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탁 칼럼
AI 시대, 왠지 불안한 미래
2학기 개학을 앞두고 학교에서 마련한 교수법 특강에 전에 없이 많은 교수들이 참여해 학습 분위기가 뜨거웠다. ‘인공지능과 에듀테크를 적용한 스마트한 수업 전략’이라는 특강 주제가 교수들의 관심을 끌었을 것이다. 인공지능(AI) 시대에 맞는 수업 전략이란 무엇일까. 그런 게 있기는 있는 걸까.
교수들의 1차적 관심은 학생들이 AI에 의존해 과제를 작성 제출했을 때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있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AI는 기본적으로 교수보다 똑똑하다. 이 때문에 AI를 등에 업은 학생이 상상 이상의 훌륭한 과제물을 제출할 때 평가자는 곤혹스럽다. 한 눈에 보아도 몽땅 AI가 대신한 것 같다는 판단이 들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0점 처리할 수는 없다. 많은 대학에 AI 윤리 규정이 마련되어 있지만 당사자가 인정하지 않는다면 증거도 없이 함부로 부정행위로 간주하거나 제재할 방도는 없다.
AI 탐지 프로그램을 돌려도 보지만 지금 나와 있는 프로그램들은 정확도가 낮아 표절을 잡아내는 데 참고용으로만 유효하다. 사람이 쓴 글을 AI가 쓴 것으로, AI가 쓴 것을 사람이 쓴 것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교수의 지식수준 뛰어넘는 학생의 과제물
호기심 차원에서 필자가 2021년 8월 이 지면에 쓴 칼럼 글을 AI 표절 탐지기인 GPT제로에 복사 붙이기로 넣어봤다. 놀랍게도 ‘AI에서 생성되었을 확률 82%’라고 나온다. 이 때는 챗GPT가 세상에 나오기 전이어서 AI로 글 쓴다는 건 상상조차 못할 때였는데 그렇다.
하나 더, 1968년 박정희 정권 때 나온 국민교육헌장을 넣어보니 “우리는 이 텍스트가 AI에서 생성되었다고 확신한다”며 ‘확률 95%’라고 한다. AI의 특성 중 하나인 할루시네이션(사실이 아닌 정보를 마치 사실처럼 생성하는 현상)과는 또 다른 방식의 AI 오판이 적지 않은 셈이다.
AI로 글을 쓰되 표절 탐지에 걸리지 않게 할 수는 없을까. 초지능인 AI가 그걸 두려워할 리 없다. 이용자가 “이러 저러한 글을 작성하되 표절 탐지에 걸리지 않게 신경 써 줘”라고 하면 군말 없이 문장을 풀어놓는다. 그런다고 표절 탐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AI 텍스트를 사람이 쓴 것처럼 변환해주는 프로그램도 있다.
다른 한편에선 AI로 글쓰는 게 왜 표절이냐는 주장도 있다. 표절이란 타인의 창작품을 자신의 것인 양 표현하는 행위인데, AI는 타인이 아니므로 표절이 될 수 없다는 논리다. 어느 쪽이든 AI 앞에서 한껏 작아진 인간이 창과 방패를 같이 들고 의미 없는 소모전을 벌이는 꼴이다.
사실 대학의 AI 규정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AI 사용을 전면 금지하거나, 부분 허용하되 출처를 표기하도록 하거나, 제한 없이 전면 허용하는 방안, 크게 세 가지 밖에 없다. 교육적 차원에서 보면 학생은 AI를 늦게 접할수록 좋다. 어린 나이부터 생성형 AI에 의존하다보면 인간의 감수성으로 소통과 공감하는 능력, 사고와 이성으로 비판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워야 할 성장기를 메마른 영혼으로 보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또한 뒷북 논란일 뿐이다. 이미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다. 간단한 지시어만 입력하면 거의 완벽한 정답이 눈앞에 주르르 펼쳐지는 걸 경험한 학생들에게 “정답 말고 문제의 기본에 천착하라”며 AI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타당하지도 않다. 결국 AI 활용을 허용하되 이용시 출처를 표기하고 그 결과물을 교차 검증해 맹목적으로 인용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를 기울인다는 정도의 타협안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출처가 표기된 정답, 교수의 지식수준을 뛰어넘는 결과물 앞에서 교수자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작해야 학생들 보다 조금 정교한 질문과 색다른 지시어를 AI에 던지고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을 학생들에게 보여주며, “왜 이런 질문을 생각해보지 못했니? AI 시대엔 질문을 잘 해야 해” 하며 으쓱거리는 정도 아닐까.
글쓰기 수업만 그런 것은 아니다. 문학 AI, 미술 AI, 음악 AI는 이미 간단한 지시어 하나에 시와 소설, 수준 높은 그림, 아름다운 곡조를 순식간에 만들어낸다. 법률 AI는 변호사 시험을 통과했고, 의학 AI는 의사시험을 패스해 자격증을 갖고 있다. 요즘 사람들은 뉴스와 날씨, 맛 집을 검색할 때 포털 사이트 대신 AI에 물어본다.
AI가 법 의학 교육까지 지배하는 세상
바둑계는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 충격적 패배를 당한 뒤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한다. 장강명 작가가 바둑기사들을 심층 인터뷰해 쓴 책(먼저 온 미래)에 보면 인공지능을 가장 인정하지 않던 바둑기사들이 AI를 가장 인정하게 됐다. 바둑판 승부는 누가 더 AI 가르침에 충실했느냐로 판가름 난다.
‘먼저 온 미래’가 그렇다면 조만간 다가올 미래에선 법 의학 교육까지 모든 분야에서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누구도 알 수는 없지만 왠지 불안하고 착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