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자유무역체제의 종언, 우리 살 길은
마침내 자유무역과 세계화시대가 막을 내리고 각자도생의 보호무역주의가 중심인 새로운 국제통상질서가 도래했다. 이미 예고됐던 것처럼 대미 통상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새로운 상호관세율이 7일 0시(한국시간 7일 오후 1시)를 기해 적용되기 시작했다. 이로써 미국 주도 아래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세계무역기구(WTO),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통해 2차세계대전 이후 약 80년간 이어져 온 다자간 자유무역체제가 종언을 고했다.
트럼프의 고율 관세정책은 개별국과의 양자협상을 통해 맞춤형 관세율을 정하는 구조다. 전문가들은 이 제도가 다자간 자유무역주의를 허물고 힘의 논리에 기반한 양자협상으로 세계 무역질서를 재편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한마디로 힘이 강한 나라의 경제적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제도다. 단순한 관세율 조정 문제를 넘어 향후 글로벌 공급망과 기술패권 경쟁에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미간 통상협상은 이제 시작일 뿐
한국은 미국에 수출할 때 유럽연합(EU)이나 일본과 똑같이 15%의 상호관세율을 적용받는다. 한미FTA에 따른 대미관세 0%는 옛말이 됐다. 가격경쟁력에서 관세가 없는 미국 국내기업보다 불리해졌고 외국의 다른 무역 파트너들과는 같은 선상에서 경쟁하게 됐다. 한국은 그동안 한미 FTA 덕택에 거의 모든 상품을 무관세로 수출, 2.5%의 관세를 물어야 했던 일본이나 EU에 비해 유리한 고지에서 싸움을 벌여왔다.
대미수출 관세가 0%에서 15%로 치솟았으니 우리 경제 전반이 타격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2006년 한미FTA 협상 당시 미국 측 수석대표를 지낸 웬디 커틀러 아시아소사이어티정책연구소(ASPI) 부회장은 “이번 합의는 미국과 한국 간의 FTA 가치를 부정하는 것으로 유감스럽게도 한국은 어떠한 특별한 대우도 받지 못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번 합의는 모호한 점이 많다. 이를 확인할 문서로 된 합의문조차 없다. 그러다 보니 농산물시장 개방을 놓고 양국이 상반된 주장을 하는가 하면 한국이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3500억달러의 수익배분 등에 대해서도 양국 발표가 다르다. 심지어 통상분쟁 발생 시 이를 해결할 절차도 마련돼 있지 않다. 게다가 한국 대표산업인 반도체를 비롯해 디지털 통상 분야 관세 논의가 미뤄진 것도 문제다.
이로 미루어 양국 간 통상문제가 이번 협상으로 완결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 명백하다. 이에 따라 앞으로 있을 이재명 대통령의 방미 때까지 양국 간 협상이 더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구체적인 합의내용이 양국 정상회담에서 공식발표될 때까지는 불확실성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상호관세 부과는 미국의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하고 있다. 이 법은 무역적자를 일종의 국가비상경제 사태로 간주해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통해 비교적 간편하게 상호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미 연방법원은 지난 5월 “관세 권한이 헌법상 의회에 있다”면서 트럼프의 상호관세 부과는 대통령 권한을 넘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현재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임기 만료 때까지 지금과 같은 통상압박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정권이 바뀌더라도 이것의 기반이 되는 미국 우선주의와 중국과의 전략경쟁 기조는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점쳐진다.
기술경쟁력 키우는 것 외 다른 길 없어
트럼프발 관세전쟁의 궁극적 목적은 중산층 일자리 되찾기와 미 국채금리를 낮추기 위한 재정적자 해소 등인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특정국의 대미투자가 늘어나면 특정국의 국내 투자 여력이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앞으로 글로벌 기업 유치전과 일자리 쟁탈전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더구나 인공지능 중심으로 산업이 전환되면 세계 각국의 보호무역 정책이 보다 강화될 것이다.
우리도 생존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우선 미국을 대신할 새로운 수출시장을 찾는 일이 급하다. 이에 따라 정부는 시장다변화를 위해 과거 문재인정부가 추진했다가 윤석열정부 출범과 함께 폐기된 신남방·신북방정책 부활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글로벌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경쟁력을 키우는 것 이외에 달리 길이 없다는 점이다.
박현채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