렬하게 추격해 오는 중국을 확실히 따돌리는 데도 효과적이라는 관측이 많다. 지난해의 경우 전세계에서 발주된 신규선박의 톤수를 기준으로 70%를 중국이 가져갔고, 한국은 17%에 그쳤다. 물론 한국은 액화천연가스 운반선 등 고부부가치 선박 위주로 수주했기에 질적인 격차는 여전하다. 그렇지만 고부가가치 선박에서도 중국의 추격이 거세다. 따라서 한국은 이에 대비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럴 때 미국투자를 위한 조선펀드는 천우신조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전반적으로 한국의 대미수출 조건이 현저하게 나빠진 것은 분명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관세없이 수출되던 자동차 등 주요 수출품들이 앞으로는 15% 관세를 물어야 한다. 일본이나 유럽연합도 똑같은 15%를 부과받지만 이들 국가에게는 지금까지 2.5% 관세를 부담해왔다. 이에 비하면 한국의 타격이 상대적으로 더 크다. 50%의 고율관세의 철강과 알루미늄은 더욱 어렵다. 이들 품목에 대해서는 미국의 관세인하를 계속 요구하는 한편 우선 전기료 인하 등 국내 지원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결국 이제는 미국 시장에서 일본이나 유럽과 더욱 치열한 경쟁을 벌이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스스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더욱 힘을 쏟아야 한다. 무엇보다 국내 기업의 체질을 튼튼하게 하면서 제품의 품질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아울러 미국에 대한 무역의존도를 낮출 필요성이 커졌다. 단선적인 무역의존 관계는 미국의 이번 관세폭탄처럼 언제든지 발목잡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따라서 다른 나라의 시장도 적극 개척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외교를 강화하고 자유무역협정 체결도 확대해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미FTA 복원 어렵다면 실제 상호관세 되도록 노력
더욱이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은 사실상 ‘반신불수’가 됐다. 한국의 대미수출 제품에는 15%의 관세가 적용되는 반면 한국이 수입하는 미국산 제품에는 협정에 따라 0%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대한 15% 관세를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한때 한국의 수출효자 노릇을 하던 한미FTA가 또하나의 ‘불평등협정’으로 전락한 셈이다. 그 불평등의 정도가 너무 심하다.
여기에 한국의 잘못은 없다. 전적으로 트럼프행정부의 일방적인 태도에서 비롯된 문제다. 그렇다고 지금 정면으로 거스를 수도 없다. 당분간 불평등한 처지에서나마 천천히 돌파구를 모색하는 수밖에 없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한미FTA를 원상회복시키는 것이다. 원상회복이 어렵다면 글자 그대로 ‘상호관세’가 되도록 개정이라도 해야 한다. 아니면 현행 협정과 버금가는 조건으로 무역협정을 다시 체결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어떤 방법이든 좋다. 분명한 것은 지금과 같은 ‘관세불평등’은 조속히 해소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관세협상이 한국의 통상외교에 남겨진 묵직한 숙제인 이유다.
차기태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