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관세협상의 그림자와 빛

2025-08-06 13:00:01 게재

최근 미국의 관세협정 체결을 위해 전세계 국가 대표단들이 워싱턴으로 몰려드는 모습은 국제경제 질서의 근본적 변화를 상징한다. 각국은 관세혜택을 얻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약정해야 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최근 체결된 관세협정에 따르면 미국 제품에 대해서는 무관세를 적용하는 반면 우리 제품의 미국 수출에는 15% 관세율이 부과된다. 여기에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 약정과 1000억달러의 미국 LNG 구매 약정까지 더해졌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의 구조, 안보이슈, 그리고 미중갈등 상황 등을 고려하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세협상이 글로벌 경제의 격차를 확대하고 개도국의 불안정을 심화시키며 궁극적으로는 전세계 경제에 부정적 파급효과를 미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개도국은 이중의 타격에 직면

트럼프행정부의 관세정책은 누적되는 재정적자와 제조업 경쟁력 하락이라는 미국 내부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응급처치 성격이 강하다. 미국 자동차산업을 비롯한 제조업 부문이 내수시장 점유율을 잃어가는 상황에서 관세 부과와 강제적 투자 유치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세수를 늘리겠다는 전략이다. 실제로 3조달러 이상의 외국인 투자 약정을 확보하며 외형적 성과를 과시하고 있지만 정작 미국 자신도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경제학이론이 보여주듯 관세 부과는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와 예일 예산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미국 가구당 연간 1500달러에서 4700달러 수준의 추가 부담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더해 관세는 인플레이션 압력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된다. 연방준비제도에 따르면 현재의 관세정책으로 인해 핵심 인플레이션이 0.5~0.8%p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요구했던 경기회복을 위한 금리인하의 여지를 제약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개도국이 이중의 타격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각국이 미국에 약속한 막대한 투자재원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자국 내 개발협력 예산이 조정될 가능성이 높다. 일반적인 세출 증액만으로는 충당하기 어려운 규모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정치적 반발이 적은 공적개발원조(ODA) 예산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수 있다. 더욱이 미국도 대외원조를 대폭 축소하고 있어 전세계 개발협력 자금의 공급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전세계적 정치·경제적 불안정성을 키우고 다시 선진국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시장 다변화의 전략적 기회

그러나 이러한 위기상황은 우리에게 오히려 전략적 기회를 제공하는 측면이 있다. 각국이 자국 우선주의로 회귀하면서 더 이상 전통적인 동맹이나 무역협정에만 의존하는 전략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공급망과 시장을 다변화하지 않으면 구조적 리스크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세계적으로 ODA 사업이 축소되는 흐름은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외교적 경제적 기회의 문을 열어준다. 다른 나라들이 개발협력에서 물러서고 있는 지금 한국이 적극적으로 개도국을 지원한다면 단순한 지원자가 아니라 신뢰받는 협력자로서 위상을 높일 수 있다. 이는 중장기적으로 신흥국 내 시장 점유율 확대와 안정적 공급망 확보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는 단기적인 통상 성과 이상의 전략적 이익이 될 수 있다.

‘어려울 때 손 내민 친구가 진짜 친구’라는 말처럼 지금이야말로 우리나라가 진정성 있는 외교와 경제협력으로 새로운 파트너십을 구축할 수 있는 시점이다. 관세협상으로 인한 글로벌 경제질서의 변화는 단순히 위기가 아니라 우리 수출구조의 체질을 바꾸고 세계 속 위상을 재정립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미국 일방주의의 틈새를 파고드는 전략적 대응이 필요한 때다.

유경원 상명대 교수 경제금융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