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데이터 기반 방송생태계로의 전환
국내 방송산업은 오래 전부터 방송광고 시장 위축과 유료방송 시장의 성장 둔화라는 위기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방송광고 매출액은 2024년 2조2964억원 규모로 2011년과 비교해 1조3276억원 감소했다. 방송시장 통계 작성 이후 최초로 2023년부터 유료방송 가입자 또한 감소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데이터 기반 방송생태계로의 전환을 본격적으로 서둘러야 한다.
방송산업에서 시청자 이용 행태 파악의 중요성이 커지는 가운데 이용 행태를 기록한 ‘시청데이터’가 방송산업 진흥의 핵심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데이터는 쌓였지만, 시장은 활용못해
국내 약 1800만 가구 셋톱박스를 통해 하루 수십억 건의 시청데이터가 축적되지만 시장에서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시청률 조사는 약 4000 가구를 표본으로 진행된다. 이는 전체 유료방송 가구의 약 0.02%에 불과하다. 셋톱박스 시청데이터는 거의 모든 시청자를 포함하지만 시장은 여전히 극소수 가구 표본조사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셋톱박스 시청데이터는 기존 시청률 조사와 수집방식 자체가 다르다. 시청 시작과 종료, 채널 이동, 체류시간까지 시청 흐름을 초 단위로 확인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기존 표본조사로는 포착하기 어려웠던 시청기록(1% 미만 시청률)까지 확인이 가능하다. 또 시청데이터는 광고효과 분석과 콘텐츠 품질평가, 개인 추천 서비스 등 산업 전반에 혁신적인 변화를 불러 올 수 있다.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가능성은 해외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넷플릭스는 시청데이터를 기반으로 콘텐츠 투자와 제작 전략을 결정하고 있다. 이 같은 데이터 기반 운영은 2억명 가입자 확보와 연간 약 40조원 규모 매출 성장으로 이어졌다. 물론 이러한 성과는 콘텐츠 투자 확대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하지만 데이터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성과의 전제는 데이터 수집과 활용 기준이 하나의 체계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넷플릭스는 콘텐츠 제작과 유통이 통합된 구조 속에서 데이터가 내부 의사결정에 활용된다. 반면 국내는 플랫폼 사업자와 콘텐츠 사업자가 분리되어 있어서 플랫폼 사업자의 시청데이터가 콘텐츠 사업자의 제작에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국내에서 시청데이터가 사업자 간 거래를 통해 활용되기 위해서는 신뢰할 수 있는 통합된 기준과 검증 체계가 필요하다. IPTV 케이블TV 등 플랫폼별로 시청데이터 수집 기준이 다르고 동일한 콘텐츠라도 시청률 결과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는 이미 충분하다. 부족한 것은 신뢰다. 데이터를 신뢰할 수 있는 기준과 검증체계가 없다면 아무리 많은 데이터도 산업의 공통자산이 될 수 없다. 연간 약 3조~4조원 규모 방송광고 시장은 시청률 등 데이터를 기반으로 거래가 이루어지며 콘텐츠 가치평가 역시 이 데이터에 의존한다.
필요한 것은 데이터 양이 아니라 신뢰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하다. 데이터를 더 모으는 것이 아니라 연결하고 검증하는 것이다. 플랫폼 간 상이한 기준을 표준화하고 객관적인 검증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산업에서 활용 가능한 시청데이터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범사업과 연구를 단계적으로 추진하면서, 관리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또 이를 위한 공공의 역할도 확립되어야 한다. 데이터 신뢰 기반이 마련될 때 셋톱박스 시청데이터는 이제 단순한 시청 기록을 넘어 광고 콘텐츠 플랫폼 전략을 연결하는 핵심 인프라로 기능하게 될 것이다. 이는 방송산업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높이고 글로벌 디지털 경쟁력으로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