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위반에 경고없이 즉각수사·과태료
현재는 시정지시만 이행하면 돼 안전의무 소홀 많아
이재명 대통령 지시 … 노동부 규정 개정 작업 착수
#. 지난 21일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전북 전주시 한 종이제품 제조업 사업장을 불시 점검해 안전조치 의무 위반사항을 확인하고 시정지시를 내렸다. 이 사업장에서는 2023년부터 현재까지 화재·폭발, 끼임, 부딪힘 등 9건의 산업재해가 발생했다. 이날 점검 결과에서도 회전체 방호덮개 미설치, 안전난간 부적합 등 다수의 안전조치 의무 위반사항이 확인됐지만 규정에 따라 시정지시를 내리는 데 그쳤다.
난간·방호시설 설치 등 안전·보건 의무에 소홀하다 적발된 사업장에 대해 산업안전감독관이 시정지시를 내리는 장면을 더 이상 보기 어렵게 됐다. 정부가 이르면 10월부터 안전 의무 위반 사업장에 대해 별도 시정 기회를 주지 않고 즉시 수사에 착수하거나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현재는 안전 의무 위반 사항이 적발돼도 10일간 시정지시를 내리고 사업장이 이행하지 않는 경우에만 수사에 착수하거나 과태료를 부과한다. 이 때문에 노동계 등은 위반 사항이 드러나도 시정 지시만 이행하면 되므로 사업주들이 안전 의무에 소홀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27일 정부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산업안전감독에서 적발된 안전 의무 위반 사업장에 대한 조치와 관련규정 개정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번 조치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 “노동부가 (안전 의무 위반 사항을) 단속해도 시정하면 아무런 불이익이 없으니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것”이라며 “지키는 사람만 손해고, 안 지키면 이익이니 문제인 것”이라고 지적한 데 따른 것이다.
특히 이 대통령은 “사용자 입장에서는 제재가 없는 것”이라면서 “사고가 나면 심각해지지만, 대부분 사고가 나지 않으니깐 돈을 버는 것이다. 여기에 구멍이 있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제38조(안전조치)는 ‘사업주는 굴착, 벌목, 운송 등 작업을 할 때 위험으로 인한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조치해야 한다’고, 같은 법 제39조(보건조치)는 ‘사업주는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간 노동부 소속 산업안전감독관은 이런 안전·보건 의무 위반 사항을 적발해도 시정지시부터 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이는 10일 이내 시정 기간을 부여하도록 한 근로감독관 집무 규정 제16조에 따른 것이다.
사업주 입장에서는 안전 의무를 지키지 않다가 적발되고 나서 시정지시에 따르면 처벌을 면할 수 있기 때문에 선제적으로 안전 의무를 지킬 유인이 없었다.
권창준 고용노동부 차관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그동안 시정지시가 중심이다 보니 시정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많았던 것 같다”면서 “안전 의무 위반에 사법 조치를 원칙으로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노동부는 다음 달까지 계도기간을 부여할 계획이다. 계도기간에 현장 의견도 들을 예정이다. 노동부는 그사이 근로감독관 집무 규정을 고쳐 계도기간이 끝나면 즉각 수사나 과태료 처분 등 사법 조치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특히 노동부는 현재 최소 5만원에서 5000만원까지 수준인 과태료를 높이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한편 정부가 ‘산재와 전쟁’을 선언한 가운데 공공부문 산재사망사고가 반복되고 있어 대책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찰과 서울 강서소방서 등에 따르면 지난 25일 오전 8시 57분쯤 “맨홀 작업 중 한 명이 빠졌다”는 신고를 받고 소방당국이 인원 59명과 장비 14대를 현장에 투입해 구조작업을 벌였다. 하지만 같은 날 오전 9시 42분쯤 약 1㎞ 떨어진 가양빗물펌프장 인근에서 심정지 상태의 40대 남성 A씨가 발견됐다.
경찰과 노동부 등은 이날 내린 비로 물이 불어나 급류에 A씨가 휩쓸렸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다른 작업자 4명 등을 상대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안전 등을 관리하는 감리 담당자는 현장에 없었고, 안전관리자를 겸직하는 업체의 현장 대리인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가 발생한 작업은 공공기관인 강서구청이 발주한 하수관로 보수 작업이었다.
이번 사고 외에도 최근 공공분야 산재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2명이 사망한 청도 경부선 철도사고를 비롯해 인천환경공단이 발주한 맨홀 사망사고 등이 대표적인 공공부문 산재사고다.
국회예산정책처의 ‘2025 대한민국 공공기관’ 자료를 보면 최근 5년간 공기업·준정부기관의 산재로 인한 사망자는 총 155명이다.
장세풍·한남진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