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종원의 일본 톺아보기

한국의 능력주의, 일본의 능력주의

2026-04-14 13:00:01 게재

지난주 이재명 대통령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지도부와의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똑같은 일을 하는데 정규직에 비해서 비정규직에 훨씬 (임금을) 더 적게 주는 게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좋게 얘기하면 ‘능력주의’라고 할 수도 있지만, 선발돼서 좋은 자리를 차지했으면 좋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상당히 큰 왜곡이다.”

민주노총이 이에 대해 수긍했는지 항변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한번의 선발로 지위와 대우가 결정되고 이것이 선발되지 못한 사람들에게 좌절을 안겨 주는 것은 사실인 만큼 노동계에게는 뼈아픈 지적이다. 이 지적에 공감한 일반 시민들도 적지 않으리라.

하지만 능력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은 따로 있다. 능력주의는 다른 말로는 ‘메리토크라시’라고도 하는데 이는 출신이나 신분이 아닌 개인의 능력이나 실적에 근거해 사회적 지위와 보수를 결정하는 시스템을 뜻한다. 문제는 개인의 능력이나 실적이 타고난 소질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즉 자기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운 좋게 유전자를 물려받은 덕분인데 이에 대해 지나친 보상을 주는 것은 공정하다고 불 수 없다는 지적이다.

여기서는 일단 이 근본적인 비판은 제쳐둔다. 대신에 능력주의는 기본적으로 바람직한 것이라는 전제 아래 한국과 일본을 비교한다. 그리고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지를 검토한다.

전후에 꽃을 피운 능력주의

역사적으로 능력주의는 큰 역할을 수행했다. 혈연이나 문벌에 기반해 사회적 지위와 보수를 결정하는 종래의 시스템 즉 귀족지배(아리스토크라시)를 대체한 것이다. 일본의 경우 에도시대는 전형적인 귀족지배였다. 메이지유신으로 근대화된 다음에도 귀족지배까지는 아니더라도 엘리트지배가 일정 정도 유지되었다. 여기에 결정적인 반기를 든 것이 전후 민주화였다. 이를 계기로 능력주의가 본격화했다.

이때 중요한 동기로 작용한 것이 일반 국민의 권리・가치의 향상과 함께 사무기술직과 생산직 간의 차별을 없애는 것이었다. 사무기술직은 주로 고등교육을 받아야 취직할 수 있는데 당시는 본인은 우수해도 집안 형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산직으로 취직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따라서 학력에 의한 차별은 결국 부모의 경제력에 의한 차별이라는 생각이 컸고, 이 부당함을 시정해 명실상부한 능력주의를 실현하자는 것이었다.

한편 한국은 조선왕조를 거쳐 식민지시대까지 귀족지배를 받았다. 해방 이후는 명목상으로 모두가 평등한 사회가 되었지만 그 내실은 엘리트지배의 성격이 강했다. 이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한 것이 1987년의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이었다. 이후 능력주의가 꽃을 피웠다. 재벌이나 관료의 권력・지위를 억제하는 한편으로 사무기술직과 생산직 간의 차별을 축소했다. 그 결과 시민과 노동자의 지위가 크게 향상되었고 기회의 평등이 상당하게 실현되었다.

역사적 사건을 계기로 변모해

이렇게 능력주의가 사회의 규범이자 규칙으로 정착함으로써 경제적 번영과 사회적 활력을 구가하게 된 양국이지만, 그 성격을 변화시킨 계기가 있었다. 일본의 경우는 1970년대의 석유위기가 그 방아쇠가 되었다. 스태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서는 기업의 생산성 향상이 필요하다는 명분 아래 일본은 노사협조를 강화했고 이것이 종래의 능력주의를 변화시켰다. 그 전까지는 기업에 갇히지 않고 사회에 열려 있는 기회의 평등이 중시되었는데 그 후에는 기회의 범위가 좁혀진 채 기업 중심의 능력 축적이 중시된 것이다.

