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민간이 이끄는 성장…베트남의 새로운 경제실험
또 람 총서기 주도로 민간기업을 ‘도이모이급’ 새 성장동력으로 육성 계획 … 투자·고용의 중심축 교체
민간부문의 개발 목표 중에서 2030년까지 글로벌 밸류 체인에 참여하는 대기업을 20개 이상 육성한다는 계획은 특히 주목돼야 한다. 또 람 총서기는 3월 발표한 글에서 이미 세계적, 지역적 영향력을 가진 민간기업집단 형성을 주장했다. 이는 민간기업 중심으로 한국의 재벌(기업집단)과 같은 베트남판 내셔널 챔피언을 만든다는 것이다.
베트남은 2000년대 초반 국영기업 중심으로 성장의 추진체로서 기업집단을 창설하려고 시도했으나 부정부패로 인해 실패했다. 이제는 그 역할을 민간기업에게 맡긴다는 것이다.
또 람 총서기의 주도아래 지난 5월 4일 베트남 공산당 정치국은 결의 68호(No. 68-NQ/TW)를 통해 향후 경제 성장 동력을 민간부문에서 찾기로 했다. 결의에서는 민간 부문이 경제성장, 고용창출, 혁신촉진, 노동생산성 향상, 국가 경쟁력 향상, 빈곤 축소, 사회 안정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영세하고, 자본 동원과 경영 역량이 취약하며, 기술과 혁신 역량도 부족하다고 평가한다. 또한 민간 부문은 노동 생산성, 운영 효율성, 경쟁력이 낮고, 장기 비전도 부족하며, 국영기업 및 외자기업과의 연계성도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결의는 민간부문을 새로운 성장동력을 삼기 위해서 △민간부문의 역할 재인식 △재산권과 소유권의 확립, 공정경쟁, 계약의 이행 등 제도 개선 △자본, 토지, 고급인력 등 생산요소에 대한 접근성 개선 △과학기술, 혁신, 디지털, 그린전환 △외자기업과의 연계성 강화 및 중·대기업의 국제활동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결의는 2023년 92만1000개인 민간기업을 2030년 200만개, 2045년까지 300만개 이상으로 늘려 현재 인구 1천명당 9.2개에서 2030년에는 20개로 늘릴 계획이다. 민간기업의 GDP 비중도 2023년 50.4%에서 2030년에는 55~58% 수준으로 높이고, 2045년에는 60% 이상으로 늘린다. 재정수입 기여도 현재 19.1%에서 2030년 35~40%로 늘리고, 고용비중도 현재 81.8%에서 2030년에는 84~85%로 늘릴 계획이다. 나아가 글로벌밸류체인(GVC)에 참여하는 대기업을 20개 이상 육성하겠다고 했다.
정치국 결의가 발표되고 10여일이 지나 내각은 정치국 결의에 대한 실행계획을 발표했다. 국회도 민간경제개발을 위한 결의안을 채택했고, 국회 결의를 실행하기 위한 내각의 결정이 이루어졌다. 또 람도 직접 기고를 통해 민간부문 개발법 제정을 강조했다. 당과 행정부가 모두 일치된 목소리로 민간부문 개발을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에 앞서 또 람 총서기는 이미 3월에 “베트남 번영의 지렛대로서 민간경제부문 개발”이라는 장문의 글에서 사회주의, 현대화, 역동성, 통합의 방향으로 시장경제 제도의 완성 가속화, 사유기업의 재산권, 소유권, 사업 자유, 그리고 계약 이행의 효과적 보호, 주요 국영경제집단의 강력한 통합과 함께,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는 대규모 민영 기업집단 건설을 주장했다.
즉 현재 추진되고 있는 민간기업 육성은 또 람 총서기가 앞장서서 주도하고 있고 그만큼 힘이 실려 있다. 그래서 민간부문개발정책은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베트남이 1980년대 말의 도이모이 정책에 버금가는 정책 전환이라는 평가도 듣는다.
강력한 내셔널 챔피언 육성 의지
민간부문의 개발 목표 중에서 2030년까지 글로벌 밸류 체인에 참여하는 대기업을 20개 이상 육성한다는 계획은 특히 주목돼야 한다. 또 람 총서기는 3월 발표한 글에서 이미 세계적, 지역적 영향력을 가진 민간기업집단 형성을 주장했다. 이는 민간기업 중심으로 한국의 재벌(기업집단)과 같은 베트남판 내셔널 챔피언을 만든다는 것이다. 베트남은 2000년대 초반 국영기업 중심으로 성장의 추진체로서 기업집단을 창설하려고 시도했으나 부정부패로 인해 실패했다. 이제는 그 역할을 민간기업에게 맡긴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당근도 제시하기로 했는데, 남북고속철도 건설 등 기존에는 국영기업만 참여했던 국가 인프라 사업에 민간기업의 참여를 허용하기로 했다.
이미 베트남에는 국제적인 경쟁력을 보유한 다수의 민간 기업집단이 있다. 최근 경제지 포춘(Fortune)이 조사한 동남아 500대 기업에서 베트남은 76개로 지난해 70개에 비해 6개사가 늘었다. 다른 동남아 국가에 비해 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셈이다. 자체 브랜드로 전기차 부문에 진출한 빈그룹(Vingroup), 동남아 최대 철강회사로 성장한 호아팟 그룹(Hoa Phat Group), 역시 동남아 최대의 IT 서비스 공급자인 FPT 등은 국제무대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장차 내셔널 챔피언이 될 후보군인 민간기업집단들은 두가지 약점을 갖고 있다.
