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투자기업 경영 직접 겨냥
7년 멈춘 주주대표소송 재가동 만지작 … 의결권 한계 넘고 ‘행동하는 주주’ 전환
국민연금이 기업 경영진을 상대로 소송까지 나설 수 있는 단계에 들어섰다. 7년간 멈춰 있던 주주대표소송 카드를 다시 꺼내 들면서, 의결권 행사에 머물던 기존 역할을 넘어 경영 책임을 직접 묻는 ‘행동하는 주주’로의 전환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평가다.
14일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최근 주주대표소송 제기 기준과 절차를 정비하고 실제 소송에 나설 수 있는 체계를 구축했다. 2019년 제도 도입 이후 한 차례도 실행되지 않았던 소송이 현실화 단계에 들어섰다. 시장에서는 대형 상장사 경영진이 소송 대상에 오를 가능성도 거론된다.
주주대표소송은 회사 이사가 고의나 과실로 회사에 손해를 끼쳤음에도 이를 방치할 경우 주주가 회사를 대신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제도다. 국민연금이 이를 활용할 경우 단순 의결권을 넘어 경영진 책임을 직접 묻는 강력한 수단으로 작동할 수 있다.
이번 변화의 핵심은 실행 구조 개편이다. 그동안 소송 제기 여부를 둘러싸고 기금운용본부와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간 역할이 불명확해 판단이 지연돼 왔다. 국민연금은 최근 기금운용위원회를 통해 소송 결정 권한을 기금운용본부 중심으로 일원화했다. 절차를 단순화해 실행력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소송 대상도 넓어졌다. 기존에는 횡령·배임 등 위법 행위 중심이었지만 앞으로는 배당 정책이나 산업 안전 등 경영 전반으로 확대된다. 기업과의 비공개 대화 이후에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했다. 사실상 ‘대화 → 압박 → 소송’으로 이어지는 단계적 견제 구조가 마련된 셈이다.
국민연금의 이 같은 변화는 투자 전략 전환과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 비중을 20% 초반 수준으로 낮추는 대신 해외 투자를 확대해 왔지만, 국내 투자 규모는 약 330조원으로 사상 최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비중은 줄었지만 금액이 늘어난 구조가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대규모 지분을 유지하면서도 매도가 쉽지 않은 구조는, 단순 의결권 행사만으로는 투자 성과를 방어하기 어렵다는 판단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투자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시장 전반에 분산 투자하는 구조였다면, 최근에는 대형 우량주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며 개별 기업에 대한 영향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수동적 투자에서 능동적 주주로의 전환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대규모 지분을 보유한 기업의 경우 단기간 내 매각이 쉽지 않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다. 시장 충격을 고려하면 ‘매도’보다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방식이 현실적인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분 구조 역시 제약 요인으로 꼽힌다. 국민연금의 주요 상장사 지분율은 대체로 5~10% 수준으로, 단독으로 의결 결과를 뒤집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의결권만으로는 경영진 책임을 묻는 데 한계가 있다는 판단이 주주대표소송 재가동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재계에서는 과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이후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책임 논쟁이 본격화됐다는 점도 이번 변화의 배경으로 꼽는다. 단순 반대 의결권만으로는 주주가치 훼손 문제를 막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보다 강한 대응 수단 필요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대형 상장사들을 중심으로 경영진의 법적 책임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재계에서는 국민연금의 역할 확대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민간 기업 경영에 대한 과도한 개입으로 이어질 경우 경영 판단이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소송 결정 과정이 정치적 판단으로 흐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반면 전문가들은 기관투자자의 감시 기능 강화는 불가피한 흐름이라고 본다. 국민 자금을 운용하는 기관으로서 투자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과 장기 가치 제고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측은 “주주대표소송은 기업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국민 자산을 보호하기 위한 책임 있는 투자 활동”이라는 입장이다.
결국 국민연금은 의결권 행사에 머물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기업 경영에 직접 책임을 묻는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 의결권만으로는 경영진 책임을 실질적으로 묻기 어려운 구조가 이어지면서, 보다 강한 수단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해졌다는 분석이다. 기업 경영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그 파장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