이 변화가 한때는 일본의 번영을 낳았지만 결국은 사회의 정체를 초래했다. 노사협조와 생산성향상은 기업과 정규직과의 타협을 토대로 이루어졌는데 1990년대 이후 계속된 불황으로 궁지에 빠진 기업은 정규직의 고용에 손대는 대신 값싼 비정규직 고용을 늘리는 전략을 택했고 이것이 심각한 격차 발생과 내수 부족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는 1997년의 외환위기가 분수령이 되었다. 당시는 민주화의 연장선 위에서 사회계층 및 기업내 계층의 재편성을 모색하는 과정에 있었다. 좀 더 시간이 있었더라면 바람직한 능력주의가 구현되었을런지 모른다. 하지만 IMF 구제금융을 이유로 진행된 구조조정과 대량해고는 이 희망을 무산시켰다.

이후 경제는 재건되었으나 이익 우선의 풍조 속에서 노사 간의 신뢰는 흔들렸고 사회적으로도 대기업 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가 확대되었다. 선발된 자는 과한 보수를 받고 탈락한 자는 페널티를 받는 게 당연시되면서 한국 사회는 용서없는 경쟁의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이처럼 능력주의의 형성과 변모를 비슷하게 경험해 온 양국이지만 그 내실에서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능력주의는 능력에 따른 지위와 보수의 상승을 의미하기에 흔히 계층사다리를 가지고 그 이미지를 그리는데 여기서도 이를 활용해 한국과 일본의 특징을 보기로 한다.

첫째, 사회적으로 마련된 사다리의 숫자에서 차이가 난다. 한국은 그 수가 적고 일본은 많다. 한국은 이른바 일류 기업이 적기 때문에 거기에 선발되지 못하면 루저(Loser)가 되기 쉽지만 일본은 일류 기업이 상대적으로 많다. 또한 한국은 대기업에 선발되지 못한 사람은 처우가 낮은 중소기업에 취직할 수밖에 없지만 일본은 중견기업 혹은 강소(强小)기업이 비교적 많다.

둘째, 사다리를 보더라도 그 길이에서 차이가 난다. 한국은 그 길이가 짧고 일본은 길다. 한국은 일류 기업에 취직했다 하더라도 승진 경쟁에서 ‘패자부활’하는 경우는 별로 없고 비교적 젊은 나이에 퇴사한다. 반면 일본은 기업내의 커리어가 길고 승진 경쟁에서의 ‘패자부활’도 일정하게 존재한다.

셋째, 사다리를 오를 때의 기준에서 차이가 난다. 한국은 선발될 때의 기준(예를 들어 명문대 출신)이 이후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다. 이에 비해 일본은 선발시에는 학력이나 명문대 출신 여하가 고려되지만 이후의 승진에서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런 차이를 감안하면 같은 능력주의라 하더라도 한국은 이를 떠받치는 토대가 약한 반면 일본은 그것이 상대적으로 공고하다 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은 상위 포지션을 향한 경쟁이 느슨한 반면 한국은 그것이 매우 격렬하다 하겠다. 양자 중 어느 쪽이 나은지는 단언하기 힘들다. 다만 겸허하게 배우는 자세라면 일본은 한국의 치열한 경쟁에서 힌트를 얻고 한국은 일본의 넓은 저변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대물림 탓에 능력주의의 성격을 잃어

하지만 능력주의를 전제로 그것이 안고 있는 내적인 문제 해결을 모색하는 것은 여기까지이다. 현실은 훨씬 심각하다. 엄밀히 말해 한국과 일본은 이미 능력주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격차, 한국의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 등은 이미 개인의 능력으로 어떻게 하기 힘든 일종의 ‘신분’ 격차로 굳어졌다. 이전 시기에 폐지를 추구해온 차별이 다시 부활한 셈이다.

여기에 더해 대물림이 가속화되고 있다. 능력주의는 스스로 노력해서 획득한 능력을 가장 중시한다. 그런데 한일 양국은 어느샌가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부모의 능력이 큰 의미를 갖는 사회가 되었다. 비근한 예로 도쿄대학의 경우 부모의 연간 수입이 950만엔을 넘는 학생이 전체의 57%를 차지한다. 서울대의 경우는 부모의 월 소득이 1000만원 이상인 학생이 80%에 달한다. 이는 하나의 지표에 불과할 따름이지만 다른 지표를 보더라도 한국의 대물림은 이미 일본의 대물림을 추월하고 있다.

능력주의의 가장 큰 적은 대물림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차이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물림의 악영향을 없애고 사회의 계층사다리를 폭넓게 마련함과 동시에 그것이 올바르게 작동토록 하는 일 또한 매우 시급하다.

호세이대학 대학원 교수

공공정책연구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