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트럼프 관세장벽 장기화 대비해야

2025-09-02 13:00:01 게재

지난달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은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농산물시장 추가개방이나 주한미군 방위비 대폭증액 등에 대한 우려가 있었으나 일단 잠잠해졌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을 지렛대로 한 한반도 평화정착과 관계개선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적지 않다. 미국의 관세가 내려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는 관세율 15%가 시행되기를 기대했지만 감감무소식이다. 이 때문에 현대차는 아직까지 미국에 수출할 때 25%의 관세를 적용받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의 전기차 보조금도 이달말 끝난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라 전기차를 살 때 지급하던 최대 7500달러의 세액공제를 종료하기로 한 것이다.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수출이 타격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위기감에 현행 관세체제 계속 유지하려 할 것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50%의 관세도 달라진 것이 없다. 트럼프행정부는 지난 2월 전세계 철강·알루미늄 수입품에 25%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6월에는 50%로 올렸다. 이 때문에 한국의 대미 철강수출은 상당히 위축됐다. 물량과 금액 모두 작년에 비해 20% 넘게 줄어들었다. 철강업계는 바깥으로는 수출감소, 안으로는 건설경기 부진과 중국산 저가물량 공세로 2중의 시련을 겪고 있다.

미국은 또 지난 18일부터 냉장고 변압기 엘리베이터 전선 등 철강과 알루미늄이 쓰이는 파생상품 407종에도 50% 관세를 확대 적용하기로 했다. 미국의 이런 조치들로 말미암아 국내 여러 산업이 신음한다.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이런 신음에서 벗어나게 되기를 국내 산업계는 간절히 고대했다. 그렇지만 모두 물거품으로 끝났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시련이 가중된다.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불문하고 모두가 아프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지난달 28일 논평을 통해 “추가적인 관세인하와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 선언이 명확하게 이뤄지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이라며 "바람직한 개선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이번 회담을 통해 한국 기업들이 미국의 제조업에 1500억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계획을 내놓았다. 류 진 한경협 회장의 설명대로 AI·반도체·바이오 등 첨단산업에서부터 조선·원자력 등 전략산업, 공급망과 인재 육성에 이르기까지 두루 망라돼 있다. 초강대국 미국을 위해 일방적으로 퍼주는 양상이다. 그럼에도 한국에게 돌아온 것은 점점 더 무거워지는 관세폭탄이다. 정말로 크나 큰 부조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재명정부의 탓은 아니다. 미국의 제조업에 대한 깊은 위기감에서 비롯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한국 등 세계 모든 나라에 부과한 상호관세가 법적 근거가 없다는 미국 연방항소법원 판결이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나왔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 관세가 사라지면 국가에 총체적 재앙이 될 것"이라고 반발했다.

위기감이 이토록 깊기에 미국은 앞으로도 현행 관세체제를 최대한 고수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미국 대법원에서 이번 판결이 유지된다고 하더라도 다른 방법을 통해 밀고갈 것 같다. 고율관세 장벽을 없애면 수입이 봇물터진 듯 급증할 것이라는 우려가 작지 않기 때문이다. 설령 일부 관세장벽을 다소 낮출지는 몰라도 스스로 완전히 허물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중국이 2017년 사드 배치를 빌미로 한류를 막은 조치를 아직까지 풀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경쟁력 강화 위한 기업체질 개선 노력 더 중요

따라서 한국으로서는 트럼프의 관세압박이 장기화되는 사태를 염두에 두고 대비할 필요가 있다.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관세장벽을 낮추거나 돌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유능한 외교관과 통상관료들을 전면 배치하는 등 적극적이고 다각적인 외교를 전개해야 한다. 안으로는 관세장벽으로 피해를 보는 기업들을 보듬는 것이 필요하다. 당분간 국내기업의 이익이 줄어들고 경영이 어려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어려움을 완화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철강업계의 경우 전기료 감면이나 세제금융 지원 또는 배려가 필요하다.

경쟁력 강화를 위한 혁신과 함께 기업체질 강화 노력은 더 중요하다. 과감한 구조조정이 필요할 경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한국에 강요되는 악재를 기회로 만들겠다는 자세가 절실히 요청된다. 어쩌면 한국의 장기적인 번영은 이번 시련을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

차기태 본지 칼럼니스트