첫째, 기업가 정신에 기반하기보다 관계지향으로 성장했다. 매출기준 50대 민간기업을 보면 국내에서 성장한 기업이 46%이다. 이들은 주로 지방정부의 지원을 받아 성장했다. 30%는 냉전체제 속에서 구소련블록, 즉 동유럽에서 유학을 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현지에서 자본을 축적해 귀국해서 사업을 일으켰다. 한국의 삼성그룹이란 평가를 듣는 빈그룹의 창업주도 우크라이나에서 국수를 팔아 자본을 축적했다. 이들은 자본, 네트워크, 그리고 냉전 시대 동유럽권에서 유학한 베트남 고위직들과의 관계를 형성하면서 귀국 후 사업을 할 때 이를 활용했다. 나머지 24%는 국영기업에서 민영화된 기업들이다. 이들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성장해 왔다.
둘째, 이들은 금융, 부동산개발 등 비제조업 분야에 더 많이 진출하고 있다. 50대 기업 중에서는 은행이 28%를 차지하고 있는데, 경제발전 초기에 자금 수요가 많기 때문에 금융업이 빨라 성장할 수 있지만, 국민경제를 대표하는 기업들이 은행이라는 사실은 문제가 있다. 더구나 50대 기업집단 중에 은행이 14개인데 이 중 11개가 동유럽에서 귀국한 사람들이 설립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50대 기업 중 44%는 부동산과 자원개발에 진출하고 있다, 제조업은 22%가 진출했는데, 제조업 진출 기업들도 첨단 기술산업이라기 보다는 철강, 섬유, 식품가공 등 전통부문에 진출하고 있다. 전기차로 알려진 빈그룹도 매출의 약 60%가 부동산 개발에서 나오고 있다.
외국인직접투자의 모순
베트남이 민간부문 개발을 서두르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외자기업 의존도를 줄이자는 것이다. 2030년까지 민간기업의 GDP 비중을 55~58%로 올린다는 것은 외국인직접투자 비중의 감소를 의미한다.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 초기에는 기술, 자본, 해외시장에 대한 정보 부족, 경영노하우의 부족 때문에 외국인 투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베트남의 경우 사회주의 생산방식에서 시장경제 기능을 도입해야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그렇지만 경제가 이륙단계를 벗어나면 계속 외자기업에 의지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2024년 현재 베트남 수출입에서 차지하는 외자기업의 비중은 각각 71.7%와 63.2%에 이른다. 공산품 수출입의 경우 외자기업이 압도적이다.
외자기업은 기술이전에 인색하고, 현지화에 소극적이기 때문에 베트남이 글로벌 밸류체인에 참여한다고 해도, 저부가가치 조립 부문에서 주로 활동한다. 외자기업이 베트남에서 R&D 센터를 운영하는 경우는 삼성과 LG정도에 불과하다, 베트남의 연구개발(R&D) 지출은 2021년 GDP의 0.42%에 불과하다.
베트남 정부는 외국 기업과 국내 기업의 합작 투자를 통해 외자기업의 기술과 경영노하우의 파급효과를 기대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합작기업의 비율은 오히려 줄어들고 100% 외자 소유 투자가 늘어나고 현재는 약 80%가 외자 단독투자로 알려져 있다. 그 결과 기술이 베트남의 산업조직으로 파급되지 않고, 외자기업 안에서만 머무는 기술치외권이 생겨난 것이다.
베트남이 수출입을 통해 글로벌 밸류 체인에 참여한다고는 하지만 이는 외자기업에게 저렴한 노동력을 제공하는데 불과하다. 국내 기업의 기술 역량과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개혁이 없는 한 베트남은 장기적인 외국인 직접투자 의존의 위험에 처해 있으며, 노동력의 비교 우위가 약화되면서 경제는 취약해질 것이다. 바로 이 점을 베트남 정부는 잘 알고 있다. 실제로 민간기업의 육성이 외자기업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민간부문 육성계획이 베트남의 현재 수준에 비해 지나치게 야심적이다. 민간기업의 GDP나 재정수입 기여는 목표달성이 어려울 수 있다.
글로벌 밸류체인에 참여하는 20대 기업, 즉 내셔널 챔피언은 주로 제조업체가 되어야 하지만 현재 잠재적 후보군인 대기업들이 은행 등 서비스 업체가 많고, 제조업체들은 주로 전통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베트남이 1억 이상의 인구를 먹여 살려야 한다는 점에서 수출을 계속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글로벌 밸류체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제조업체의 육성이 필요하다. 결국 베트남은 불가피하지만 외국인 직접투자를 계속 유치하지 않을 수 없다.
또 람 총서기는 지난달 30일 베트남을 방문한 인도의 아다니 그룹 과탐 아다니(Gautam Adani)회장을 만나 베트남은 언제나 외국기업의 투자를 환영한다고 말했다. 아다니 회장도 장기적으로 베트남에 10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그래도 베트남은 보통수준의 기술을 가진 기업의 투자보다는 첨단기술을 가진 다국적기업의 대규모 투자를 원할 것이다.
또 람 총서기는 아마도 한국에서도 우리 기업들에게 첨단 기술의 대형투자를 요청할 가능성이 크다. 베트남이 한국의 기업집단을 본받아 민간기업집단을 육성하려고 하는 만큼, 경험 전수 등 우리 기업의 협력은 양국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