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파 득세하는 여야…갈수록 멀어지는 협치
정청래 “국힘 10번, 100번 해산시켜야” … 야당 대표와 악수 안 해
김문수 “반이재명 독재 투쟁”, 장동혁 “민주당 해산, 이재명 탄핵”
여야 강경파 대표 나오면 윤석열정부 ‘정치 빙하기’ 되풀이 가능성
지난 18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 참석한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송언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바로 옆에 앉았지만 인사도, 악수도 건네지 않았다. “내란세력과 악수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발언을 고수한 것이다.
정 대표는 송 비대위원장 면전에서 읽은 추도사를 통해 “오늘 당신(김대중)이었다면 진정한 용서는 ‘완전한 내란세력 척결’과 같은 말이라고 말하셨을 것이라 확신한다”고 날을 세웠다.
여권에서 대표적 강경파로 꼽히는 정 대표가 취임한 이후 대야 관계는 끝 모를 빙하기를 맞고 있다. 정 대표는 “지금은 내란과의 전쟁 중이며, 여야 개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과와 반성이 먼저 있지 않고서는 그들과 악수하지 않을 것” “국민의힘은 10번, 100번 정당 해산시켜야 한다”며 국민의힘을 겨냥한 초강경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정 대표는 쟁점법안에 대해서도 국민의힘과의 추가 협의 없이 처리하겠다는 의지다. 21~25일 본회의를 열어 방송 2법과 노란봉투법, 2차 상법 개정안을 처리할 계획이다.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로 맞선다는 입장이지만 의석수 부족으로 이들 법안을 막지는 못할 전망이다.
22일 전당대회를 앞둔 국민의힘에서도 정 대표 못지않은 강경파 대표가 유력하다. 반탄파(탄핵 반대)로 꼽히는 김문수 전 노동부장관이나 장동혁 의원이 새 대표로 선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다.
김 전 장관은 “이재명 독재를 반대하는 모든 국민과 손을 잡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반이재명 독재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민주당 당 대표로 뽑힌 정청래는 미국 대사관저 담을 넘고 침입해 폭발물을 던지고 시너로 불을 지른 극좌 테러리스트 아닌가”라며 이 대통령·정 대표와 대화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장 의원은 한술 더 떠 “민주당을 해산하고, 민주당을 앞세워 헌정 질서를 파괴하고 있는 이재명을 반드시 탄핵 심판대에 서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통령 탄핵과 민주당 해산을 언급한 것이다.
이들 중에서 당 대표가 나온다면 협치 대신 전쟁을 택할 가능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여야 모두에서 강경파가 득세하는 기류가 형성되면서, 윤석열정부 3년 동안 지루하게 이어졌던 여야 갈등이 이재명정부에서도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윤 전 대통령은 취임 이후 야당과 일절 대화를 거부하다가 2024년 4월 총선에서 참패한 이후에야 제1야당 대표를 만났다. 취임 720일 만이었다. 이후에도 윤 전 대통령은 여야 대치의 책임을 야당에게 돌리며 소통을 외면하다가 12.3 계엄을 저질렀다.
윤 전 대통령과 달리 불과 취임 18일 만에 야당 지도부를 만난 이 대통령은 협치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취임 한 달 회견에서 “야당 국회의원들도 국민 선택을 받은 대표이기 때문에 충분히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야당 주장이) 타당하고 합리적 근거가 있는 거라면 당연히 그 지적을 수용해서 교정해야 한다”며 “(야당 의원들과) 자주 만나 뵐 생각”이라고 말했다. 적극적인 대야 소통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읽혔다.
하지만 여야에서 강경파가 득세하면서 이 대통령의 협치 의지도 퇴색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국민의힘 당직자는 19일 “여당 대표에 강경파 정청래가 당선될 때부터 협치는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야당 대표와 악수조차 거부하고 자기들 마음대로 법안을 처리하는 걸 보니 이재명정부에서 협치는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당직자는 “국민의힘에서도 강경파 대표가 나오면 당장 ‘광화문으로 나가자’ ‘이재명 탄핵시키자’는 목소리가 쏟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