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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는 ‘라이즈’ 할 수 있을까

2026-05-22 12:59:58 게재

“앵커(anchor)가 되고 싶습니다.” 학생들이 쓴 자기소개서에 단골로 등장하는 희망진로다. 저널리즘 전공 대학생은 뉴스 프로그램 진행자인 앵커를 매력적인 직업으로 꼽는다. 매 학기 받는 학생의 자기소개서에 앵커가 한번도 빠진 적이 없다. 영어로 앵커는 ‘배의 닻’이다. 라틴어 ‘앙코라(anchora)’와 그리스어 ‘앙퀴라(ankyra)’에서 따왔다. ‘붙잡아 두다’라거나 ‘중심을 잡다’라는 의미가 있다. 닻처럼 중심을 잡고 전체 보도 흐름을 이끄는 사람을 앵커라고 하는 까닭이다.

앵커가 갑자기 대학가에 등장한 건 의외다. 교육부는 재정지원 사업명을 영어로 짓는 습관이 있다. 프라임(Prime), 링크(Link), 에이스(ACE), 누리(NURI), 코어(CORE), 월드 클래스 유니버시티(WCU), 휴스(Huss), 휴먼코리아(CK), 브레인 코리아(BK), 스터디 코리아 300K, 글로컬(Glocal), 라이즈(RISE) 등 헤아릴 수 없다.

교육부가 입에 붙지 않는 ‘고상한 용어’를 즐기는 이유는 뭘까. 현학적으로 보이고 싶어서일까. 어쨌든 국민은 BK 정도를 기억하지 않을까 싶다. BK는 1999년 김대중정부에서 시작해 현재의 이재명정부까지 27년간 이어진 고등교육 사업이다. 유일하게 정권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7년 주기 사업으로 현재 4단계가 진행 중이다. BK는 연구중심 대학의 핵심지표로 인식된다. 대학원의 연구경쟁력을 높이고 인재 양성에 큰 역할을 했다.

대학 재정사업 단명·변형의 흑역사 반복

BK 외 고등교육 사업은 단명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간판을 내리거나 변형됐다. 앵커(ANCHOR, 지역성장 인재양성체계)도 그중 하나다. 교육부가 지난 4월 발표했다. 윤석열 정부가 도입한 라이즈(RISE,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의 성형수술이다.

교육부에 영어 약자를 문의했다. “약자는 없고요, 대학이 지역 성장의 견고한 닻이 돼 인재 유출을 막고 지역 정착을 이끄는 인재 양성 체제를 의미한다고 이해해 주세요.” 그런 깊은 뜻을 국민이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라이즈(Regional Innovation System and Education)는 그나마 약어라도 있었다. ‘뜬다’라는 의미가 있어 ‘지방대학이 뜬다’라고 설명할 수 있었다.

근데 이상하다. 명칭의 ‘지역혁신중심’과 ‘지역성장 인재양성’이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애초 라이즈 사업은 교육부의 대학지원 행·재정 권한을 지방정부로 넘겨 지자체와 대학이 상생의 시너지를 내게하겠다는 취지였다.

정작 현장은 달랐다. 자치단체는 고등교육 이해도가 낮고, 선출직 단체장은 대학을 ‘을’로 여겼다. 총장들이 머리를 조아리는 상황이 연출됐다. 단점 보완이 급선무인데 교육부는 간판부터 바꿨다. 대학으로선 행정만 복잡해졌다.

사실 지방이 어려운 이유는 명확하다. 바로 일자리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임금격차는 2015년 8.5%에서 2023년 14.5%로 증가했다(국가데이터처). 부산의 청년 유출 원인의 72.5%는 일자리 부족이다(부산발전연구원). 그러니 지방 대학은 더 어려워진다. 중앙정부도, 지방정부도 역할을 못한 탓이다. 그런데 고등교육 돈주머니를 지방정부에 나눠준다고 일자리와 인재 양성이 탄력을 받을까. 더구나 6·3 지방선거 이후 단체장이 상당수 바뀐다.

어수선한 가운데 교육부는 ‘평가’ 카드를 내밀었다. 전국 광역단체의 1년 성과를 평가해 4000억원을 차등 배분하겠단다. 각 지자체가 6월까지 자체평가하고 교육부가 7~9월 연차 점검과 중간·종합평가를 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평가는 필수다. 세금 낭비도 잡아야 한다.

한데 방식이 어설프다. 마치 부모가 자녀에게 용돈 1만원을 주고 점검하는 식이다. 교통비 2000원, 점심값 5000원, 커피값 3000원으로 용도를 지정하고 제대로 썼는지 점검하면 자녀는 숨이 막힐 것이다. 대학을 옴짝달싹 못하게 한 교육부가 지자체도 그렇게 하겠단다.

BK처럼 일관성·연속성 갖춰야 신뢰얻어

뜬금없이 앵커를 캠퍼스로 끌어들인 교육부는 재정사업 방식을 바꿔야 한다. 턴키 방식, 긴 호흡의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대학은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렵다. 일정 기간 자율에 맡기고 차후 성과를 추상같이 따져야 한다. BK사업이 성과를 낸 가장 큰 요인 아닌가.

앵커가 지역의 닻이 되려면 정책의 지속성·일관성·효율성이 필수조건이다. 그래야 앵커가 라이즈 할 수 있지 않을까.

양영유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