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수찬 칼럼
경제학의 시대는 끝났는가
지난주 서울에서 계량경제학회 세계대회(ESWC)가 개최됐다. 단일행사로는 경제학계의 가장 큰 행사로서 5년마다 열린다.
필자에게는 35년 전인 1990년 바르셀로나 대회가 가장 인상깊었다. 결혼 후 집사람의 미국입국 허가를 기다리는 동안 바르셀로나의 경제분석연구소에서 안식년을 보내고 있을 때 대회가 열렸고, 당시 필자가 알고 지내던 경제학자들이 거의 참석해 특별한 기억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번 서울대회의 준비와 조직에 참여한 국내외 경제학자들은 몇 년 전부터 수고를 많이 했을 것이다. 성공적 대회개최를 경하한다.
ESWC는 경제학자들의 학술대회다. 경제에 대한 얘기보다는 경제학에 대한 얘기를 더 많이 듣는다. 이번 대회에서 발표된 주요 논문들 중에도 경제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 보다는 경제를 이해하는 데 어떤 수단을 사용하는 게 좋은가를 분석하는 논문들이 더 많았다. 최근 경제학이 현실경제로부터 유리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경제학이 경제의 흐름에 길잡이 역할을 하지 못하고 뒷북만 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게 현실이다.
경제학, 현실경제로부터 유리됐다는 비판
사실 경제를 앞에서 이끌고 나가는 주역은 기업인들이고 이들이 활동할 무대를 열어주는 것은 정치다. 정치가 시장의 경계를 정하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혁신이 세상을 바꾼다. 이번 서울 ESWC에서 무대에 선 지난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제임스 로빈슨 교수도 경제발전의 사회체제적 요인을 이야기하면서 경제성장에 몰두하였던 박정희 대통령과 지위상승 기회를 붙잡아 성공을 이루어낸 현대그룹 창업자 정주영 회장을 거론하였다. 로빈슨 교수는 경제발전에서 사회체제가 결정 요인이며 문화적 배경은 결정 요인이 아니라고 했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개신교는 경제발전에 기여하고, 유교는 기여하지 못한다고 봤는데 이는 오류였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이슈가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예를들어 아직까지 이슬람권에서 괄목할 경제발전을 이룬 나라는 없다. 왜 그럴까. 종교가 경제발전과 정말 무관한 것일까. 물론 종교 자체보다는 종교에서 파생된 정치체제가 경제에 영향을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역사적으로 보면 경제학이 현실경제와 항상 유리되었던 것은 아니다. 백년 전에는 경제학이 세상을 풍미했다. 20세기의 가장 큰 사건인 공산주의 혁명의 토대를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제공했다. 노동자가 생산한 가치를 자본가가 착취한 것이 이윤이라는 잉여가치설이 자본론의 핵심 메시지다. 혁명가들도 공산주의 추종자들도 세권으로 되어 있고 2000페이지 달하는 난해한 자본론을 몇 페이지는 읽어봤을 것이다.
세계경제가 1930년대 대공황에서 탈출하던 시기, 그리고 제2차세계대전 이후 각국의 고도성장 시기에 정부재정이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그 이론적 토대는 존 메이너드 케인즈의 경제학이었다. 이후 밀튼 프리드먼 등 시카고학파 경제학자들은 경제의 지나친 정부의존으로 인한 부작용을 지적하였으며, 이는 1980년대부터 정책에 반영되기 시작하였다.
정보통신혁명이 시작된 1980년대 중반부터 세계금융위기가 발발한 2000년대 중반까지 약 30년간 지속된 대안정기(Great Moderation Period)에는 시카고학파를 포함한 신고전파 경제학이 그 이념적 바탕이 되었다. 그 이후 경제학이 경제운용의 방향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헤메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지금은 작고한 한 물리학자로부터 물리학의 시대는 끝났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분의 주장은 음악이 베토벤 시대에 정점을 찍었듯이 물리학은 아인슈타인 시대에 정점을 찍었다는 것이었다. 지나치게 과장되고 단순화된 주장이긴 하지만 현하 세계의 혁신을 주도하는 게 과학보다 기술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세상은 과학이 추구하는 ‘왜’보다 기술이 추구하는 ‘어떻게’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호기심보다 효용이 앞서고 있다. 일기예보를 예로 들면 과학적 설명은 할 수 없지만 슈퍼컴퓨터로 데이터를 돌려보면 상당히 정확한 예측이 가능하다. 인공지능 시대가 되면서 이런 추세는 더 강화되었다.
경제학의 시대도 끝났는가. 경제학에는 과학적 측면과 기술적 측면이 둘다 있다. 이론경제학의 시대가 끝났다는 주장이 맞다 하더라도 경제정책은 항상 필요하다. 경제정책이 잘못되면 경제가 엉망이 된다.
이론경제학 끝났어도 경제정책은 필요
필자가 이번 서울 ESWC에서 발표한 논문은 공공재 재원마련을 위한 세금부과를 사회구성원들 간의 협상으로 결정한다면 어떤 세금부과 원칙들이 성립할지 들여다 본 논문이다. 분석의 틀은 영화 ‘뷰티플마인드’로 잘 알려진 수학천재 존 내쉬의 협상이론을 사용했다. 수학적 모델을 사용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서론과 결론만 읽을 수 있다. 필자의 논문도 경제학과 현실세계의 거리를 더 멀어지게 하는데 일조하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