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 “수사전문성·양형기준 개선 시급”
수사지연 심각, 높은 무죄율·집행유예율 “법 실효성 떨어뜨려” … 50인 이상 사업장 큰 변화 없어
2022년 1월 27일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3년이 지났지만 입법 취지대로 산업재해 예방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28일 국회입법조사처(입조처)가 발표한 중대재해법 첫 입법영향 분석에 따르면 법 시행 이후 산재 사망사고는 줄지 않았고 사건처리 지연과 낮은 처벌수위가 법의 실효성을 떨어뜨리는 핵심요인으로 드러났다.
입조처 분석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사업장 사망사고 전체 사건 1252건 가운데 73%(917건)가 여전히 ‘수사 중’ 상태다. 사건처리에 평균 6개월 이상이 걸리는 경우가 고용노동부와 검찰이 각각 50.0%, 56.8%로 절반을 넘었다.
무죄율(10.7%)과 집행유예율(85.7%)은 일반 형사사건보다 각각 3배, 2.3배나 높았다. 유죄판결을 받은 49건 가운데 징역형이 선고된 47건의 형량은 최소 6개월에서 최대 2년으로 평균 ‘1년 1개월’로 법정 하한선(1년 이상)에 근접하거나 미치지 못했다.
중대재해법 위반으로 벌금이 부과된 50개 법인 중에서 극히 예외적인 사례로 20억원을 부과받은 1건을 제외하면 평균 7280만원 수준에 그쳤다.
산재예방 효과도 뚜렷하지 않았다. 법 적용 대상인 50인 이상 사업장에서는 사망자 수 변화가 없었고 전체 재해자 수도 여전히 늘고 있다. 다만 5인 이상 49인 이하 사업장에서는 사망률이 다소 떨어졌다. 하지만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이 아닌 재해율과 사망률이 가장 높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개선 효과가 전혀 없었다.
작업현장의 실질적 변화도 미미하다.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새로운 안전시스템 도입이나 작업방식 혁신은 드물었고 노동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개선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긍정적인 부분은 경영진의 인식이 달라지고 안전보건관리체계가 부분적으로 강화됐다는 점이다. 하지만 노동강도와 위험 노출은 여전히 그대로였다는 분석이다.
입조처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4가지 개선방향을 제시했다.
먼저 중대재해법 시행령과 관련 규정의 정비다. 입조처는 책임자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은 법 집행자들의 의지 부족과 그에 따른 규정의 미비라고 지적했다. 현행 법은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및 이행조치 규정이 있지만 불명확하고 구체적이지 않다고 강조했다.
둘째, 수사 전문성 강화다. 현재 중대재해 수사는 노동부가 주축이지만 검찰과 경찰의 협력이 원활하지 않아 수사지연이 발생하고 있다. 입조처는 ‘중대재해 합동수사단(가칭)’ 설치를 통해 기관 간 공조를 제도화하고 산업안전보건 근로감독관의 전문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특히 사건처리의 표준화, 신속한 증거 확보를 위한 법적·기술적 지침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셋째, 경제적 제재와 인센티브의 병행이다. 현재 기업은 서류 정비와 법적 대응에 집중하면서 실질적인 안전관리에는 소극적이라는 평가다. 이에 따라 매출액·이익 연동 벌금제, 재산비례 벌금제, 사고이력 가중 벌금제, 이익환수형 과징금제 등 경제적 부담을 강화하는 방안이 거론됐다. 자율적으로 예방체계를 구축한 기업에는 산재보험료 차등제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제도도 병행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넷째, 합리적 양형기준 마련이다. 입조처 조사결과에 따르면 평균 벌금과 형량은 법정형과 현실 사이에 뚜렷한 괴리가 존재한다. 중대재해법은 단순한 법적인 문제가 아닌 산재를 줄이기 위한 안전에 투자하는 비용과 시간도 포함돼야 하고 이에 따른 합리적인 양형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것이다.
이관후 국회입법조사처장은 “산업현장에서 일하다가 사람이 다치고 죽어도 평균 벌금이 7000만원대에 불과한 현실은 법의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며 “조속한 사건처리와 실효적 처벌을 위해 합동수사단 설치 등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