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기업분쟁의 뇌관’ 가처분제도 재정비를

2026-05-22 12:59:58 게재

본안 판결 전에 긴급하게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가처분 제도가 근래 들어 기업 분쟁의 뇌관이 되고 있다. 신주발행을 막는 가처분, 특정 주주의 의결권 행사 금지 가처분, 특정 이사의 직무를 멈추게 하는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주주제안을 강제 상정하는 의안 상정 가처분 등 기업 지배구조와 경영권 향방을 흔드는 가처분은 판사가 어느 한쪽 손을 들어주는 순간 주총 결과와 경영권 구도가 바뀌게 된다.

가처분은 권리관계를 임시로 정하는 절차지만 본안의 핵심 쟁점을 심리하는 경우도 많아 사실상 최종 결론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고려아연 제3자유상증자에 대한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LG화학과 헤지펀드 간 의안 상정 다툼, HD현대중공업이 제기한 영업비밀침해금지 가처분 등 이목이 쏠린 사건이 가처분 법정에서 1차 결정이 났다.

임시 지위를 결정하는 가처분 신청은 매년 늘고 있다. 법원에 접수되는 가처분 사건은 2022년 4만2158건에서 2024년 4만5350건으로 증가했다. 이중 회사 관련 사건은 2022년 739건, 2024년 785건이다.

법원 안에서는 “가처분이 분쟁의 스파링장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가처분 사건을 담당하는 한 부장판사는 “예전 가압류·가처분은 돈을 받을 권리를 보전받기 위한 절차 성격이 강했지만 지금은 본안 전에 승패를 미리 시험해 보는 단계가 됐다”고 말한다.

가처분 신청을 악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상장폐지 효력정지 가처분이 그 하나다. 상장폐지가 결정된 기업은 그 즉시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해 시간을 끈다. 가처분이 인용되면 1심 판결이 나올 때까지 정리매매 등의 퇴출 절차가 중지된다. 해당 기업은 매출 증대 가능성을 피력하거나 감사보고서를 다시 제출한다며 고의로 심리를 지연시킨다.

가처분이 상대를 압박하는 수단으로도 활용된다. 처분 결정 이후에는 제소명령 신청, 이의 및 취소 신청으로 결정의 효력을 다시 다툰다.

가처분 사건이 늘면서 법원은 인력난을 호소하고 있다. 사건 수는 증가하는데 재판부와 법관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상장폐지 가처분 사건을 전담하는 서울남부지방법원은 법원행정처에 판사 증원을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법원에 따르면 상장폐지 중지 가처분 신청은 2025년 전년 대비 30% 증가했다고 한다.

가처분 결과가 당사자 쌍방의 권리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한 만큼 신속성 못지않게 신중한 심리가 요구된다. 하지만 현재의 인력 구성으로는 이를 감당하기 버겁다는 지적이다.

증가하는 가처분 신청을 적절히 조절하고, 적정 심리를 할 수 있도록 재판부 확대, 집중 심리, 남용 방지 장치 마련 등 제도적 정비가 시급하다.

박광철 기획특집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