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기업과 실용주의 정부의 접점 찾기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보수정권과 진보정권은 5년이나 10년 간격으로 교체되고 경제정책의 목표는 ‘성장과 효율성’과 ‘분배와 불평등 해소’ 사이를 왕복해왔다. 20여년이 지나는 사이 진보와 보수의 대립은 더욱 공고해지고 산업계의 적응 비용은 계속 증가해왔다. 2018년 본격화된 미중 전략경쟁은 우리의 수출주도 성장모델을 무력화하고 중국의 혁신 속도를 가속해 한국산업은 내외부 모두에서 위기국면으로 내몰리고 있다.
6월 초 출범한 진보정권은 국익이라는 단일 기준을 중심으로 하는 ‘실용적 시장경제 정부론’을 표방하고 있다. 지난 8월 새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를 가늠할 수 있는 굵직한 정책들이 연달아 발표됐다. 그런데 국가전략에 해당하는 ‘새정부 경제성장전략’과 성장전략의 추진 주체인 기업에 대한 정책이 엇박자가 나는 모습이다.
정책 엇박자로 실용주의 정책 기조는 아직 불확실
7월 30일 한미 관세협상을 극적으로 타결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식시장 기대에 반하는 세제개편안이 다음날 발표되는 바람에 주가는 상승하기는커녕 4% 하락했다. 8월의 정책 엇박자는 단순히 주가 등락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전략 자체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국가전략인 ‘새정부 경제성장전략’은 인공지능(AI) 3대 강국, 잠재성장률 3%, 국력 세계 5강 달성을 목표로 하는 야심찬 전략이다. 성공의 관건은 기업들이 선진국과 대등한 수준의 세계 최첨단 기술을 개발하고 AI 대전환과 ‘초혁신산업’의 육성을 달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집권 여당은 산업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8월 중에 소수주주권을 보호하고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할 목적으로 상법을 개정했다. 동시에 노동자 권익 강화를 위해 노란봉투법을 개정했다.
상법과 노동법 개정의 필요성은 충분히 인정된다. 그러나 미국의 관세폭탄과 중국의 추월 위협에 맞서 기업들이 사투를 벌이면서 산업 대전환을 추진하는 이 시점에 기업의 사업전략과 경영권에 치명적 제약을 초래하는 정책을 완급 조절하지 않고 급박하게 관철해야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지금은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도 비상상황이고 산업 대전환을 서두르지 않으면 한국산업의 현 위치도 위협받는 상황이라고 진단하고 기업이 성장전략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 정부는 상법과 노동법 개정의 영향을 과연 어떻게 평가했을까?
한미 정상회담을 마치고 귀국한 대통령은 첫 국무회의에서 노란봉투법 통과에 따른 기업의 경영활동 위축 우려를 감안해 노동계도 상생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현장에서 제도가 안착할 수 있도록 정부는 후속조치를 빈틈없이 준비해달라고 지시했다.
이제 공은 정부로 넘어갔다. 정부는 기업들이 AI 대전환과 초혁신산업의 육성에 집중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현시점 국익의 최대 과제는 한국산업이 대전환에 성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정된 상법과 노동법이 산업 대전환에 어느 정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인지,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를 면밀하게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산업 대전환을 위한 실용적 정책, 정부가 깊이 고민해야
실용적 정책의 관점에서 볼 때 산업 대전환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기업들에게 일본에서 제도화되어 있는 기업의 경영권 방어수단 포이즌 필(신주인수선택권, poison pill)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2024년 한국경제인협회가 용역연구 의뢰한 ‘주주 행동주의 부상과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행동주의 펀드의 표적이 된 한국 기업수는 5년 연속 증가해 2023년에 77개사에 달했다고 한다. 머지 않아 행동주의 펀드에 시달려 혁신과 본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기업들이 속출하는 현실이 어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