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미 ‘안보청구서’ 의연하게 맞서라

2025-08-20 13:00:03 게재

이재명 대통령이 25일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첫 한미 정상회담을 갖는다. 트럼프행정부 등장 후 국제질서가 급속히 재편돼가는 가운데 이뤄지는 이번 회담은 향후 한미관계는 물론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 외교의 위상을 결정지을 중대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회담에서는 한미 간에 이미 큰 틀에서 얼개를 잡은 관세협상을 마무리 짓는 문제와 함께 한반도평화 문제, 국방비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문제 등을 다룰 전망이다. 또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와 이와 연계돼 있는 한미동맹의 현대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등이 의제로 오를 가능성이 크다.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한미동맹의 현대화 무비판적 수용 경계해야

한미 정상회담 의제 중 안보문제와 관련한 대처방안을 논의하자면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이 들이밀 것으로 예상되는 ‘안보청구서’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대처할 것인가에 집중해야 한다. 국내총생산(GDP)의 2.6% 수준인 국방비가 일본이나 독일 이탈리아 등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더구나 주한미군 주둔비 분담금인 방위비를 현재보다 10배나 더 내라는 것은 수십 년 동맹국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조차 갖추지 않은 막무가내 횡포다.

미국도 이를 잘 아는지라 주한미군 감축카드 등을 만지작거리며 우리의 선제 양보를 겁박할 가능성이 크다. 예전에는 이런 전략이 큰 힘을 발휘했었다. 지레 겁을 먹고 위축돼 당연히 해야 할 말조차 못하고 불리한 조건을 받아들이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국제정세가 변했고 우리의 국력이 커졌다.

주한미군의 역할과 성격부터 크게 달라졌다. 과거 주한미군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억지하는 것이 주임무였으나 오늘날 주한미군은 북한의 위협보다 오히려 미국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을 견제하는 역할이 더 크다. 그렇다면 그에 드는 비용도 합리적으로 분담하는 것이 논리에 맞지 않는가. 이 문제는 주한미군을 붙박이로 둘 게 아니라 미국의 군사적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이동시키며 활용하겠다는 미 세계전략의 핵심인 ‘전략적 유연성’ 및 이를 바탕 삼는 ‘한미동맹의 현대화’, 그리고 직접적으로 연계되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문제와 직결된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무비판적으로 곧이곧대로 수용하면 대만위기 등 미중간 충돌이 발생할 때 우리는 원하지 않는 전쟁에 휩쓸려 들어갈 위험성을 안게 된다. 우리의 주체적 결정을 조건으로 거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한미동맹 현대화’로 포장된 이 용어는 달라진 국제정세와 복합적 안보위협에 걸맞도록 한미가 동맹의 역할을 업그레이드한다는 의미로 들려 얼핏 그럴싸해 보인다. 하지만 속내가 현재의 불평등한 한미동맹 구조를 더욱 심화시키는 뜻이라면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 이 대통령은 ‘임기내 전작권 환수’를 목표로 내 걸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듯이 스스로 힘을 키우지 않으면 ‘강요된 불행’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노무현 대통령 때 한미가 합의한 내용대로라면 2012년에 이미 넘어와 ‘자주국방’이 상당한 궤도에 올랐을 터이다. 경제력 세계 10위권, 군사력 5위, 방산수출국 3위란 막강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데 전작권 전환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차제에 국방비 인상요구에 대한 맞불로 투명성을 약속하며 핵폐기물 재처리를 할 수 있도록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일본에 이미 1988년 핵폐기물 재처리 권한을 부여하는 미일원자력협정 체결을 허용했었다.

주한미군 감축카드 위협에 국민을 믿고 당당히 대처하자

국익을 지키기 위해선 미국의 불합리한 협상 강요에 당당히 맞서 논리적으로 우리 주장을 설파하고 설득해야 한다. 주한미군 감축 위협엔 국민을 믿고 당당하고 의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국민의 지지가 뒷받침돼야 한다. 그리되면 미국도 함부로 ‘자충수’를 두지 못한다.

핵을 가진 북한의 존재는 우리 안보에 위협이지만,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평화를 이루고 노벨평화상을 갈망하는 트럼프에게 통상협상에서 성공을 거두었던 ‘마스가(MASGA)전략’처럼 정교한 한반도 평화플랜을 제시하며 적극 설득할 필요가 있다. “진짜 유능한 안보는 평화를 지키는 것”이고 “싸워서 이기는 것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낫고, 싸울 필요 없는 평화상태가 가장 확실한 안보상태”라는 이재명 대통령의 지론이 현실화될 수 있도록 유도해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통 큰 전략이 필요하다.

이원섭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